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사모의 삶, 경제적 궁핍과 건강악화 ‘이중고’
상태바
은퇴 후 사모의 삶, 경제적 궁핍과 건강악화 ‘이중고’
  • 정민주 기자
  • 승인 2012.03.28 18: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유숙 사모, 은퇴목회자 아내에 관한 최초의 논문 발표

대부분 목회자 사모 조기은퇴 후 경제난 겪어
교단차원에서 은퇴 위한 교육 프로그램 필요

K 사모는 몇 년 전 피와 땀으로 평생을 일궈 온 교회를 떠났다. 남편의 건강악화로 아무 준비도 없이 조기은퇴를 하게 된 것이다. 그 후로 정신적으로는 우울과 허전함, 무력감 등을 느꼈고 남편의 병수발을 하면서 건강은 악화됐다. 은퇴 후 사례비가 나오지 않으니 경제적으로도 형편이 어려워져 자녀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K 사모처럼 대부분의 은퇴목회자 아내들은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 하지만 한국 교회에서 은퇴목회자에 비해 은퇴목회자 아내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미미한 실정이다.

▲ 안유숙 사모(상도성결교회)는 “사모들의 삶의 가치가 인정되고 삶의 주체로 살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은퇴목회자 아내들의 실제적인 상황은 어떨까? 최근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학과(상담학 전공) 안유숙 사모(상도성결교회)가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 ‘목회자 아내의 은퇴 적응 경험 연구’는 은퇴목회자 아내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그의 연구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은퇴목회자 아내에 관한 최초의 논문이라는데 더욱 의미가 있다.

안 사모는 “내가 목회자 아내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며 “논문을 통해 은퇴목회자 아내들의 소외된 삶이 드러나고, 한국 교회와 사회의 관심이 높아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 건강·경제적 어려움 공통
이 논문은 현상학적 방법론과 여성주의 목회신학방법론으로 65세에서 78세의 은퇴목회자 아내 14명을 면접 설문했다. 논문에 따르면, 사모들은 건강상의 문제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은퇴 전 자고 일어나기도 바쁠 정도로 교회와 교인들을 열심히 섬겼던 사모들이지만, 모순되게도 은퇴 후 경제적 궁핍으로 은퇴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더욱이 은퇴 후 사별을 경험한 A 사모는 심리적, 경제적 어려움이 그만큼 큰 것으로 드러났다. L 사모도 교회 형편이 어렵다고 사례비를 안 주는 것에 대해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완전히 없는 상태로 시작하는 거예요. 지금 교회에서 80만 원씩 나오는데, 하다못해 국민연금도 안 들었고 총회에서 하는 것(총회 연금)도 안 들었지. 지금 교회에서 주는 것도 형편이 어렵다고 안 주는데. 어떻게 해, 가서 싸울 수도 없고….”

이에 대해 안 사모는 “사모들은 평생을 헌신했음에도 자신의 필요나 대가를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 교회에서 사모들은 노후를 준비할 겨를도 없이 자신이 가진 능력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정당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한국 교회 안의 강한 유교전통문화가 사모들에게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사모들은 남편의 건강악화로 인해 조기은퇴를 권유받기도 했다. 은퇴 후 남편의 병수발로 사모들의 건강도 악화돼 관절과 허리 통증, 당뇨, 고혈압 등의 만성병을 호소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은퇴로 인한 역할 상실로 사모들은 우울, 허전함, 외로움, 무력감을 경험하고 있었다. 더불어 ‘목회자 아내는 달라야 한다’거나 ‘완벽해야 한다’고 규정된 교회전통의 사모상도 사모들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척교회하면서 목사 사모가 아프다고 교인들 앞에서 찡그리면 안 되잖아요. 나는 내 몸이 아파도 교회 갔다가 집에 와서 울 망정 교인들 앞에선 항상 웃었어요. 그러니까 그게 내 몸에 밴 거야. 지금도 아무리 아파도 아픈 걸 몰라.”(B 사모)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모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의 신앙은 은퇴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신앙은 사모들로 하여금 은퇴로 인한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도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하게 했다.

또 신앙은 나이 듦과 은퇴에 대한 인식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연구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모들은 은퇴를 ‘인생주기의 자연스러운 과정’과 ‘쉼’ 또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또한 사모들은 남편과 자녀, 친구, 동료, 이웃과의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 사모는 “사회적 관계망과 지원은 인간의 기본욕구인 소속감, 사회성을 충족시켜줌으로써 심리적 안녕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부 관계도 사모들의 은퇴 적응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편의 은퇴로 더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갖거나 취미활동을 공유하는 등으로 부부의 상호의존성을 증가시켰다.

# 은퇴 적응 위한 제도 마련 시급
그렇다면 목회자 아내의 은퇴 적응을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안 사모는 문화적 고정관념에 대한 인식전환, 지지그룹 형성의 개인적 차원과 은퇴 후 노후 보장 지원, 배움과 성장의 기회 제공이라는 교회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인적 차원에서 은퇴목회자 아내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목회자의 그림자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또 나이 듦과 은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은퇴 후 그들이 새롭게 자기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지지그룹을 형성하는 것이 요구된다.

교회적 차원에서는 사모들의 헌신과 수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할 뿐 아니라 사모들이 당하는 문화적 차별에 대한 인식 전환도 필연적 과제로 떠올랐다. 더불어 사모들의 은퇴 후 노후 보장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기울여야 한다. 안 사모는 “교회가 사모들의 배움과 성장에 대한 욕구를 이해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교단적 차원에서 목회자 아내들을 위한 은퇴준비 교육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한 사모들이 준비 없이 은퇴를 하게 됨에 따라 은퇴 초기 적응에 어려움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안 사모는 은퇴준비 교육이나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실감하는 사모들을 위해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집단상담 프로그램은 총 8회기로 시작과 마무리 단계를 제외하면 크게 문화적 고정관념에 대한 인식, 권한부여, 해방으로 되어 있다. 참가자들이 매 회기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목회상담적 성찰을 하도록 구성했다.

하지만 실제로 프로그램을 시행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효과 검증이나 문제점을 파악하는데 한계점도 지적된다. 안 사모는 “교회나 교단에서 집단 프로그램을 시행해 효과성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은퇴목회자 아내에 대한 연구 확장을 위해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은퇴했거나 사별을 경험한 목회자 아내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등의 연구가 진행돼야 할 것”이라며 한국 교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