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소설] 나의 자식들아. 나도 아버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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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소설] 나의 자식들아. 나도 아버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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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1.3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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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가 보내온 창간 25주년 기념소설

나는 아버지입니다.

그러하니 당연히 나는 남자이고, 물론 이름도 있습니다. 내 인생에 나에게 ‘김부장’이라는 직책 외에 ‘아버지’라는 직함을 하나 더 얹어 준 사람은... 와이프? 중학교 2학년인 나의 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인 딸? 글쎄요?... 내 생각에 나에게 아버지 라는 이름을 하나 더 붙여 준 사람은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와이프는 물론 나의 아들이나 딸에게 나는 아버지보다는 그냥 ‘그 사람’ 또는 ‘그 어른(여기서 ’어른‘은 어르신 같은 존대의 개념이 아니라 자기보다 나이 많은, 그렇죠! 일종의 아저씨를 뜻하지요.)이니까요.

굳이 내가 구차하게, 또는 서글프게 하소연하듯 주절거리지 않아도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요즘 아버지들은 다 알겁니다. 하지만 운 좋게 자기 와이프나 자식들에게 아저씨나 그 사람이 아닌 정당하게 ‘아버지’ 또는 남편 대우를 받는 분들은 나를 딱하게 여기겠죠. 그렇다고 내가 욕심이 많은 사람은 아닙니다.

와이프한테 대접받으며 살 생각은 결혼한 지 6개월도 되기 전에 포기했으니까요. 그나마 두 아이의 아버지라는 명함 때문에 나를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해 주는 것 만으로도 진정으로 황송하지요. 하지만 새파랗게 어린 자식들이 나를 건성건성 대하거나 내 말을 아예 못 들은 척 할 때에는 확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마음 속으로요.

이 정도만 얘기했는데도 여기저기서 나를 힐난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 나의자격지심인가요? ‘참 내! 도대체 얼마나 찌질하게 살면 제 집에서 제대로 대접을 못 받을까? 분명 생활 능력 무능력자이거나, 술주정뱅이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 아니야? 아니면 성격이 모나거나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서 대화를 안 하거나! 어쨌든 자기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일 거야. 그렇지 않고서 왜 자기 자식들한테 대접을 못 받아?’

그렇게들 말씀하시면 나도 항변 좀 해야겠습니다. 우선, 나는 재벌 아버지나 이사급, 상무급 되는 정도의 직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생활 능력 무능력자는 아닙니다. 결혼하기 전부터 시작한 직장생활 중 이직은 딱 1번 밖에 안 했으니까요. 이것은 나는 단 한번도 월급 없이 가장노릇을 한 적이 없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이 정도면 생활능력 중간층은 아닐까요? 중간층? 11년 째 몰고 다니는 소위 준중형 자동차가 나의 생활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라면 얘기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지만...

여하튼! 나는 술주정뱅이도 흡연자도 아닙니다. 벌써 오랜 전에 두 가지 기호식품을 완전 청산했거든요. 종교적인 이유나 건강 때문이냐고요? 우리 가족 자체가 아쉬울 때만 교회 가는 수준이니 종교적은 이유보다는 돈 때문이죠. 와이프가 주는 용돈으로 술이나 담배를 내 돈으로 사서 마시고 피운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죠.

그리고 혹시 내가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거나 성격이 모난 거는 아니냐고요? 여러분이 아무리 무심한 분들이라 해도 내 글의 내용이나 문체를 보면 도대체 누구한테 큰소리 한번 칠 캐릭터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절대 나는 평화주의자이며, 시끄러운 데 있으면 머리가 아파서 화가 날 정도이지요. 마지막으로 내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서 대화를 안 하거나, 어쨌든 자기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일 거야, 라고 의심한다면 난 정말 억울하지요.

