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방언’ 소재 영화, ‘밍크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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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방언’ 소재 영화, ‘밍크코트’
  • 정민주 기자
  • 승인 2012.01.2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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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받은 화제작

▲ 영화 '밍크코트'의 두 주인공 현순과 수진 역을 맡은 배우 황정민, 한송희 씨는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여배우 부문에서 공동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만약 당신의 어머니가 8개월째 회복 불가능한 혼수상태로 병실에 누워 있다면, 그리고 의사가 깨어날 확률이 0.1%도 안 되니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자고 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내리겠는가. 그리고 당신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

이런 질문을 관객들에게 툭툭 던지는 영화가 있다. 영화 ‘밍크코트(Jesus Hospital, 감독:신아가, 이상철)’는 인간 생명에 대한 윤리적, 종교적 문제이며 의학계와 법조계의 뜨거운 감자인 ‘연명치료 중단’(존엄사)을 문제로 갈등을 겪는 한 가족을 그리고 있다. 더불어 한국 영화상 최초로 ‘방언’을 소재로 하여 교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억척스러운 우유 배달부 현순은 탈모로 벗겨진 머리를 감추기 위해 베레모를 쓰고 다니며, 어딜 가든 쉴 새 없이 음식을 먹는 굉장한 식탐의 소유자다. 그녀는 남들에게 밝히기 어려운 ‘비밀’을 가지고 있다.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의식불명으로 병원에 입원 중인 노모와 만삭의 딸 수진뿐이다.

어느 날, 노모를 위해 간절하게 방언기도를 하는 현순에게 그녀의 언니 명순과 남동생 준호가 노모의 연명치료를 중단하자고 제안한다. 그녀보다 경제 형편이 좋은 명순과 준호는 자식들 학원비 내기도 버거운 형편이니 깨어날 확률도 없는 노모를 이제 그만 천국으로 보내드리자고 한다. 그러나 병원비 한 푼 대지 않는 현순은 그깟 돈 때문에 엄마를 죽이자는 거냐며 거세게 반발하고, 명순과 준호에게 무서운 저주의 말을 내뱉는다. 전도사와의 산기도에서 어머니가 깨어날 것이라는 계시를 받은 현순은 노모를 포기할 수 없다.

그런데 이미 현순의 비밀을 눈치 채고 있던 가족들은 현순이 이단에 빠졌다며 수진과 함께 현순을 따돌리려는 작전을 펼친다. 현순을 따돌리고 가족들이 노모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려는 순간, 이들을 도왔던 수진이 갑자기 현순의 편을 들며 상황은 점점 더 꼬이기 시작한다.

지난 19일 서울국제기독교영화제(SCFF)의 주최로 홍대 KT&G 상상마당극장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신아가 감독은 “이 영화는 자신의 경험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며 영화 소개를 시작했다. 신 감독은 “7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많은 고민을 했던 것이 고스란히 영화에 담겨 있다”고 말하며,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가족 간에 상처내거나 할퀴지 말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며 화목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또한 이 영화에는 기독교인에게 친숙한 가족의 모습이 아주 깊이 있고 현실감 있게 그려져 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비기독교인도 거부감 없이 볼 수 있는 종교를 초월한 의미 있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에 대해 이상철 감독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고 고백했다.

관객들은 영화 속 인물들을 보면서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가?’에 대해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사은품으로 믹서기를 받고 한 달도 안 되어 우유를 끊겠다는 고객의 집에 서슴없이 들어가 돌아가고 있는 믹서기를 들고 나오는 등 독불장군처럼 억척스러운 ‘비호감’ 캐릭터인 현순에게 관객들은 어느덧 연민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돈 때문에 혼수상태에 있는 노모의 산소 호흡기를 빼자고 하는 명순과 준호도 그 속사정을 들어보면 결코 미워할 수만은 없다. 이에 대해 신 감독은 “이 영화 속에 모티브가 되셨던 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한 쪽으로 치우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밍크코트’라는 제목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잘 드러내 준다. 밍크코트는 할머니가 명순에게서 받은 효도선물이다. 할머니는 그것을 힘겹게 우유 배달하는 딸 현순에게 전달하고, 현순은 자신의 딸 수진을 위해 망설임 없이 팔아 돈을 댄다. 어머니의 밍크코트는 가난한 딸에게 잠시나마 온기를 전해주고, 또 그 딸의 딸을 위해 쌀이 되고 약이 된다.

▲ 영화 '밍크코트'의 한 장면. 극중 주인공 현순(황정민 분)은 병원 옥상에서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다.

또한 이 영화는 병원 옥상에 홀로 선 현순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회개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그것은 가히 절규에 가깝다. 현순은 모든 믿음과 희망이 무너지고 절망만 남았을 때, 진심으로 하나님께 고백한다. 하나님 앞에서 형제를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현순은 사실은 오래도록 형제들을 증오하고 미워했음을 회개한다.

한편, ‘밍크코트’는 1월 12일 개봉했다. 이 영화는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 2개 부문과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서울독립영화제의 본선심사위원단은 이 영화에 대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종교적 신념과 갈등의 문제, 가족 간에 발생할 수 있는 애정과 증오 등을 매우 밀도 있고 긴장감 넘치는 카메라 워크로 완성한 작품이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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