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쓴 하나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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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9.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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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하 교수의 풀어쓰는 이야기 교회사 - (8)

                                           성경의 형성과정

▲ 백석대 역사신학
신약성경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스도교가 시작한지 20년쯤 지난 51년 데살로니가전서부터다.

안타깝게도 그리스도교 역사의 처음 1세기 동안 신약성경 이외에 전승된 그리스도교 다른 문헌들을 찾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의 각 권의 기록연대나 쓰인 장소 및 몇몇 집필자들에 대하여 학자들마다 견해를 달리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의 집필 시기를 1세기 말에 둔다면 거의 50여 년간 신약성경 집필 기간이 경과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쓰인 성경이 전달되고 회자되어 그리스도교 공동체들 안에서 성경의 활용이 일상화 된 것은 일정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그래서 학자들은 오늘 우리들이 보는 신약성경 27권을 모두 포함하여(지역 공동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형성된 신약성경이 다 모아져서 공동체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된 때는 빠르면 140년 아주 늦어도 180년경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신약성경이 온전히 27권으로 확정된 것은 367년 알렉산드리아 회의에서다.(아타나시오스의 39번째 부활절 편지, 그리고 라틴어권에서는 382년 로마회의 기록관련 사본)

신약성경이 모두 모아져 교회의 신앙 규범으로 사용되기 이전에는 케리그마(선포된 말씀, 구전전승)가 공동체를 세우는 최고의 기준이었다. 뿐만 아니라 케리그마에 토대를 두고 후에 신앙고백과 예배식에 녹아들게 되는 신앙의 규범(혹은, 진리의 규범)은 영지주의 문헌들로 성경의 경전 결정에 혼란이 야기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이 아닌 것을 구별하는 시금석이 되었고, 신약성경이 모두 모아진 후에는 성경해석의 기준이 되었다.

성경의 경전화 과정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진행되었다. 팔레스타인 중심의 유대인들은 성전 중심의 신앙 구심점을 갖고 있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구약을 예언서까지를 포함하여 성경으로 중시하였으나 사두개인들은 모세 오경만을 중시했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면서 바리새인들은 야브네에서 95/6년을 전·후하여 유대교개혁을 주도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히브리어 중심의 구약성경을 22권(오늘 우리들이 사용하는 구약성경 39권과 같은 것)으로 제한하였다. 또한 그들은 예배식을 위하여 그리스도교를 저주하는 기도문을 담은 18항의 기도문을 결정하였다. 이제 성전을 잃은 유대인들에게 구약성경이 신앙의 구심점이 되었다.

그러나 헬라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70인 역(LXX) 구약성경을 경전으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중기 플라톤 사상에 영향을 받았던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학자 필로의 알레고리적인 구약성경(LXX) 해석은 처음 4세기 동안 그리스도교의 구약성경 해석의 원리가 되었다.

이미 구약성경의 라틴어번역이 있었지만 383년 번역의 아쉬움을 느낀 로마의 감독 다마수스가 히에로니무스에게 부탁하여 번역하였던 라틴어 성경(불가타역, 일부는 6세기까지 번역이 진행되어 전권이 완성됨, 총 47권, 8권의 외경 포함)은 종교개혁 때까지도 사용되었다. 로마 카톨릭교회에서는 오늘도 지속적으로 이를 사용하고 있다. 프로테스탄트교회는 히브리어 본문을 전제로 정해진 22권에 해당되는 39권만을 구약성경으로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다.

신약성경은 2세기 중엽 그리스도교가 마르키온과 영지주의 이단들에 의하여 존재를 위협받을 만큼 위기 속에서 경전화 과정을 밟게 된다. 특별히 영지주의 이단들은 유사 복음서들, 사도편지들, 묵시문헌들을 쏟아 놓음으로써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위태롭게 만들었다. 사실 신약성경의 형성은 영지주의에 대한 하나의 방어였다. 영지주의 자들은 자신의 글들의 권위를 위하여 사도들의 이름을 집필자로 제시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마르키온이 구약성경을 성경에서 제외하고 ‘바울의 것’만을 성경으로 인정하려는 시도와 함께 성경을 셋으로 나누는 주장이 성경형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지만 이미 기원전 130년부터 성경을 셋으로 분류하는 유대교의 습관(예수 시락서)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경전화의 시금석들은 무엇보다도 1)‘사도성’, 그리고 이미 언급한 2)‘신앙의 규범’과의 일치여부, 3)주요 공동체 안에서 수용과 예배의 활용 등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형성과정이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쓴 하나님의 말씀(벧전 1:21; 딤후 3:16)이라는 사실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신약성경이 모아진 후에는 성경이 신앙의 표준이 되었고, 그것의 해석을 삶에 적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진리는 성경의 해석과 그것을 활용한 교회회의들을 통하여 정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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