나는 북한군도 무서워 한다는 무시무시한 중 2 아들. 서태후보다 더 매몰차게 자기주장만 하고, 아버지를 나졸로, 엄마를 상궁으로, 제 오빠를 앞잡이 병졸로 만드는 딸. 이 두 아이를 위해 아이돌 가수, 그룹의 이름이랑 노래를 외우고, 아이들의 유행어, 메신저 언어, 기괴한 이모티콘까지 습득한 나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 어떻게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며, 더 이상 내 관리를 어떻게 완벽하게 할 수 있나요?

그런데 왜 와이프나 아이들은 나를 인정은커녕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는 겁니까? 이번 겨울 얼마나 춥습니까. 그런데 나는 거의 동사 수준에서 지냅니다. 빈약하다 못해 눈물이 절로 나는 잠바(1인칭의 글이니 맞춤법을 떠나서 그대로 잠바 라고 해주세요.) 때문이지요. 도대체 언제 산 잠바인지 모르지만 오리털이 해마다 빠지더니 올 겨울에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게다가 소맷단은 다 낡아서 여직원들 보기가 창피하지요. 그래서 와이프가 기분 좋아 보이는 날을 정말 어렵게 잡아서 말했지요.

“여보, 나... .. .잠바 하나만 사주지. 어휴, 얼마나 추운지 머리가 아플 정도야. 내가 혈압이 좀 높잖아. 저번에 텔레비전 보니까 나같은 사람은 특히 겨울철에 주의해야 한다더라. 요즘 잠바들 그렇게 안 비싸지. 지금 입고 다니는 오리털 잠바를 살 때만 해도 꽤 비쌌는데.... 그런데 요즘은 오리털보다 거위털을 많이 입더라. 이 과장이랑 박 대리도 거위털, 그러니까 구스 잠바 입고 다니던데. 난, 뭐, 그 정도는 바라지 않아. 그냥 오리털이면 돼. 당신이 봐도 내 잠바가 좀 그렇지?”

아... ... 대전에 계신 우리 엄마가 나의 이 꼴을 봤다면 얼마나 한심하게 여기실까? 큰 누나는 얼마나 와이프를 야단칠까? 그 정도로 나는 예의(?)를 갖추어, 조심조심, 겸손의 미덕까지 내뿜으며 말했습니다. 심지어는 말을 맺으며 온화하게 웃음도 지었지요.

순간!

와이프의 작지만 강력한 힘이 실린 목소리가 내 얼굴에 활짝 피어오른 온화한 미소를 단번에 짓이겨버렸습니다.

“잠바요? 앞으로 2년 더 입어요. 영민이랑 지민이 학원비가 얼마나 들어가는데... 나 봐요. 나도 다 낡은 잠바 입고 다니잖아요.”
“그래도 나는 직장 때문에 매일 출퇴근하는 사람이니까... ...”
나는 화가 나기보다는 가슴이 울컥하는 바람에 목소리가 저절로 떨렸지요.

“출퇴근? 나는 출퇴근보다 더 무서운 두 아이들 엄마 모임에 번갈아 나가고 있어요. 거기 가면 만날 애들 학교 앞 카페에서 만나는데도, 엄마들이 온갖 패션쇼를 해요. 그래도 나는 우리 애들이 워낙 공부를 잘하니까 그런 걸로 기죽지 않아요. 또, 다른 사람들이 절대 무시 못 하죠. 왜냐고요? 우리 애들이 공부를 잘하니까 모든 엄마들이 부러워하는 거에요. 즉, 아이들 성적표가 명품 가방이나 구두 따위를 우습게 여기는 거지요. 당신도 처루지 애들처럼 옷타령같은 거 하지 말고 승진이나 빨리 해요.”

