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된 240km의 길에서 희망을 보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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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된 240km의 길에서 희망을 보다 <상>
  • 김목화 기자
  • 승인 2013.01.29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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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과 신부님 '어깨동무'하며 걷는 평화의 여정

▲ 전주의 대표 관광지인 전주한옥마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보물 317호)을 모신 경기전과 문화유적들이 있다. 돌담 넘어로 최초의 천주교도 순교터인 전동성당이 이색적이다.

7대 종단 유적지 60곳 품은 전라북도 ‘아름다운 순례길’
전라북도 전주, 익산, 김제, 완주를 잇는 ‘아름다운 순례길’은 걸어서 꼬박 열흘이 걸렸다. 길 속에는 느리고 바르고 기쁘게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달팽이 ‘느바기’가 있었다. 느바기는 전라북도 4개의 시와 군을 가로지으며 기독교, 불교, 유교, 원불교, 천주교, 민족종교 등 종교와 종교 사이를 이으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평화가 있는 전라북도 ‘아름다운 순례길’을 느바기와 함께 걸어가 보았다.

걷는 동안 드넓은 평야와
깊이에서 올라오는 새파란 저수지
어느새 길 속에서 아름다워지고 있는
내 마음도 훈훈 몸도 튼튼

하루는 처치스테이
하루는 피정의 집에서 순례를
걷다가 힘들면 한 숨 쉬어가자

스페인에는 야고보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그리스도교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이슬람 신도들의 ‘메카 순례길’이, 불교의 나라 티베트에는 ‘리싸 순례길’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이 담긴 ‘예루살렘 순례길’을 가기 위해 이스라엘을 찾는 순례자들도 많다.

순례란 종교문화적인 뜻을 담아 성지를 향하는 것으로, 수행과 수련을 포함한 거룩한 의식을 말한다. 전라북도에 가면 종교를 막론한 순례를 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스님이 천주교의 정신이 깃든 천호 피정의 집까지 여정을 하고, 신부님이 원불교 숲 문화센터에서 잠을 청하며, 원불교의 교무님이 교회에서 묵어가고, 목사님이 송광사의 템플스테이에서 잠시 머문다.
바로 ‘아름다운 순례길’이다.<편집자주>

아름다운 순례길(www.sunryegil.org)은 유교, 불교, 원불교, 개신교, 천주교, 민족종교 등이 대화와 소통을 위해 전라북도 지역의 다양한 종교문화 유산을 연결해 만든 순례길이다. 우리나라의 왠만한 종교가 길 하나에 다 모여 있다. 성당 뒤편에는 원불교 교당이 있고, 절 앞에는 100년이 넘은 교회가 맞이하고 있다. 이국적인 로마네스크 풍의 성당을 지나면 태조 이성계의 어진(보물 317호)을 모신 경기전과 문화유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서로 다른 종교가 어깨동무하며 사는 길이다.

전북 전주시(32㎞), 익산시(87.6㎞), 김제시(40㎞), 완주군(80.4㎞)에 걸쳐 조성된 아름다운 순례길은 9개 코스로 240㎞에 이른다. 코스 1개의 거리가 평균 27㎞다. 이른바 뚜벅이 여행자 코스로 하루에 하나씩 걸으면 꼬박 9일이 걸린다. 지역과 주제에 따라 나뉘는 ‘아름다운 순례길’은 길마다 국내 7대 종단에 소속된 종교 유적지는 물론 순교지 60여 곳 등 한국의 아름다운 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1코스와 9코스는 성지순례와 전주시내 관광으로 이어지고, 2코스와 3코스는 완주군의 소박한 시골마을에 박혀있는 천주교와 기독교 성지를 찾아가는 길이다. 익산시에 있는 4코스는 우리나라의 곡창지대 호남평야를 가로지르고 있어 광활한 벌판을 보며 사색에 잠길 수 있다. 김제시에 있는 7코스는 여러 종교의 성지를 차례로 방문할 수 있다.

▲ 전봇대에 표시된 느바기와 그 뒤로 보이는 금평저수지는 마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가을 세계순례대회도 열려 국내는 물론 해외 관광객들도 종교와 한국의 정취를 맛보러 2만여 명이 다녀갔다. 아름다운 순례길을 내딛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숨막힐 듯한 자연풍광에 넋을 잃기도 하고, 너른 평야에 자리잡은 곡창지대를 거닐며 해맑은 농심도 읽을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나는 길마다 만나는 시골의 순박한 사람들의 친절은 절로 마음을 정화시킨다. 전체 여정을 살펴보면 이는 더욱 잘 드러난다. 만경강 갈대밭과 제남리 뚝방길, 고산천 숲속 오솔길 등 포장도로가 아닌 아름다운 순례길에서는 자연과 환경에 흠뻑 취하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순례길은 2009년 천주교 신자로 이루어진 (사)한국순례문화연구원이 조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11월 개통했다. 그 후 단체 이름이 세계순례대회조직위원회로 바뀌었고 전라북도가 조직위원회와 공동으로 순례길을 관리하고 있다.

순례길이 조성되자 기독교, 불교, 유교, 원불교 등 4대 종단의 소통도 활발해졌다. 세계순례대회조직위원장을 맡은 김수곤 전 전북대 총장은 “전라북도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순례길은 이제 어느 하나의 종교만이 아니라 여러 종교와 문화가 더불어서 새로운 정신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세계가 눈길을 모을만한 발걸음”이라고 설명했다.

▲ 순례길 여권.
아름다운 순례길에는 달팽이 마스코트가 있다. 느리게, 바르게, 기쁘게 걷자는 뜻을 담은 달팽이 느바기다. 아름다운 순례길의 로고이자 마스코트 느바기는 길마다 이정표로 그 역할과 몫을 하고 있다. 또한 전주시 전북대학교 정문 앞에 위치한 한국순례문화연구원 사무실에 들르면 1만 원으로 순례자 여권을 살 수 있다. 여권에는 순례길이 한 눈에 들어오는 지도와 각 코스들이 보기 좋게 나와 있다.
▲ 아름다운 순례길 순례자 증명서.
맨 뒤에는 희망의 의미를 담은 씨앗도 동봉돼 있다. 코스를 돌며 여권에 도장을 받을 수 있기도 하다. 순례길 전체 여정을 완주하면 종교최고지도자들과 도지사의 축복 메시지가 담긴 순례자 증명서도 발급받는다. 서른 가지 이야기와 함께하는 가이드북도 함께 판매한다. 아름다운 순례길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가 정성껏 쓰여있다.

박진구 특별위원(안디옥교회 담임목사)은 “순례의 길은 관광이 아니다. 보이는 환경 속에 남아있는 흔적을 통해 믿음의 선진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교제하며 누렸던 풍요한 삶을 발견하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전라북도가 제작한 ‘아름다운 순례길’ 애플리케이션도 유용하다. 코스에 대한 지도 및 숙식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아름다운 순례길을 걷다보면 어떤 곳에는 폐가가 눈에 띄기도 하고, 분뇨냄새에 코를 막고 갈 때도 있다. 더 큰 사찰건물, 더 높은 교회건물은 없지만 서로 종교가 달라도 따뜻하게 맞이하기에 이길은 아름다운 순례길로 이루어지고 있다.

▲ 슬로우시티로 지정된 전주시 내 한옥마을에 가면 느바기가 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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