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롭고 평화로운 지속가능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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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롭고 평화로운 지속가능한 사회”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2.03.0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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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차 나이로비 총회(1975)

WCC 5차 총회는 식민지 착취의 땅 아프리카로 향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유하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신다’(Jesus Christ Frees and Unites)를 주제로 열린 제5차 총회는 1975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총 285개 회원교회에서 676명의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제3세계는 자유와 해방의 몸부림이 거셌다. 1969년에 리비아는 카다피가 집권했다. 1971년에 중국은 유엔에 가입하면서 국제무대에 등장했다. 1972년 필리핀 마르코스는 계엄령을 선포했고, 1973년에 미국은 칠레 아옌데 정권을 붕괴시켰다.

1974년에 포르투갈은 스피놀자가 집권한 후, 앙골라, 모잠비크, 기네비소, 쌍토메프린시페, 까보베르데를 독립시켰다. 1975년에 크메르 루즈는 캄푸치아를 장악하고 3백만 명의 국민을 살해했다.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를 점령했고, 유럽에서는 헬싱키 협정으로 냉전이 종식되었고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1939~1975)가 종식됐다.

남미에는 ‘피억업자를 위한 교육학’과 ‘종속이론’이 등장했다. 또한 ‘실천-반성’의 방법론에 근거한 해방신학, 민중신학, 흑인신학, 여성신학들이 나타났다. 인종차별주의와 다국적기업에 대한 도전이 일어났다.

WCC 총회가 열릴 당시 아프리카는 백인정권에 의해 시행된 인종차별정책이 남아있는 대륙이었다. 또 아프리카 교회들은 지도력과 재정적인 면에서 여전히 서구교회로부터 자립하지 못하고 있었다. 1971년 동아프리카 장로교회 존 가투 총무는 선교 모라토리움을 제안했다. 당시 WCC 사무총장은 도미니카 출신 필립 포터였다.

웁살라 총회 이후 WCC는 사회참여를 강화하기 위한 기구개편을 단행했다. △인종차별철폐위원회 △교회개발참여위원회 △그리스도교의료선교위원회 △교육위원회 △살아 있는 신앙 및 이데올로기와의 대화 등의 조직이 신설됐다. 1971년 기독교교육세계협의회는 WCC에 통합돼 의식화 교육 프로그램과 행동신학 연구를 지원했다. 일부 지도자들은 WCC가 사회참여로 경사되는 불균형을 우려했고 복음주의권의 그리스도인들은 WCC의 방향을 비난했다.

1973년 방콕에서 열린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는 ‘오늘의 구원’을 발표했다. 방콕대회에서 아시아 교회들은 존 가투가 제안한 선교 모라토리움을 강력하게 지원했으나, 나이로비 WCC 총회는 모라토리움을 수용하는 대신 ‘선교적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켰다.

나이로비 총회 주제는 종말론에서 기독론으로 돌아왔다. 사회참여를 지속하면서도 해방과 진보의 슬로건에 가려있었던 선교와 일치의 주제를 다시 부활시키려고 한 것이다. 당시 에큐메니칼 운동의 딜레마는 예수를 해방자(frees)로 고백하면서, 동시에 화해자(unites)로 고백하는 것이었다.

성경적 자유 개념은 바울 신학에서 잘 나타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진노, 죄, 율법, 죽음으로부터 자유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개인적이고 영적인 차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 전체의 운명을 극복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이기 때문에 인류와 함께 연대해야 하는 정치성을 포함하게 된다.

총회 주제가 ‘하나 되게 하신다’는 표현을 담은 것은 WCC의 신학적 방향이 웁살라 총회의 사회참여적 성격에서 통전적인 방향으로 교정된 것을 나타냈다. 또한 동방정교회의 참여가 크게 늘어나고 복음주의자들과 오순절 교회의 참여도 늘어난 것을 반영하고 있다.

1~2차 총회는 비교교회론, 3~4차 총회는 가시적 교회론을 나타냈다. 그러나 나이로비 총회의 교회론은 가시적 일치를 추구하기 위한 방법론을 모색했다. 그 결과 개 교회들이 성만찬의 교제를 통해 가시적 일치를 표현해야 한다는 ‘협의회적 친교’를 주장하게 되었다. ‘협의회적 친교’란 개 교회들이 각자가 지닌 독특한 은사를 지키면서도 보편교회를 나타내는 방법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보편성은 인간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특수성 안에서 발견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잘 나타낸 것이다.

또한 나이로비 총회는 에큐메니즘을 전교회가 전세계와 전인격에 전복음을 전하는 운동으로 정의했는데, 이것은 에큐메니칼 운동이 진정한 통전적인 에큐메니즘으로 확대된 것을 나타내는 중요한 표현이었다.

제1분과는 영성을 사회참여와 연결시켜 이해했다. 2분과에서는 교회일치의 조건은 △공통의 목표 △동료의식 △공동의 상황인식이라고 확인했다. 3분과에서는 참된 공동체를 추구하는 수단으로서 대화를 강조했다. 나이로비 총회는 최초로 타종교인들을 초청했다. 4분과는 인간해방의 우선 과제를 △인권 △성차별 △인종차별 문제라고 보았다.

당시 전 세계는 생태계 파괴와 자원고갈 문제를 놓고 서구권 국가들과 개발도상 국가들이 대립했다. 5분과는 이러한 갈등에 대한 응답으로 ‘정의롭고 평화로운 지속가능한 사회’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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