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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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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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5.16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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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근 목사( 이수중앙교회)

우리는 스승의 날을 보내면서 바람직한 선생님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고 그들에게 존경과 성원의 박수를 보내야 한다. 어느 날 어미를 잃은 독수리 새끼를 불쌍히 여긴 나무꾼은 병아리 우리에 넣어 함께 길렀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병아리는 닭의 모습으로, 독수리는 독수리 모습으로 자랐다. 하지만 독수리는 자신이 독수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독수리 새끼는 낯선 독수리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유유히 나르고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움과 부러움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며 탄성을 지른다. “아, 나도 단 한 번이라도 저렇게 멋진 모습으로 하늘을 날아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던 어느 날이었다. 이 독수리에게 결정적인 날이 찾아온 것이다. 어떻게 알았든지 어미 독수리가 찾아왔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랑의 사인을 보냈다. 그러다가 총명하고 인자한 어미 눈이 순간적으로, 새끼 독수리의 눈과 마주치게 된다. 그때 새끼 독수리는 자기가 닭이 아니라, 독수리라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 순간 어미 독수리를 따라 날갯짓을 해본다. 그 후 어미 독수리는 계속해서 새끼 독수리를 찾아주었고, 새끼 독수리는 어미 독수리를 따라 날기를 연습했다. 그렇게 하기를 10여 일, 드디어 이 새끼 독수리는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농부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어미 독수리를 따라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하늘 높이 비상했다.

이 닭장 안에서 살고 있는 독수리가 바로 저와 여러분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분명히 날 수 있는데도 날개를 펴볼 생각조차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독수리인 자신에게 끊임없이, “너는 닭이야, 그러니 절대로 날 수 없어!” 이렇게 속삭이면서 왜곡되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독수리인 줄도 모르고 닭처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생들을 찾아오셔서 온갖 사랑의 몸짓이란 몸짓은 다 해가면서 “너는 닭이 아니라 독수리란다, 너도 나처럼 나를 수가 있단다. 썩어질 육체로 살면 어떻게 하는가, 영적 존재로 살아야지.” 이것을 깨우쳐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고, 곧 선생님이 해야 할 역할인 것이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오는 것을 보고 기뻐하시며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나다나엘은 자신의 심중을 그렇게도 정확하게 꿰뚫어 보시는 주님을 보고 깜짝 놀라며, "어떻게 나를 아시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예수님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다”(1:48)고 하셨다. 이 주님의 한마디 말씀에 그만 나다나엘은 “랍비여, 당신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고 고백한다. 이 얼마나 경이롭고 놀라운 발견인가?

그러자 예수님은 크게 기뻐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다나엘아,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너는 보게 될 것이다.....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여기에서 “당신만이 인간 영혼을 하늘 사다리에 오를 수 있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신비한 비밀을 밝히 보여주셨다. 참 스승은 제자들에게 자기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에 눈을 뜨게 하고, 큰 꿈을 가지고 그 가능성에 도전하도록 만든다.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를 하늘나라에 이르는 사다리에 오를 수 있도록 해주셨는가?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주님의 사랑이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너희는 곧 끝나버릴 이 땅의 백성이 아니란다, 영원한 하늘나라 거룩한 내 백성이라”고 말씀해주신다. 우리의 스승 되시는 주님을 따라 저 하늘 높이 힘차게 비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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