그리하여 나는 지금도 오리털이 다 빠진 잠바를 입으며 한파와 싸우고 있습니다. 이 오리털 잠바 사건은 ‘아이들 때문에 아버지인 내가 천대받는 101 가지 경우’ 중 하나일 뿐입니다. 뭐, 그렇다고 자식들이 나에게 잘해줄까요? 절대 아니죠. 아줌마들이 이런 말을 잘하더군요. ‘남편 복 없으면, 자식복도 없다.’ 이 말은 남자들에게도 백 퍼센트 적용됩니다. ‘와이프 복 없으면 자식복은 왕창 없다!’

나의 두 자식. 아무리 사춘기 시간 속에 있다지만 아버지를 애완용 강아지 반의 반도 안 되게 대하지요. 집에 들어가도, 집에서 나와도 나는 투명인간입니다. 함께 텔레비전을 볼 때에 이상한 뉴스가 나오면 그때에만 나는 존재하는 인간이 되는 거지요. 요즘 세상에 여성과 어린이들을 상대로 일어나는 온갖 흉악한 범죄 뉴스가 나올 때면 특히 와이프와 딸은 나를 노려보며 이렇게 말하지요. ‘도대체 요즘 남자들은 왜 저래요? 짐승만도 못해요!’ 내가 뭘 어쨌다고?

나의 아버지와 그 시절을 기억하다보면 정말 나는 아버지 라는 직함을 떼어내고 싶을 뿐이지요. 아이들이 학원 다니기 싫으면 학원을 딱 끊듯이 나도 아버지 라는 직장을 딱 끊고 싶을 뿐이지요. 타임머신이 있다면 더도 말고 50년 전으로 돌아가서 아버지 라는 이름으로 살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한자어가 뭡니까? 父! 아비 부! 이 한자에는 ‘손’과 ‘회초리’라는 뜻이 있다는 건 중학교 때 배워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나의 아버지는 엄하셨고, 회초리를 자주 드셨지요.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 오늘날, 아버지인 내 두 손은 집안에서 무슨 일을 하며, 나의 두 손에는 무어가 들려 있는지요? 회초리요? 그랬다가는 아마 와이프와 아이들이 나를 국가인권위나 경찰지구대에 신고하겠지요? 요즘 시대에 아버지 손에는 회초리고, 가죽 혁띠이고 다 필요없고 그저 돈이나 골드카드같은 거가 들려 있어야 그나마 대접받으며 살지 않을까요?

내가 왜 뜬금없이 이 생각을 하게 됐는지 아십니까? 내가 너무도 우연하게 창세기 27장을 읽었습니다. 일 년에 교회를 대 여섯 번 나가는 내가 웬일로 성경을 읽었겠습니까?

아래층에 사는 김 집사이자 구역장이라는 분이 부탁을 했거든요. ‘올해에는 우리 구역도 성경을 필사해서 예쁘게 책으로 만들기로 했어요. 황 집사님 내외분도 꼭 동참해주세요.’ 구역장은 아직 세례도 받지 않은 우리 부부를 꼭 황 집사님 부부 라고 불렀지요. 여하튼 이렇게 해서 와이프와 나도 필사, 한마디로 쓰기공부를 시작한 거지요. 그리고 나는 나에게 내려진 할당량을 완수하기 위해 26장부터 열심히 베끼기 시작했습니다. 소설책을 읽는다 생각하고 아무 느낌없이 써내려갔지요. 그런데 27장에 들어서고... ... 점점 한 줄 한 줄 노트를 채워나가면서... ... 나는 깜짝 놀라기를 여러 번 했습니다.

아버지인 이삭이라는 노인이 두 아들 에서와 야곱에게 축복을 빌어주는 장면이지요. 내가 처음에 놀란 건 아버지 이삭이 너무 늙어 앞을 99퍼센트는 못 보는 지경인데도 온 가족에게 존경과 극한 대우를 받는 장면이었습니다.

‘이럴 수가! 만약 내가 이삭처럼 늙고 앞을 보지 못한다면 우리 가족들이 나를 이렇게 모실까? 이런 늙은이에게 재산도 유산도 아닌 축복의 말 한 마디 받으려고 이 난리를 칠까?’

