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 공존하는 ‘천천히 살기 운동’ 전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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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 공존하는 ‘천천히 살기 운동’ 전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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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5.30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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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렬 교수 (강남대 세무학과)

오늘날 극심한 빈부의 격차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경제 정의는 사람들에게 어떤 문제보다 가장 긴급하게 다가오는 문제로 여겨진다. 그러나 기독교는 시대적인 요구에 대해서 깊은 숙과와 통찰에서 비롯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현실에서 동떨어진 신학적, 원리적인 논의를 넘어서 경제적인 불의를 비판하고 경제적 약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경제적 현실 문제에 대한 복음적인 대답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기독교는 경제적 약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샬롬나비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내용을 정리했다. <편집자 주>

가난한 사람들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게으른 사람을 구제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옳지 않다. 하지만 개인의 탓이 아닌 사회시스템에서 빈곤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국가와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단지 그들을 책임지지 않으려고 한다.예수님께서는 강도에게 옷을 빼앗기고 매 맞은 불쌍한 사람을 도와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예로 들어 그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다(눅 10:30-37). 강도를 만난 행인은 본인이 잘못해서 강도를 만난 것이 아니며, 강도가 존재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행인을 도왔고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곤궁에 처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하신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은 사회 모두가 나서야 한다. 그동안 기독교는 사회적 빈곤층에 대한 구호와 지원에 앞장서왔다.

그러나 교회나 교단 차원에서 개인적인 지원책에 머물러 있어 사회적으로 조직화되지 못해 효과 면에서 한계가 있었다. 그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곧 기독교가 사회구원의 이상을 실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담당해야 할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 먼저 천천히 살기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현대의 기업들은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소비패턴과 순환과정을 단축, 확대시키고 있다.

이는 자원의 과잉소비로 이어져 온난화 같은 환경문제를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지구가 가지고 있는 자원의 고갈을 급속도로 앞당기고 있다. 그 결과는 물가의 폭등과 환경문제이며, 이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그 결과 일반 서민들의 삶의 질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제의 해결 방법 중 한 가지는 천천히 사는 것이다. 나누면서 함께 그것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것이다. 한명이 12시간 노동하던 것을 2명이서 6시간씩 하고, 남는 시간에 슬로우 생활을 하면 된다.

그러면 과소비도 많이 사라질 것이고, 과소비에 의한 자원고갈도 늦출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현재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주의가 가져온 불균형을 없애고 소득재분배를 통해 유효수요를 조절하면서 빈자와 부자가 모두 함께 공생하는 길이다.

이 일에 앞장서기에 최적의 단체는 기독교다. 정신적, 물리적으로 기독교가 앞장서서 천천히 살기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둘째로 사회적 기업의 육성이 있다. 최근 유럽 선진국들의 경우 많은 사회적 기업이 비숙련 노동자들의 일자리 창출을 담당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들은 일자리 창출과 저소득 빈곤층의 자립을 위한 주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이미 많은 사회적 기업들이 사회의 안전망으로 작동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노동의 숙련 여부나 나이에 관계 없고,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회의 관심만 있다면 얼마든지 공생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사회적 사업에 대한 육성과 지원 및 운영의 연계를 기독교 단체가 맡아서 하면 여러 가지로 유익한 점이 많다. 우선 기존에 하고 있던 교회의 봉사와 나눔의 일을 개인의 구호차원이 아니라 기독교 전체의 차원에서 정부와 협력하여 사회적 기업과 연계시켜주고 지원해 준다면 일자리 창출과 경제적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기대한다.셋째로 NGO 활동의 조직화가 필요하다.

노동자들의 보수와 삶의 질은 절대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삶의 질이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임금이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적 상황에서 명목소득을 높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반면 사회적 임금을 높이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다. 화폐 형태의 임금이 아닌 공연문화나 여가를 위한 체육과 공원시설, 휴식공간, 도서관 등의 문화시설 등이 그것이다. NGO 단체, 특히 종교 단체들은 도서관을 비롯한 사회적 교육과 문화, 여가 등과 관련하여 범 기독교적 차원에서 지원시설을 건립하고 운영할 수 있다.
 
이로써 기독교의 전파와 사회적 약자의 인간다운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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