파도와 바람과 빛 … 그곳에 ‘복음’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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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와 바람과 빛 … 그곳에 ‘복음’이 있었네
  • 김목화 기자
  • 승인 2013.06.25 2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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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의 여름을 걷다 <하> : 한국 기독교 위인들의 고장
▲ 백여 년 전 순천의 어느 한 교회 풍경이 구수하고 재밌다.

한국에 복음이 들어오는 과정부터 순천 기독교의 시작, 그 발자취를 따라가보면 순천만의 황홀함이 드넓게 펼쳐진다. 아름다운 순천에서 꽃피운 기독교의 역사는 오늘날까지도 100년의 유산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 이제는 미래의 선교로 나아가는 믿음의 땅, 순천의 파도와 바람, 그리고 빛을 따라가봤다.

순천에는 대한민국 기독교 역사에 있어 큰 업적을 남기고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 위인들이 많다. 19세기 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근대사와 나란히 걸어간 순천의 기독교 역사 속 인물에는 누가 있을까?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관장:온규열 목사)의 제1전시실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한국 기독교 역사 연표가 보인다. 1784년 한국 땅에 기독교가 전래되고 이후 교회의 역사와 순천 기독교 역사에 대한 요약을 보기 쉽게 한 눈에 정리되어 있다.

온규열 관장은 “한국 기독교 역사는 한국의 역사와 필연적인 관련 속에 이루어졌다”며 “동학농민운동부터 청일전쟁, 러일전쟁에 따른 을사조약, 고종이 퇴위하고 한일병합조약에 따른 경술국치 등 기독교는 한국 근대사에서 뺄래야 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모든 역사 속에 기독교가 개입되고 그에 따른 위대한 위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 한국에 찾아온 선교사들의 물건들을 진열한 전시관.

서재필, 김구, 유관순, 이준, 안중근 등 일제강점기 3.1 독립운동 당시 자주독립선언문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33인 중 16명은 기독교인이었다. 이외에도 일본의 참략에 의한 기독교 저항운동, 신사참배 반대에 따른 순교, 해방 후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순교 등 고난을 극복하고 한국 교회가 성장한 배경과 자료 등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은 자세히 설명해준다.

“한국의 최초 성경번역은 중국 만주에서 1882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로스목사와 한국 청년 서상륜이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번역했고 아주 어려운 과정을 통해 비밀리에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한국에 복음이 꽃피기 시작하고 순천에도 드디어 1913년 순천선교부가 미국 남장로회에 의해 세워졌다. 설립 당시 13명의 선교사가 순천에서 복음과 교육, 그리고 의료봉사에 헌신했다. 그리고 1922년 순천노회가 설립되고 세 번의 박해 사건이 벌어졌다. 남장로교 선교부와의 협력 속에 성장해왔지만 순천노회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박해, 여순사건, 한국전쟁 등 큰 시련 속에서도 굳건한 신앙의 뿌리를 내렸다.

일제는 한국의 종교와 문화를 말살시키고 식민지화를 이루기 위해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신사참배를 거부한 학교와 교회는 폐쇄됐고 주기철 목사를 비롯한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당했다. 선교사들 또한 일제에 의해 본국으로 추방당하고, 순천노회 목사들은 신사참배에 저항할 때마다 박해를 당했다. 모든 순천노회 목사들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고 모진 고문을 받았다. 그들 중에는 이기풍 목사, 양용근 목사가 있었다. 이기풍 목사는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를 1회로 졸업한 최초 7인의 목사 중 한 명이다. 1907년 한국장로회 첫 외지 선교사로 제주도에 파송되기도 했다. 하지만 신사참배에 반대하다 일제 경찰에 구속당하고 온갖 고문으로 중병을 얻어 순교했다.

또 한번의 박해는 1948년 여수순천사건 중에 일어났다. 8.15해방 후 남북분단과 정치적 이념대립,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 거부에 따른 여수순천 10.19사건은 또다른 희생을 낳았다.

