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저 받은 몸, 대가없이 나누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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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저 받은 몸, 대가없이 나누었을 뿐"
  • 승인 2002.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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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9일 삼성서울병원 수술실. 10여명의 스텝들이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수술이 시작된 지 2시간이 지날 무렵, 한 개척교회 목사의 왼쪽 신장이 떨어져 나갔다. 적출된 신장은 신속히 옆 수술방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한 젊은 여성의 몸에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긴장된 순간도 잠시, 40대 목사의 소중한 결심은 꺼져가는 젊은 생명에게 희망을 선물했다.

조건없는 기증으로 사랑을 실천한 사랑하는교회 고성원목사. 뒤늦게 목회의 길에 들어선 고목사는 “너희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수술 후 4일째, 고목사의 몸상태는 생각보다 좋아 보였다. 약간 수척해 보이는 얼굴엔 환한 웃음이 가득했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순간에도 두려움 같은 것은 없었어요. 내가 결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이니 담대할 수 밖에요. 오히려 건강한 몸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더 감사할 뿐이죠.”

고목사가 기증을 결심한 것은 지난 7월 말.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사랑의 행위는 늘 부족하다고 느껴왔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고목사에겐 정말 갈급한 기도제목이었다. 기도는 계속됐고 어느날 그는 신장기증을 결심했다. 그리고 한달 뒤 그의 결심은 실천으로 나타났다.

결코 평탄치 않았던 과거, 뒤늦게 목회의 길에 들어서기까지 정말 여러번 넘어졌다. 세상적인 풍요과 명예를 위해 열심히 살아왔던 시간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부질없는 헛수고에 불과했다.

대학 졸업 후 에너지관리공단에 입사하면서 안정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른 꿈이 있었다. 평탄한 직장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던 것. 소위 ‘한 건’을 노렸던 그에게 돌아온 것은 망가진 몸과 날아가버린 재산뿐이었다.

자신이 재산을 탕진하며 방황을 거듭하던 사이 사랑하는 아내마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불면증은 그를 괴롭혔고 수시로 찾아드는 위염과 원인모를 근육통에 몸은 점점 더 수척해져 갔다.

17년의 방황.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신앙의 열심이 없었던 그에게 하나님은 좌절과 실패라는 채찍을 가했다. 바닥까지 떨어진 그의 입에서는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원망만 흘러 나왔다. 분당과 목동을 오가는 긴 출근길에서 그는 운전대를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흐르는 눈물을 타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도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왜 나까지 목회자로 만들어 고생을 시키시려느냐”며 항변하던 그는 결국 하나님께 타협을 요구했다. “하나님이 저를 꼭 쓰고 싶으시다면 제 성격을 먼저 바꾸어 주세요.”

고성원목사의 성격은 직설적이고 냉소적이었다. 타인의 이야기에 귀기울일줄 몰랐고, 계속된 실패로 마음은 피폐해 있었다. 그의 기도가 있은 후 어느 순간부턴가 성격이 변해가고 있었다. 말투는 어눌해지고 타인의 이야기를 먼저 들었다.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이것은 기도의 응답이었다. 목회자로 쓰기 위해 하나님은 고목사의 성격을 먼저 바꾸어 놓으신 것이다. 바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96년 소명의 길로 첫발을 내디뎠다. 어려운 시간을 함께 견뎌준 또 한명의 반려자도 만났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한 후 고성원목사의 삶은 180도 바뀌어졌다. 잃었던 건강과 재산도 되찾았고 개척 2년째인 지금 불과 20명의 교인뿐인 작은 교회지만 크나큰 비전을 품고 전진중이다.

“교회의 열매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10개 이상의 교회를 분리 개척하고 싶습니다. 목회자의 열매는 또한 목회자이지요. 100명의 목회자에게 교회를 세워주고 개척을 후원하고 싶습니다. 성도의 열매는 성도입니다.

1000명의 청소년을 민족적 지도자로 양성해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정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저의 마지막 목회철학입니다. 10000개의 가정이 믿음안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그의 목회 비전은 누구보다 크고 뚜렷했다.

다른 사람에게도 장기기증을 권하고 싶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목사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내가 했으니 남도 해야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요. 하나님께 사랑받은 사람이 어떤 일이던 기도로 순종하면 그것이 최선의 실천이라고 생각해요. 장기기증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이제 고성원목사는 오른쪽 신장 하나로 살아간다. 퇴원 후 그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자신의 신장을 나눠 가진 환우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 하나님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 조건은 없다. 하지만 그녀가 하나님의 고귀한 사랑을 알고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고목사의 바램이다. “더 건강하게 살아갈거에요. 그래서 목회의 꿈도 이루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담대히 순종할겁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장기기증. 목회자가 된 그가 실천한 첫번째 사랑이 소중하게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현주기자(Lhj@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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