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어둡고 길이 보이지 않는 숲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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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어둡고 길이 보이지 않는 숲 속에서
  • 운영자
  • 승인 2013.05.2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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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함숨을 쉬며 이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숲에는 두 갈래길이 갈라져 있었다고”(로버트 프로스트).

정희선은 지난 밤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녀는 호수가에 있는 숲으로 우거진 어두운 곳에서 갈 길을 잃고 방황했다. 그녀가 어둠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더 어둠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아무도 그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꿈을 깨어나서도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중앙병원 응급실 오전 7시. 설희는 아직도 혼수상태였다. 담당의사가 왔다. 정희선은 너무나 놀라면서 말했다.

“아니 허륜명 선생님 아니세요?”
“이게 얼마 만입니까? 희선씨!”
“우리 딸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빈혈, 저혈압 50도, 고열 42도, 지남력-인지역-감소 증세를 보이며 지금 패열증의 양성 여부를 판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아참, 망막 손상이 있는지 안과 검사도 해야 합니다.”
허륜명이 말했다.

정희선과 허륜명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같은 동창생이었다. 그들이 대학생이 되었을 때까지도 가장 친한 친구였다. 만일 5월의 축제란 것이 없었더라면, 아니 정희선이 그날 메이 퀸에만 당선이 되지 않았더라면, 또 그날 그 모두랑이란 레스토랑에서 백진승이 그에게 다가와서 장미꽃만 주지 않았더라면 그를 만난다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었다.

정희선이 백진승을 만난 후 그는 허륜명과의 우정과 백진승과의 사랑 사이에서 한동안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허륜명은 정희선이 무엇을 요구하면 마치 그의 보호자라도 된 것처럼 모든 요구를 들어주었다. 어떤 때는 그에게 억지를 주장해도 가만히 참고 견뎠다. 정희선은 그런 그가 줏대가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나 백진승은 허륜명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이었다. 그는 정희선의 어떤 주장을 할 때마다 옳고 그름을 분명히 했다. 더욱이 그는 그의 실력으로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는 재학 중 최연소, 수석으로 사법시험을 합격하여 모든 학생으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정희선은 처음으로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남학생로부터 장미꽃을 받고 가슴을 설레기만 하였다. 그녀는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사랑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런 그녀가 15년이 지난 후에 딸의 진단 결과를 걱정하면서 허륜명의 사무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잠시 지난 날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대학 마지막 학기 등록금이 없어서 고심하던 차였다. 그때 친구 허륜명이 그에게 찾아왔다. 그녀는 그에게 휴학을 할 수밖에 없음을 말했다.

“그럴 수는 없어! 3일만 기다려 줘!”

그는 평소와 달리 자기의 소신을 말했다. 그리고 3일 만에 그 앞에 나타나서 등록금을 그에게 건냈다. 허륜명은 그의 부모님의 모든 패물들을 모두 팔고 부족한 것은 친구들로부터 빚을 내서서 그녀의 등록금을 마련했다. 허륜명이 부모의 패물을 훔친것이 들통나자 그의 아버지는 크게 화를 냈다.

“이놈아! 그것을 팔아서 어디에 썼냐?”
“친구들과 같이 미팅하는 데 썼습니다.”
“나쁜놈! 대학생이 되어서 도둑질이냐 하고 다니냐? 앞으로 네 등록금은 절대로 지원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아라!”

허륜명은 아버지의 꾸지람을 듣고 쫓겨나듯 집을 나왔다. 그는 정희선의 하숙방에서 하루 밤을 같이 했다. 정희선은 그가 어떻게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서 그에게 물었다.

“나 부모님 것을 슬쩍 했어요!.”
“그러다 발각되면 어쩔려구요!”
“이미 발각되어 집에서 쫓겨났어요!”
“그래서 나를 찾아 왔어요?”

그날 밤 그들에게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 그들은 마치 오래 산 부부처럼 스스럼이 없었다. 정희선은 그날 밤 어쩌면 허륜명이 자신을 그대로 두지 않을걸 하는 생각도 하였다. 만일 그가 자기를 원한다면 그를 기꺼이 받아주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우정에는 어떤 경계선이란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희선은 평소 그가 자기의 의사를 항상 존중해 주는 사람인 것을 믿었다. 그녀의 마음 한 구석에는 그가 자기를 원한다고, 그것도 죽도록 원한다고 고백하는 것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희선은 마치 그의 가슴에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은 허전함을 느꼈다. 정희선은 허륜명에게 무언가 한 마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때 허륜명이 일어나서 그녀에게 말했다.

“잘 잤어요, 희선씨!”
“여러 가지 꿈만 꾸었어! 자기는?”
“어디 잘 잘 수가 있어야지요!”
“허륜명! 너 정말 신사다!”
“신사면 뭘해! 하하하! 아무런 실속도 없는걸!”

허륜명이 말하면서 파안대소하였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리고 앉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정 선생님!”
“괜찮습니다. 말을 놓으세요!”
“옛날로 돌아가고 싶습니까?”

허륜명은 설희가 회복중이라고 말했다. 망막에 세균이 감염되어 앞으로 시력이 손상될 우려가 있음도 설명했다.

정희선은 병원일로 항상 바빴다. 백진승 역시 바쁜 사람이었다. 그는 매일 10시쯤 귀가했다. 정희선은 남편과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 출근하는 남편을 붙들고 말할 수도 없고 퇴근 후에는 각자의 방으로 가기가 급했다. 그들이 결혼 한지 15년이 지났으나 한 번도 그들은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 정희선은 오늘 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담판을 짓기로 결심했다. 늦은 시간에 남편이 집에 들어왔다.

“설희 아빠 얘기좀 해요!”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얘기요?”
“언젠가는 해야 할 얘기입니다.”

그들은 오랜만에 서로 마주하고 앉았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설희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결혼생활을 위해서요.”
“말해 보세요.”
“먼저 신앙의 문제입니다.”
“신앙이 무슨 문제입니까?”
“저는 신앙인이고 설희 아빠는 신앙이 없잖아요!”
“그게 어째서 문제가 됩니까?”
“제가 설희 아빠에게 원하는 것은 신앙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당신이 집안 살림은 등한시하고 기도원만 다니기 때문에 설희가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까?”
“설희를 병원에 데리고 간 것은 삼일원의 선린이었어요. 제가 기도원에 다녔기 때문이죠”
“그래 기도원에서는 무슨 기적이라도 생기나요?”
“그래요 기적은 한편 구석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보는 눈앞에서 걷지 못하는 사람이 걷기도 하죠!”
“당신 의사가 맞소? ”
“맞아요!”
“수술없이 병이 고쳐지면 의사는 무슨 일을 합니까?”
“의사가 못 고치는 것은 하나님이 고치시고 의사가 고칠 수 있는 것은 의사가 하지요”
“변호사 뺨치게 말하는 구려!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지 본 일이 있나요?”
“하나님은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가 있어요!”
“나는 모든 것을 나의 지성과 이성의 눈으로 판단해요!”
“그렇다면 이성의 힘으로 해가 뜨고 밤이 오게 할 수가 있어요? ”
“그것을 보고 자연법이라고 말합니다.”
“많이 배운 것이 당신을 불신자로 만들었군요!"

밤 3시가 지났다. 그들의 대화는 물과 기름 같아서 서로 겉돌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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