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전부인 연기, 그 안에 신앙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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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전부인 연기, 그 안에 신앙이 있습니다”
  • 이덕형 기자
  • 승인 2012.02.02 2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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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창간 첫 간증의 주인공 탤런트 한 인 수 장로

지난 24년, 문화예술선교로 복음전파 약속 지켜
무대 밖에선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생명의 물’ 전해

‘배우가 되자.’ 50여 년 전 길가에서 고르고 골라 찾아낸 예쁜 돌을 깨끗이 닦아 적어놓고 책상 위에 두고 늘 보아왔던 꿈이다.
 
배우. 하나의 꿈을 붙잡고 청소년기에는 기도했고, 청년기에는 배고프고 힘들어도 즐거워서 잡은 꿈을 놓지 않았다.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가 아니다. 하고 싶은 게 연기여서, 보여주고 싶은 것이 삶이라서 손을 놓지 않았다. 세상에서는 그런 열정을 ‘끼’라고 부르지만 교회에서는 ‘달란트’ 또는 ‘탤런트’라 부른다.

# 24년의 물줄기를 따라
지난달 19일 오후 겨울비가 묻은 우산을 털고 들어섰던 MBC 면회대기실. 24년 전 중년의 신사는 세월의 흐름 속에 더욱 중후한 느낌의 배우로 다가섰다.

본지 창간호 인터뷰어였던 한인수 장로(신천감리교회)를 24년 만에 다시 만났다.

그의 24년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흘러간 시간 속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한 장로의 가장 최근 활동소식은 바로 문화예술사역과 관련이 있었다.

“문화예술선교에 깊은 애정을 가져 왔습니다. 하나님의 영혼구원 지역을 넓히려는 뜻에서 참여해왔습니다. 그동안 기독교 문화예술의 뿌리를 내리려는 시도는 많이 있었지만 토양이 굳건치 않아 활동하는 것 자체에 역부족인 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문화선교의 뿌리가 튼튼히 내릴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인수 장로는 오는 4월 전주와 광주에서 있을 공연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일재시대 신사참배를 소재로 한 주기철 목사의 일대기를 그린 연극 ‘영문 밖의 길’에 열정을 쏟고 있는 것이다. 주기철 목사에 관한 연극은 일찍이 2000년도에 서울 연강홀과 미국 LA, 뉴욕, 캐나다 토론토에서도 열려 많은 호응을 받았다.

한 장로의 이런 문화예술선교사역에 대한 노력의 뿌리는 1987년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시민회관 별관에서 공연된 바울의 생애를 그린 ‘일어나 빛을 발하라’부터 그리스도의 광야생활 이후 이어진 공생애에서 골고다 십자가까지 그린 ‘더러운 손’, 베드로의 생애를 그린 ‘너는 반석이니라’, 그 외에도 다윗 왕을 그린 ‘킹 오브 킹’, 주기철 목사의 생애를 그린 ‘돌박산에 핀 꽃’, ‘퀸 에스더’ 등 많은 연극작품을 거쳐 왔다.

그 중에서도 유독 마음에 남는 작품이 있다. 1999년 종로 연강홀에서 개최된 ‘유다의 잔’과 모세의 삶을 그린 ‘건너가게 하소서’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유다의 잔’에서는 탤런트 고 김주승 씨가 가룟 유다 역을 맡았고 한 장로는 당시 베드로 역할을 맡았다.

관람객이 200만 명을 넘어섰던 ‘건너가게 하소서’에서는 탤런트 임동진 목사가 모세 역을 맡았고 그리스도 역은 한 장로가 맡았다. 문화예술 사역으로 선교를 해온 것은 받은 것 중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심정으로 이어온 시간들이었다.

# 나는 배우다
한 장로는 배우다. 어려서는 꿈이었고 젊어서는 인생의 목표였고 지금은 삶의 이유다. 젊은 시절 이어지던 가난과 고생의 고비도 꿈을 가로막긴 했어도 손에서 대본을 놓게 할 수는 없었다.

“젊어서 바람은 포대 쌀을 사먹어 보는 일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우리 가족은 봉지쌀 밖에 사먹지 못했던 기억이 남아있네요. 때론 봉지쌀도 떨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신혼생활은 65만 원 보증금에 5천 원짜리 사글세방에서 시작했다. 5년 간의 단역 생활.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때는 대본을 받으러 가기 위해 버스비를 변통해야 했던 때와 자녀의 입에 분유를 넣어 줄 수 없던 순간들이었다. 눈으로 새기면서도 온몸으로 견뎌내야만 했던 시간들, 젊은 시절 연기생활은 그렇게 이어져 왔다. 급류 속에서처럼 두 발로 가만히 서있기도 힘들다는 연예계에서 흔들림 없이 연기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연기에 살고 죽는 것이 제 신념입니다. 신념은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주어지는 명칭이지요. 제게 연기는 그랬습니다. 그렇게 믿고 한 우물만 파고 살아왔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대본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당신 직업이 뭐냐고 묻는다면 저는 대답할겁니다. 나는 연기자입니다.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유년주일학교부터 교회에 나간 한 장로의 기도생활은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오솔길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던 기억으로까지 이어졌다. 웅변을 잘해 초등학교 때 주위로부터 아나운서나 연극배우, 탤런트, 성우가 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이 중ㆍ고등학교 때는 배우가 되겠다는 간절한 바람과 기도로 이어졌다.

