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르포] “이번이 마지막 수술이 돼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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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르포] “이번이 마지막 수술이 돼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 살고 싶어요”
  • 김목화 기자
  • 승인 2012.12.28 0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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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아암 환아들이 있는 어린이병원, 33병동. 환우의 한 부모가 밝은 얼굴로 간호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환우들에게 듣는 새해에 바라는 소망

하루 약 3만 명이 다녀가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1885년 H.N.알렌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광혜원)으로 창립된 이래 우리나라 의료계를 선도하고 있다.
로비에 들어서니 125년간 지켜온 창립정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새해에는 더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세브란스병원을 찾는 환우들의 새해 소망과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자주>

따뜻한 소원 트리 이야기
2012년 12월 27일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본관 로비에 설치된 커다란 ‘소원 트리’ 앞. 손바닥만한 빨간 화분 330개에는 병원을 다녀간 사람들의 소원들이 가득 적혀있다. 환자나 방문객 누구든지 소원을 써 화분에 꽂아둘 수 있게 카드와 펜도 비치했다. 그렇게 모인 카드가 설치된지 한 달만에 1만5천 장을 넘었다.

“나 이거 핸드폰으로 한 장만 찍어줄 수 있어요?”

이마에 주름이 푹 페인 이창수 씨(노량진송학대교회, 80)는 어린 율마나무에 소원을 적은 작은 팻말을 꽂았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아들 박세열, 병마를 이겨내게 하여 주십시오. 2012년을 끝으로 꼭 퇴원을 할 수 있게 하여주십시오. 아멘’.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아들을 위해 이 씨가 꽂아둔 카드다.

아들 박 씨는 당뇨합병증으로 8개월 동안 입원중이다. 사업차 필리핀에서 타지생활을 하느라 자신의 병을 돌보지 못해 합병증이 왔다. 이 씨는 “24시간 동안 투석 받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 목이 메어 밥도 넘어가지 않는다”며 “하지만 하나님 십자가로 씻음받길 믿는다”고 말했다.


소아암병동의 새해 소망

찬양 부르기를 좋아하는 4살 송민찬 군. 민찬이는 작년 여름 갑작스런 고통을 호소했다. 여기 저기 병원을 찾았지만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 15세 이하 소아에게는 100만 분의 1 정도로 희귀한 ‘소아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었다.

엄마 나윤희 씨(검단수정성결교회, 42)는 다가오는 15일을 기다리며 기도에 열심이다. ‘하나님. 마지막 수술이 되게 해주세요’. 시어머니도 중보기도회를 열어 민찬이를 위해 기도한단다.

“올해 4월에 치료를 중지하고 유지하는 단계였는데 2개월만에 다시 재발했어요. 많이 속상했지만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그리고 100% 맞는 골수 이식자가 중국에서 나타났어요. 15일에 이식수술을 하는데 오직 기도로 준비하고 있어요”.

김치찌개와 추어탕을 좋아하는 민찬이, 영어로 구구단을 12단까지 외는 민찬이는 정말 영리한 아이다. 나 씨는 “아직 큰 산들이 남아있지만 다시는 재발없이 나아지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소아암병동 원목 이규현 목사는 “밝고 명랑한 민찬이는 그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고통에도 자주 웃고 찬양도 즐겁게 부른다”며 “이번 수술이 마지막 수술이 되기를 함께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아암 병동 원목실 배기선 사모는 이날도 병원을 둘러보며 환하게 환우들을 돌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수년간 소아암 병동을 돌보며 많은 아이들을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기도 했다.

“새해에는 아픈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이곳에서 치료받고 다 나아서 사회에 큰 인물들로 자라길 늘 기도한답니다”.

머리가 어른 주먹만한 작은 아기가 엄마품에 안겨있다. 태어난지 28일 된 아연이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팠다. 요관이 2개라 배에 자꾸만 물이 찬다. 엄마 신지연 씨(32)는 “우리 아연이가 신장이 안 좋은데 하나님께서 아연이를 많이 사랑하셔서 수술없이 자연 치유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어린이병동에는 2000년에 개교한 어린이병원학교가 있다. 면역기능이 저하된 학생을 위한 33병동 샘물반과 그 외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일반 어린이 환자를 위한 37병동 꿈나무반을 운영 중이다. 월 평균 127명의 학생이 이용한다. 연간 이용 학생수는 1천 명이 넘는다.

오후 2시 꿈나무반. 예쁜 피아노소리와 함께 청아한 어린이들의 밝은 노래소리가 문 밖까지 들려왔다. 함께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지어 부르고, 율동하며 환자복을 입고 링거줄까지 매단 아이들은 하하 호호 웃음을 터뜨렸다. 수업 내내 아이들은 아픔을 잊은 듯 보였다.

세브란스 어린이병원학교 학생부장 박애란 씨는 “부모와 환자 아이들을 위로하고자 생긴 어린이병원학교는 할 수 없이 입원하는 아이들에게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지도하기 위해 연구하며 노력중”이라며 “특히 재활병동, 일반병동의 환아들은 수업을 통해 높은 완치율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피아노학과에 재학중인 김수아 씨(사랑의교회, 21)는 벌써 1년째 자원봉사로 음악수업을 이어가고 있다. 김 씨는 “봉사를 통해 나의 음악적 재능을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한다”며 “또 병원에 드나들며 내가 할 수 있는 사람 살리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음악으로 소통하고 치유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내년에도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아이들에게 음악으로 말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다는 김 씨의 눈에는 희망이 반짝거렸다.

정성을 다해, 사랑을 담아
오후 4시 다시 찾아간 소원 트리. 트리 앞에 놓여진 커다란 박스가 어디론가 이동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박스 안에는 손으로 뜬 목도리, 장갑, 모자들이 가득하다.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 등 색도 크기도 다양하다. 보기만 해도 따뜻한 겨울 소품의 주인은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을 노숙인이다. 세브란스병원은 병원 밖으로도 치유의 손길을 보내느라 바빴다.

“사무실에 여직원들이 많은데 삼삼오오 겨울이면 취미로 뜨개질을 하곤 했어요. 그러던 중 나눔과 섬김을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우리의 재능을 기부하자는 의견이 나왔죠”.

보험심사팀 최유경 씨는 “재능을 기부함으로 노숙자가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더불어 우리 나라도 따뜻해지면 좋겠어요”라며 “많은 사람들이 각자 가진 작은 취미를 살려 사회에 환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녁 6시. 캄캄해진 밤하늘을 바라보던 정유리 간호사는 링거줄을 교환하기 위해 손놀림을 바삐 움직였다. “이곳에 오는 환자분들이 새해에는 다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세브란스에서 만난 환자들과 가족들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왜 나만 아플까’가 아닌, ‘그분의 이유가 있겠지’하는 마음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새해에는 다 나을 거라며, 새해에는 더 건강할 거라 서로를 위해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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