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은 기독교 교리의 중요한 위치 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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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은 기독교 교리의 중요한 위치 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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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8.16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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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직 교수의 십계명에서 찾아낸 그리스도인의 삶 - (4)

                                       교회공동체와 십계명

▲ 백석대 조직신학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삶이 왜 중요한가? 다원주의 사회에서 도덕기준의 절대성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절대적 도덕기준을 삶을 통해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사람이 참된 행복을 누리는 사람임을 실천적으로 변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감사의 표현이며 신앙고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십계명에서 찾아야 하는가? 첫째로, 십계명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를 제공해주는 기독교 교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십계명은 사도신경과 주기도문과 더불어 교리 공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개혁주의 신학의 중요한 교리문답 가운데 하나인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은 전체 129개의 문답 가운데 24개의 문답을 십계명에 할애하고 있다.

한국 장로교회가 중요한 신앙고백으로 채택하고 있는 <웨스터민스터 대교리문답>은 전체 196개의 문답 중에서 58개의 문답을 십계명 해설에 할애하고 있으며, <웨스터민스터 소교리문답>은 총 107개의 문답 중에서 43개의 문답을 십계명을 해설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교리문답은 기독교 신앙의 입문자가 기독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교육과정에 사용되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십계명이 어떤 공동체가 기독교회 공동체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 가운데 십계명을 모두 외울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시편 1편에 따르면 행복한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말하는 ‘율법'은 히브리어로 토라(torah)를 나타낸다. 토라는 넓은 의미에서는 하나님 말씀 전체를 가리키며,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모세오경을 가리키며, 매우 좁게는 십계명을 가리킨다. 오늘날 모세오경을 다 외울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성경 66권 전체를 다 외울 수 있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성경 66권을 다 외우라거나 모세오경을 다 외우라고 한다면 지나친 요구일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성경의 요약으로 여겨질 수 있는 십계명을 기억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하나님 말씀을 자신의 삶에서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 교회가 1960년대까지 십계명 교독을 예배순서에 포함시켰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윤리적 상대주의가 위세를 떨치는 이 시대에 사람들은 십계명과 같은 절대적 규범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람들은 절대적 진리나 영원한 진리는 없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십계명을 인류 모두가 받아들여야 하는 절대적 규범으로 여기기보다는 기독교 공동체 내부에서만 타당한 규범으로 여기는 경향을 보인다.

철학자 니체에 따르면 십계명은 이성이 억압당하던 시대에만 적합한 규범이며 오늘날 이성의 시대에는 해만 끼치는 규범이 되고 만다. 니체와 같은 사람에게 십계명이란 모세가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를 이성적 능력이 떨어지던 고대인들에게 강요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십계명을 시대에 뒤떨어진 도덕규범이나 상대적인 윤리규범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 십계명의 절대성을 변호해야 할 사명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 변호는 이론적 차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 그리스도인 스스로 십계명을 소중하게 여기며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을 십계명의 원리와 정신에 맞추어 사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십계명의 절대성을 실천적 차원에서 무시하는 셈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요약인 십계명이 보편타당하고 절대적인 규범임을 이론적으로 증명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우리 그리스도인 스스로 십계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우리 삶에서 살아내는 것이다. 그러할 때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말씀이 절대적이고 보편타당한 규범임을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실천적으로 변증할 수 있다.

오늘날 십계명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찾아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십계명에 대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는 기독교회 공동체 내에서 십계명의 중요성을 되살려야 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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