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단독 인터뷰…천기원 전도사 이국 땅 옥중서 '하나님 은혜'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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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단독 인터뷰…천기원 전도사 이국 땅 옥중서 '하나님 은혜' 체험
  • 승인 2002.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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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기원전도사(두리하나선교회)는 지난 달 23일 선교회 사무실에서 인권조차 말하기 힘든 그동안의 수감생활을 털어 놓았다. “밀가루로 만든 만두(내몽골에서 주식으로 먹고 있음) 두 개와 물 한 컵이 전부인 한 끼 식사. 그나마 식사도 아침과 저녁 두 끼밖에 주지 않았다. 또 화장실은 하루에 아침 7시와 오후 4시에만 이용할 정도로 엄격한 규율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외부적인 고통보다도 천전도사를 가장 두렵게 만든 것은 수감기간 동안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손길과 연락할 수 없었다는 것. 그래서 천전도사는 수감기간 내내 인간적인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그동안 잘못된 신앙을 회개했다. “매일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새로운 믿음을 깨닫게 되니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셨다”고 자신의 신앙체험을 들려줬다.

“처음 체포됐을 때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인간적으로 생각했다. 공안도 돈을 쓰면 곧 풀려날 것이라며 회유했고, 변호사도 ‘돈을 쓰면 쉽게 해결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벌금 5만 위안에 징역 7년 형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돈을 써서 해결해 볼까도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이런 고민 중에서 천전도사는 감옥생활 중 소변을 제대로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병을 얻었다. “5월29일도 아픈 상태에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이르러서는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고쳐달라고. 기도 중에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간밤의 고통을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역대하 19장6절에서 7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석방에 대한 확신을 주셨다. “재판관에게 이르되 너희는 행하는 바를 삼가하라 너희의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위함이니 너희가 재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실지라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편벽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음 심도 없으시니라”라고.

천전도사는 이 말씀에 의지해 뇌물을 쓰지 않았다. 함께 체포된 중국측 가이드들은 “앉아서 기다릴 수 없다”며 뇌물을 썼지만 오히려 그들은 벌금 3만 위안에 1년 징역형을 선고 받게 됐지만 천전도사는 기적과 같이 5만 위안의 벌금만 물고 풀려나게 됐던 것. 지금까지 1백70명의 탈북자를 국내에 데려올 정도로 이 부분에서 자신만만한 노하우를 갖고 있었던 천전도사는 지난 12월에 체포된 이유를 “기도하지 않고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만 믿었던 자만 때문”이라고 말했다.

천전도사는 체포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해 12월24일 중국에서 연락을 받고 중국 연길로 건너갔다. 탈북자 중에는 출산을 앞둔 임산부도 있었고 중국 돈 3천 위안에 임신매매 됐다가 구출된 여인을 포함한 12명이 있었다. 그동안 이용했던 방법을 이용해 그들을 데리고 내몽골에 갔었다.

그들에게 국경을 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몽골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너무나 순조롭게 진행됐고 당연히 성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택시를 타고 국경을 벗어나려고 했는데, 우리를 태운 택시기사는 ‘야간 통행 허가를 얻어야 한다’며 경찰서로 차를 몰았고 신분 조사과정에서 체포됐다.”

이 때 한국의 모 방송국 기자도 함께 있었다. 기도하고 준비했으면 자신의 잘못된 사실이 알았을 것이라며 자신의 교만을 회개했다. 국경을 넘은 12명의 탈북자들도 몽골 유목민의 신고로 체포됐다는 사실을 석방된 이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를 깨닫는 중요한 기회가 됐다고 말하는 천기원전도사는 “이번 기회는 탈북자 선교와 자신의 신앙을 점검한 중요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20대부터 시작한 사업으로 많은 돈을 모으기도 했던 천기원전도사는 목회자가 되라는 주위 사람들의 충고를 무시할 정도로 잘 나가는(?) 사업가였다. 그러나 자신이 운영하는 호텔업은 점점 어려워졌고, 결국 아파트 한 채만을 남기고 모든 재산을 탕진했다. 많은 시련을 겪은 후에야 방배동 소재 기독신학에서 신학공부를 하게 됐다.

이런 그가 학생 신분으로 탈북자들과 만나게 된 것은 1999년부터다. 중국 예볜 지역에 여행을 갔다가 탈북 여성들이 6백 위안에 팔려가는 것을 보고 그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스스로 인터넷을 배우면서 홈페이지를 개설해 탈북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알리면서 본격적으로 탈북자 선교 뛰어들었다.

천전도사는 “그동안 한국에 데려온 탈북자들 중 감사하다고 찾아온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줄 믿고 이 일을 하고 있다”며 계속해서 탈북자를 위해 헌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영락기자(ysong@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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