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권칼럼] 최후의만찬의 철학적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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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권칼럼] 최후의만찬의 철학적 사유
  • 허진권
  • 승인 2012.08.13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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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권 교수의 기독교 문화읽기(8)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1483~1546)는 교회를 장식하는 그림, 특히 제단을 장식하기위한 작품은 최후의 만찬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였다.

그 전이나 후에도 서양미술사에서 최후의 만찬을 소재로 한 작가와 작품들은 무수히 많다. 그 중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밀라노의 수도원 식당 벽에 그린 ‘최후의 만찬(1495~1497)’이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 이 내용의 규범이 될 정도다. 그리고 이 작품은 제작을 하기 위한 과정에 얽힌 일화로 더 유명하다.

예수의 얼굴을 그리기위해 찾아다니다가 발견한 선하디 선한 청년, 그 후 가롯 유다를 그리기 위하여 찾아다니다가 발견한 악인의 화신, 결국 이 두 모델은 동일인 이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니 이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끝없이 변하며 절대 선과 악이 없다는 메시지도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작품 속의 등장인물은 관객이 바라볼 때 화면의 왼쪽부터 바돌로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안드레, 베드로, 유다, 요한, 예수,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도마, 빌립, 마태, 다대오, 시몬. 이라고 전해진다.

이는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즉 세베대의 아내가 자기 아들들을 하늘나라에서 예수님의 좌우에 앉게 해달라는 간청을 들어준 것이라고도 전해진다. 이처럼 다빈치의 작품에서는 성경의 내용이나 당시의 이야기들에 근접한 상황을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태도가 이 당시 미술의 양식이었다.

그 후 약 400년이 지나 미국의 작가 앤디워홀(1928~1987)에 의하여 이 작품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그 중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은 워홀이 운명하기 1년 전에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제작한 대형 작품이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차용하여 흑백으로 강한 대비를 주고 특정부분을 핑크, 파랑, 노랑, 빨강 등의 색면으로 강조 하고 있다. 노랑은 끝없는 인간적인 배신을, 빨강은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상징함을 강조하기라도 한 듯, 가롯 유다의 모습은 노랑으로 강조하고 마태는 빨강으로 강조한 것이 이채롭다

▲ 엔디 워홀의 최후의 만찬.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제작하고 20년 후에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났으며, 워홀이 부릴로 상자를 가지고 전시한 1962년을 기점으로 미학자 아서 탄토(1924~)는 예술의 종말을 고하였으니 이는 서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기존 교회나 성직자들이 가지고 있는 형식주의나 잔재에서 벗어나 성경중심의 복음을 회복함이요 후자는 미술이 시각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굴레에서 벗어나 철학적인 사유로 가야한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최후의 만찬은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음식을 나누는 친교의 자리가 아닌 예수그리스도의 피로인한 대속의 역사다. 그리하여 루터는 성경중심의 복음을 강조하였다. 미술에 있어서도 단토가 예술의 종말을 주장한 이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변화하였다. 그리고 다시 많은 시간이 흘렀다. 워홀도 말년에는 화면에 십자가만을 가지고 오는 작품이라든가 소개하는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는 철학적인 사유가 전부가 아닌 진정한 자유, 참된 진리, 영원한 생명을 찾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예술도 철학적 사유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아니, 예술은 철학적 사유가 아니라 생명의 근원, 영적인 체험이 필요한 때에 이른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 각자에게 최후의 만찬장에서 하신 말씀을 하고 있다. 사도바울은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골,2:8)고 권면한다.

허진권 / 목원대 기독교미술학과 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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