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뚝발이 40년 세월 오히려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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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뚝발이 40년 세월 오히려 감사드려요"
  • 승인 2002.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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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부산 해운대에서 1남 5녀 중 3녀로 태어난 박강월권사(50·호산나문화선교센터 이사장)는 참으로 기고한 인생을 살아왔다. 40년간 한쪽 다리를 저는 불편한 생활을 한데다 시부모님이 참석하지 않은 쓸쓸한 결혼식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모태신앙이었던 그녀가 다리를 다친 것은 태어난 지 2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2층 다락방에서 내려오다 그만 다리를 헛디뎌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고 만 것.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가족들은 ‘사망’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판정을 받았다. 응급실은 일순간에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병원의 판정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가족들은 그녀의 침상 맡에서 울부짖으며 기도하기를 2시간. 또다시 꿈같은 일이 발생했다. 온 몸이 싸늘하고 핏기 하나 없던 그녀가 갑자기 깊은 한숨을 내쉬며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나 평생 왼쪽다리를 절어야 하는 ‘소아마비’ 판정이 떨어졌다.

그렇게 살아오던 그녀에게 2번째 시련이 다가왔다. 박권사는 자신의 불편한 다리로 인해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다. 그러나 구애를 하던 남편에게 10년만에 극적으로 마음을 열고 1982년 1월 19일 결혼식을 올리게 됐지만 시부모님이 참석하지 않는 반쪽 결혼을 해야했다.

“남편의 부모님이 절대 결혼을 허락할 수 없다고 했지만 우리는 결국 결혼을 해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기간동안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때 만난 하나님으로 인해 7년 이라는 시간을 시부모님을 위해 눈물로 기도할 수 있었죠.”

그런데 7년이 지나 걸려온 한통의 전화는 그녀의 마음을 또한번 난도질했다. 시아버지의 ‘폐암말기’ 소식이었다. “그 전화를 받고 3일 동안 남편을 설득해 시아버지 병간호를 할 수 있었죠. 그날부터 매일 인천에서 병원이 있는 서울로 문병을 가시 시작했습니다.”

이런 정성때문인지 불교신자였던 시아버지는 7년 동안 인정하지 않았던 며느리와 침상에서 매일 손을 맞잡고 기도를 드렸다. 입원 10일 후 수술을 받는 날 새벽에는 박권사 부부와 시아버지 그리고 시누이와 함께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예배 후에는 시아버지가 손을 놓지 않는 바람에 수술실까지 함께 들어가 마취주사를 놓은 후 수술실을 빠져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동안 어려움의 연속이었던 박권사의 삶이 이순간부터 하나님의 축복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시아버지는 청년도 견디기 힘든 10시간의 수술을 무사히 견뎌냈을 뿐 아니라 수술 15일만에 퇴원을 해 의사들도 ‘기적’이라고 입을 모으는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이다.

또 운영하던 회사의 경영권도 차남인 박권사의 남편에게 물려주었다. 그리고 1992년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한국수필 신인상을 수상했다. “하나님께서 작가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모두 예비해 놓으셨다”며 “그 순간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깊은 감동을 느낀다”고 소리를 높였다.

무엇보다 그녀는 40년 동안 불편했던 다리가 완치되면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절정을 맛보게 된다. 특히 92, 93년은 뼈가 썩는 것처럼 다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고 잠든 동안에도 끙끙 앓던 시절이었다. 딸 체육대회에 참석하고 귀가하던 그녀는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측은 왼쪽다리가 원인이라면서 소아마비가 아니라 탈골상태에서 너무 오랫동안 방치돼 혈액공급을 받지 못한 뼈가 썩었고 따라서 뼈 있을 자리에 살이 자라나는 ‘무혈성 괴사증’이라고 설명했다. 인공뼈와 관절로 수술하면 정상인처럼 걸을 수 있다는 것. 수술만 하면 완치될 수 있는 다리를 소아마비로 알고 40년을 살아온 것이다.

박권사는 “그 사실을 알고 난 직후 하나님, 잘못 검사한 의사, 부모 등 모두가 원망스러웠다”면서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불완전한 다리 때문에 완전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었고 소외된 사람, 장애인들을 열심히 도울수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드렸다”며 지난날을 되새겼다.

수술 후 그녀는 치료를 받던 병상에서 연극을 통한 선교를 두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기획서도 만들었다. 이윽고 담임목사의 허락을 받아 40명의 단원으로 드라마선교사역을 시작했다. 결혼 후 7년 간 술을 마시며 방황했던 남편의 이야기를 담은 ‘술퍼맨의 귀가’가 그녀의 처녀작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7년간을 병원 대학교 학원 등에서 드라마로 선교활동을 벌여왔다. 평생 고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다리가 치료되면서 그녀의 예수님 전파 사역은 지난 기간을 만회하려는 듯 폭발적으로 펼쳐졌다.

결국 사역은 열매를 맺어 지난 6월 1일에는 인천시 남동구 간석동에 80여 평 규모의 기독문화 베이스 캠프인 ‘호산나 문화선교센터’의 문을 활짝 열었다. 교회 건물로 사용됐던 이곳은 1백50석의 좌석과 수준 높은 음향기기, 악기 등을 완벽하게 갖춰 연극 콘서트 출판기념회 세미나는 물론 간단한 차와 음료도 마실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박강월권사는 “호산나문화센터는 깊은 샘 속의 맑은 물”이라며 “복음의 출발지이지만 사단의 권세가 심각하게 퍼져있는 인천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문화 확산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는 곳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승국기자(sklee@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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