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효성의 문화칼럼] 구경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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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성의 문화칼럼] 구경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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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6.25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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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성의 성지를 찾아서 (18)

월트디즈니 스튜디오 알란 혼 회장이 며칠 전 한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영화시장은 세계에서 미국 중국에 이어 3번째로 큰 시장으로 흥행 시장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8층 빌딩 전체가 극장으로 되어 있는 나라는 아마 한국 밖에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 기사를 보았다. 인구 수에 비해 종종 1,000만 관객을 넘는 기록들을 보면 한국 사람들은 구경하기를 좋아하는 속성이 다분히 많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관객이란 말을 다른말로 구경꾼이라고 사전에서 말하고 있다.

▲ ⓒ방효성, 늦은비와 이른비. 108x78. Acrylic on paper.

필자의 어린시절, 해마다 여름 장마가 오면 여의도가 물에 잠기곤 했다. 집이 물에 잠겨 어쩔줄 모르는 수재민들 속에서 동네가 물바다로 변해버린 낯선 풍경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인파를 이루고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구경이란 인간이 갖는 본능적인 즐거움에 하나이리라.

삼대 구경을 꼽자면 물구경, 불구경, 싸움구경이다. 앞서 물난리 구경과 마찬가지로 남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만 피해가 커질 수록. 싸움의 언성이 높아질수록 보는 재미가 더 커지는 것이다. 화재가 나면 빨리 불이 꺼지길 바라며 싸움이나면 빨리 그치길 바라지만 막상 불이 꺼지고, 싸움이 그치면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왜? 구경꾼의 본능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길에서 싸움이 벌어지거나 교통사고가 났을때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발길을 멈추게 한다. 말리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싸움을 즐기는듯 구경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게 된다.

자신과 이해관계가 없는 제 삼자의 입장에 있을때 제대로 구경꾼이 된다. 우리 주변에는 늘 분쟁의 소식이 떠날줄 모른다. 국가간의 전쟁과 국내의 정치적 싸움, 집단간에 이익을 위한 싸움부터 수많은 사건사고 소식등을 접하게 된다. 이 속에 교회 안의 분쟁도 예외는 아니다. 사소한 것들로 시작하여 명분을 만들어가며 갈등을 겪는 교회들을 많이 본다. 교회 안에 분쟁을 보면 하나님은 간곳 없고 사람들의 주장과 혈기로 거룩한 교회적 사명을 포기(?) 한 모습들이 과연 믿는 사람들인가 하는 의구심까지 갖게 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싸움을 은근히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더 나아가 싸움이 끝날새라 부추기는 심리가 우리의 부패한 근성 속에 자리잡고 있음을 본다.

교회가 다툼을 멈추고 화해하고 회개와 용서가 이루어지길 원하는 바램은 정말 진정성이 있는 말들인가 할 정도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필자도 구경꾼의 입장에서 싸움을 즐기는 범죄를 종종 저지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세상에서 죄악의 탁류에 떠내려 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생명줄을 던져야 할 우리들이 제삼자의 입장에서 구원선이 아닌 유람선을 탄 구경꾼이 되어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당하는 교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천지창조 사역은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말로 귀결된다. 하나님 말씀처럼 믿는 자들은 더 이상 관객이 아닌 긍휼의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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