그중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불리는 ‘손양원 목사’의 이야기가 있다. 애양원에서 나환자를 돌보는 손양원 목사의 아들 손동인, 손동신 형제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순교를 당했지만 손양원 목사는 ‘원수를 사랑하라(눅6:27)’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 그들을 용서하고 자비로운 목사였다.

또 당시 공산당원의 급습으로 무참히 학살당한 영흥교회 이야기, 순천기독학생연합회 전도부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참히 죽임당한 고재춘 등 교회를 섬기며 믿음을 지키던 이들이 공산당에 의해 많은 피를 흘렸다.

▲ 백여 년 전 순천 한센병 나환자촌. 이곳에서 외국에서 온 선교사들과 그당시 목사들은 복음을 전하며 사랑으로 환우들에게 헌신했다.

덕분에 순천지역은 꾸준히 교회가 부흥해 복음화 비율이 높다. 현재 예수교장로회(통합, 합동, 고신),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기독교감리회, 기독교성결회, 기독교한국침례회 등 여러 교단 소속 교회들이 복음화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또한 세계복음화를 위한 해외 선교활동에서도 그 일을 담당할 정도로 큰 성장을 이루었다. 순천에는 등대선교회, 러시아선교회, 순천중앙선교회 등 총 12개의 선교회가 전 세계를 향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에는 좀 특별한 전시관이 있다. 린튼 선교사 가문에 관한 전시관이다. 린튼 가문은 한국에서도 특히 호남과 순천에서 4대에 걸쳐 선교해온 복음의 가문이다.

“제가 어른이 된 후 돌아보면, 당시 미국 선교사와 한국 성도들의 관계는 매우 신기합니다. 저희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예수님을 아십니까?’ 한국인들이 ‘예, 예수님을 압니다’라고만 대답해도 아버지께서는 만족해하셨습니다. ”(토미 브라운 장남, 조지브라운의 말 중)

▲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아 남자와 여자가 구분되어 예배드려지던 'ㄱ'자 교회 재현.
유교문화에 영향을 받은 한국 문화에 의한 ‘ㄱ’자 교회 모형, 당시 선교사들이 외국에서 들여와 사용했던 향신료, 와플기계, 카메라 등 제2전시실에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순천을 사랑하는 외국의 선교사들의 이야기로 구며졌다. 또 작은 도서관을 운영해 기독교 관련 서적 및 일반서적 2천여 권을 마련해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을 나와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까지는 차로 20분 거리, 기독교역사박물관(매산등)을 내려와 순천의료원 앞 정류장에서 100번 버스를 타고 가도 금방이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은 박람회장 전체가 녹지와 수목, 꽃밭과 물, 습지 등을 품은 자연이다. 자연과 여러 가지 테마의 정원 속에서 거닐고, 쉬고, 생각에 잠기는 ‘산책’을 떠올리면 된다.

박람회장은 식물여행, 습지여행, 지식여행, 세계여행, 놀이여행의 주제로 다양하게 구성됐다. 놓치면 아쉬운 숨은 공간도 빠뜨려선 안된다. 박람회를 대표하는 주제관인 순천만국제습지센터다. 순천만의 세계적 위상과 생태적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주제관에는 순천만의 갯벌을 그대로 재연할 뿐 아니라 살아 숨쉬는 자연 속을 한 공간 안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야생동물원과 물새놀이터, 한국 정원, 박람회장에서 순천만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순천문학관이 있다.

또 순천만자연생태공원으로 연결하는 셔틀버스도 운행한다. 갯벌과 갈대밭, 갯벌 사이의 수로(水路), 동그란 원 모양을 하며 펼쳐지는 순천만 습지대의 광경은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아직 여름 휴가지, 피서지를 정하지 못했다면 ‘순천’을 권하고 싶다. 때뭍지 않은 순천의 자연 속에서 넉넉한 발걸음을 가지고 찬찬히 순천의 곳곳을 살핀다면, 어느새 몸과 마음과 정신이 순천의 파도와 바람과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을 것이다.

▲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의 순천호수정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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