3천 명의 지원자가 몰렸던 1972년 3월 MBC 공채로 탤런트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과 드라마 들장미를 통해 연기자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던 인생의 전환점 뒤에는 주신 재능을 한 곳에 쏟을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의 자양분이 있었다.

“제 경험에 비춰보면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기도는 마음을 충전시키고 삶의 활력소가 됐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볼 때 이 경험은 제 연기인생과 신앙의 삶의 줄다리기가 이어지던 시기 그 한 가운데서 적절히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 신앙과 삶의 줄다리기
연기자로서의 인생이 평안하기만 했을까. 한 장로는 신앙과 연기 인생 가운데의 균형점은 불안정적이고 때론 깨어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균형점을 찾아 다시 돌아가는 일로 기독교인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라고 전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죠. 하지만 마음속에 믿음에 대한 확신이 들어섰을 때 신앙인으로서 삶의 균형을 잡아나갈 수 있었습니다.”

1982년부터 1984년 ‘믿음의 선교단’ 회장직을 맡았던 경험이나 반석기도원에서 당시 전도사였던 유순임 목사로부터 안수기도를 받던 중 성령 체험과 방언 경험은 그에게 확신과 믿음을 주었다고 전했다. 소위 ‘신앙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세상 속에서 힘들게 살고 어려움이 있을 때가 많지만 예수를 만나고 영접하면 새 삶이 되고 믿음의 그릇이 커져 넉넉한 마음으로 평안 가운데 생활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제가 경험했던 것의 핵심은 하나님의 일을 하면 믿음의 그릇도 커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배우로서 한 장로는 삶과 신앙의 균형을 위해서는 마음을 내 놓으라고 권했다. 온 마음을 주 앞에 내놓으면 놀라울 정도로 채워주시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 선교의 비전과 꿈, 이제는 세계로
한 장로는 신앙의 성장을 느낄 때쯤 선교의 또 다른 방안으로 월드비전에서 홍보대사로 봉사하게 되었다. 80년대 ‘믿음의 선교단’ 활동을 할 당시 월드비전 이윤구 회장이 월드비전 선명회 건물에서 선교단 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왔던 일이 계기가 되었다. 이후 월드비전 홍보대사로 1996년 케냐와 가나를 방문한 이후 에티오피아, 우간다, 말라위, 방글라데시, 몽골, 평양 등을 방문한 바 있다.

“세계선교를 통해 아프리카 지역에서 열악한 교육, 보건 환경을 지원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한다는 심정으로 월드비전 친선대사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월드비전 활동을 위해 한 장로는 매년 두 번 이상 해외로 나간다. 아프리카 현지에서 찾은 봉사선교의 중심에는 물이 있었다. 물 부족도 문제였지만 물 오염도 역시 심각한 문제였다.

“우물이 있다고 해서 가본 곳에는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우물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우물은 우리나라에서의 웅덩이나 구덩이 같은 곳이었습니다.”

이질, 말라리아와 같은 병균들이 득실거리는 곳의 물을 마신 아프리카 어린이는 드라코마, 말라리아, 기니어웜 등에 감염된다고 한다. 기니어웜의 경우 물을 마실 때 식도를 타고 내려가 종아리에서 손가락 크기에서부터 1미터 크기로도 자라는데 뇌로 갈 경우에는 즉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현장을 본 이후 한 장로는 봉사선교의 일환으로 아프리카 우물파기를 위해 활동 중이다.

한 장로는 월드비전을 인생의 한 부분으로 정하고 생명과 직결되는 물을 위해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오래전에 굳혔다고 전했다. 오는 4월에도 한 장로는 가나와 콩고의 우물지원 봉사선교를 위해 해외로 떠날 예정이다.

# 기독교연합신문에게
문화예술선교, 월드비전 홍보대사, 믿음의 선교단 회장, 1년에 60회 씩 있는 간증집회 등으로 24년간 한 장로의 시간은 꽉 채워졌다. 이 모든 일에 감사를 표하는 그는 창간 24주년을 맞은 기독교연합신문에 몇 가지 바람이 있었다.

“찾아보면 소외되고 그늘진 곳에 기독교가 기쁨으로 다가가는 경우가 아직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요즈음 기독교가 왜 지탄의 대상만 되어야 하는지 안타깝고 한탄스럽습니다. 원인을 찾자면 신뢰회복의 문제입니다. 기독교연합신문이 교회 속에 감추어진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이나 이태식 신부, 불교의 법정 스님과 같은 ‘기독교 롤 모델 리더’들을 찾아 조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장로는 빛과 그림자 중 그림자만 조명되는 이때에 환한 빛으로 사회 속에 숨은 곳을 비춰 헌신하는 기독교인들을 찾아 조명하고 알렸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추하고 밝히기 어려운 부분도 가감 없이 조명돼야 하겠지만 사랑을 전하며 경건하게 사는 분들이 드러나지 않고 그냥 사라지는 것이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지켜보고 있기가 안타깝다는 것이다.

“선교사들로부터 전해진 기독교 정신은 이 나라가 성장하는데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기독교연합신문도 창립24주년을 맞아 정말 소외되고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는 신문사로 계속 발전해 나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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