두 번째 내가 충격받은 것은 에서 라는 야곱의 형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이 복을 가로챈 것을 알고 나서 에서는 격렬하게 울부짖더군요. ‘내 아버지여! 내게도 축복을 해주소서! 아버지가 빌어주는 축복은 하나뿐입니까? 아버지에게 남은 축복은 없습니까? 나한테도 축복해주소서!’ 라며 에서는 대성통곡을 하더군요.
‘아니 이럴 수가!’

나는 다시 한 번 나를 생각했습니다.

‘우리 자식들도 나한테 이럴까? 늙고 병든 아버지에게 축복해달라고 애원하고 통곡하며 매달릴까? 흥! 요양원에 가두지나 않으면... ...’

마지막으로 또 놀란 점은 이삭의 와이프인 리브가 라는 여자 때문이지요. 도대체 자기 남편의 권위, 특히 축복해주는 권위를 얼마나 믿고 인정했으면 이렇게 야곱과 에서 라는 두 아들을 피눈물나는 통곡과 복수의 상황 속에 던져 놓을까요? 나는 이번에는 나의 와이프, 이수진의 얼굴을 떠올랐습니다. 오리털 잠바를 안 사주고 나를 윽박지른 이수진 와이프! 와이프가 나의 권위를 인정하는 때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아.... 자식들을 훈계하고 제대로 키우게 하려고 두 손에 회초리를 든 아비 父! 자식들을 얼마든지 축복해주고, 그 권위를 한없이 인정받는 아버지, FATHER!

나는 어떤 아버지이기에 오늘도 나의 두 아이는 내 목소리에 강아지처럼 뛰어나와 반기지 않는 걸까요? 왜 나의 아이들은 내 목소리를 텔레비전과 스마트폰 바닥으로 확 구겨 넣는 걸까요? 왜 나의 두 아이는 그 까맣고 초롱초롱한 사랑스런 눈동자를 나에게 향하지 않은 채 말하는 걸까요?

나는 창세기 27장을 쓰는 덕분에 아버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기족교는 ‘하나님 아버지’ 라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해서 나의 신앙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나의 ‘내가 아버지 됨’에 대해 고민하다가 우연히 성경 속의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 됨‘을 만난 것이라고나 할까요?

대한민국에서 너무도 평범한, 아니 때로는 초라하고 비굴하며, 서글픈 아버지 중의 하나인 나. 성경 속에서, 성경을 통해 아버지에게 축복받고 싶은, 쉰 살이 다 된 나. 사실 많이 외로웠는데 와이프 몰래, 두 아이 몰래, 쑥스럽지만 나도 나의 아버지를 갖고 싶은 나.

그래서 나는 ‘나의 아버지’를 찾고, 만나고 싶어 계속 성경을 필사하고 있지요. 구역장이나 와이프한테는 말하지 않고요. 하지만 아이들한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답니다.

‘야! 이 못 된 나의 자식들아! 자식이라고 잘난 체 하지 마! 나도 이제 아버지가 생겼어! 그래, 우리 아버지는 니네들 아버지처럼 가난하고 찌질하지 않아. 자식들한테 그런 험한 대접도 받지 않아!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 궁금해? 궁금해? 그럼, 너희들도 책 좀 읽어라, 책 좀! 성경이라는 책을! 그럼 반성 좀 엄청나게, 아주 대박으로 할 거다!’

노경실 - 한국일보,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소설과 동화 당선됨. 현재,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국립중앙도서관 소리책나눔터 부위원장. 작품은 상계동아이들, 복실이네 가족사진, 열네 살이 어때서, 사춘기 맞짱뜨기, 우리 아빠는 내 친구, 철수는 철수다, 짝꿍 바꿔주세요, 등 많은 책을 펴내고, 활발한 번역작업을 하고 있음. 일산 벧엘교회 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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