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사회-경제정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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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사회-경제정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2.02.2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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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 역대 총회 (4) 제4차 웁살라 총회(1968)

아시아를 거친 WCC 총회는 다시 유럽으로 선회했다. 4차 웁살라 총회는 WCC 역대 총회 가운데 가장 사회 참여의 목소리가 높았던 대회다. 이 때문에 보수적인 선교와 신학의 관점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좌파대회’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당시 세계교회는 ‘하나님의 선교’가 강조되어 교회의 사회 참여는 첨예화되었다. 특히 기독교 신학이 사회학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불의에 대항하는 폭력을 정당하거나 가능한 것으로 보고, 비폭력적 혁명을 도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 같은 주장은 해방신학이 탄생한 배경이 되기도 했다.

WCC가 창립될 때 한 축을 담당했던 ‘생활과 사업’은 1925년 스웨덴에서 조직되었다. 그 대표적인 지도자는 스웨덴의 루터교 대주교 죄더블럼이었다. 따라서 네덜란드에 이어 두 번째 유럽에서 열리는 WCC 총회는 스웨덴 웁살라로 결정되었다. 이 총회에 235개 회원교회로부터 704명의 대표들이 참석했으며, 뉴델리 총회보다 38개의 회원교화가 더 참여했다. 아르메니아 정교회와 다른 정교회들이 가입했다. 이때는 WCC의 창립지도력이 물러나고 세대교체가 일어났으며, 제2대 사무총장은 미국 출신 유진 블레이크였다. 미 장로교 선교부 소속이었던 유진 플레이크는 마틴 루터킹과 절친한 친구사이인 것으로 전해진다.

1960년대는 세계사적 혼란기였다. 과학의 발전은 핵무기 경쟁을 가져왔으며, 충격적인 케네디 암살(1963)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1968)이 일어났다. 1965년 월남전이 시작되었고 1967년 중동에는 6일 전쟁이 일어났다. 1968년 체코의 민주화는 소련 군대의 학살로 막을 내렸다. 혁명의 열기도 높았다. 1963년 미국에서는 20만 명의 흑인들이 인권시위를 했고 1968년 전 유럽에서는 학생들의 반전시위가 일어났다.

이 시기 로마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5)를 열어 교회개혁을 단행했고 메델린 주교회의(1968)는 가난한 사람들을 편드는 정치적 선택을 하였다. 1963년 몬트리올 신앙과 직제 대회는 동방교회가 참여했고, 1965년도에는 로마가톨릭교회 대표가 ‘신앙과 직제’안에 있는 ‘연합연구위원회’에 참여했다. 1963년 멕시코의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는 개교회의 선교구조를 다루었는데 선교영역은 6대륙 모두이며 서구와 비서구 모두의 책임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1966년 ‘생활과 사업’은 ‘교회와 사회에 관한 세계대회’(제네바)를 열고 경제정의와 개발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제4차 웁살라 총회 주제는 요한계시록 21장 5절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리라’(Behold, I make all things new)였다. 최초로 요한계시록 성경구절을 주제로 접근한 것이다.

당시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의 중심 안건은 사회정의와 경제정의 문제였다. 혁명적 시기에 개최되는 총회를 준비하면서 WCC 지도부는 기독론을 넘어서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약속을 주제로 삼았다. 주제로 인용된 성경구절은 역사의 최종적인 의미가 밝혀지는 순간을 미리 보여주는 의미가 있었다.

이 주제는 WCC가 ‘교회일치’와 ‘선교’보다도 ‘세상’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가 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의 선교 신학을 급진적으로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나님의 관심이 ‘만물’에 있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교회가 가져왔던 교회와 세상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했다. 즉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장소이며 이곳에 교회가 함께 일하도록 요청받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하나님 선교 신학이 강하게 표현되었다. 주제 안에서 새로움(new)은 질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움은 개인뿐만이 아니라 역사 전체를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뉴델리 총회가 교회의 가시적 일치를 강조하기 시작했다면 웁살라 총회는 교회의 가시적 일치와 인류의 일치를 연결시켰다. 교회 에큐메니즘을 인류 에큐메니즘의 중심에 놓고, 교회일치를 인류일치를 위한 종말론적 징표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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