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벌거벗은 겉모습만 부끄럽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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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벌거벗은 겉모습만 부끄럽다고 하는가”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2.01.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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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예술가’ 방효성 작가, 기독교 신앙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논쟁적이지만 메시지 담은 ‘기독교적 상상력’
당혹감 속에 드러난 간극으로 깨달음 전해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기 전 십자가 고통을 기념하는 어느 성 금요일 저녁.

서울 종로구 한 갤러리에서 구약의 선지자처럼 차려입은 한 남자가 관객들에게 장미꽃을 한 송이씩 나눠준다. 이 남자는 관객 중 한사람을 이끌어 의자에 앉히고 그의 발을 씻는다.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듯 신체 중 가장 더러운 발을 정성껏 씻는다. 이어 장미 꽃잎을 발을 씻었던 물과 바닥에 흩뿌린다. 발을 씻었던 물을 유리잔에 채운다.

관객을 주위를 한 바퀴 돈 후에 유리잔을 제단에 놓고 묵상을 한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마신다. 물론 발을 씻었던 그 물이다.

황당해 보이는 이 행위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한동안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상한 행동이다. 행위예술가 방효성 작가는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무엇을 깨끗하다, 무엇을 더럽다고 하는가. 인간의 더럽고 추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죽으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가 더럽다 느끼는 것에 세상적 기준은 무엇인가. 겉과 속의 더러움과 깨끗함. 가벼운 엄살은 아닌가.”

세족식이 끝난 후 그 물을 마시는 퍼포먼스를 통해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그는 마태복음 27장 18절에서 30절에 기록된 말씀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 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리라”를 읽고 이 퍼포먼스를 착안했다고 말했다.

방효성 작가는 한국 퍼포먼스계의 2세대로 80년대와 90년대 활발하게 활동했던 손꼽히는 인물이다. 특히 퍼포먼스에 관한한 그를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런 그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작품세계를 펼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방 작가는 아버지가 30여 년을 목회한 서울 노량진 송학대교회(정동락 목사)에서 집사로 섬기고 있다. 아버지 방관덕 원로목사는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원로 방지일 목사의 사촌이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3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모태신앙”이라며 “교회 뜰 안에서 성장하면서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다행이 부모님이 제 뜻을 막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방 작가의 미술에 대한 재능은 어려서부터 타고난 것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미술전시회가 열리면 그는 전시장에 유리창이 깨진 창문, 낡아서 나사못이 헐거워진 문짝 등을 가져다 놓았다. 다음날 선생님이 치우면 그 다음날 다시 갖다놓곤 했다. 설치 미술에 대한 이해가 없던 시절부터 그는 이 같은 행동을 즐겨 했던 것이다.

이후 경희대 미술과를 입학한 그는 활달한 성격 탓에 1학년 때부터 레크레이션에 관심이 많았다. 방 작가는 “세상 문화가 좋았다. 놀기를 너무 좋아해서 대학 축제 때 사회를 보고 사람들 앞에서 입담을 과시하거나 몸 개그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70년대 대학가는 그야말로 차가웠다. 서슬퍼런 독재와 감시가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를 위축시키던 당시 개그라는 말이 처음 등장해 사람들에게 위안을 줬다. 방 작가는 “이 시기 경직된 교회 분위기에서 벗어나 잠시 일탈을 했다. 기독교 테제를 벗어나 자유분방하게 꿈을 꾸었다”고 말하고 “군대를 다녀온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인생의 20대를 아쉬운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말하는 그는 “세상을 한 바퀴 휘돌며 산책하고 들어온 것 같은 경험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다시 신앙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그는 “부모님의 기도와 어려서부터 간직했던 신앙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전성기를 이뤘던 그의 퍼포먼스는 2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신선하고 충격적이다. 그의 퍼포먼스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공항 대기실 바닥에 길다란 선을 긋고 네발로 걷는다. 공원 쓰레기통에 들어앉아 쓰레기를 몸으로 받으면서 풍선을 분다.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옷을 아래에서부터 사과껍질을 벗기듯 가위질을 해 알몸을 만들기도 한다. 또 먹었던 귤을 뱉고 또 다시 입에 넣기도 하고, 왼손을 들어서 오른손을 때리며 모른 체 하기도 한다. 철거를 앞둔 재개발지역에 들어가 옷을 벗고 뛰어다니기도 하고, 무너지기 직전의 건물 벽에다가 알 수 없는 그림들을 그려 넣기도 한다.

그는 모든 퍼포먼스에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벌거벗은 겉모습은 부끄러워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과 정신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더러운 것과 더럽지 않은 것의 차이가 무엇인가’, ‘당신의 얄팍한 생각으로 아주 당연한척 행동한 적은 없는가’.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때로 도발적이고 관념적이다. 무의식에 감춰진 본능을 들추기도 한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면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처럼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 신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퍼포먼스를 할 때도 거침없이 자유롭게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것도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말씀처럼 자유에 대한 갈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설명을 끝까지 듣고도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술 작가들 중에서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혀를 내두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그는 “이상한 행동,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난 사람들은 그 행동과 상식 사이에서 혼돈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경험하면서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즉 기이해 보이는 퍼포먼스를 통해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기독교인이기에 기독교적 상상력이 가미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가 보기에는 예수는 탁월한 퍼포먼스 예술가다. 방 작가는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수천 명을 먹이셨다. 또 강풍을 잠잠케 하시기도 하고 물 위를 걷기도 하셨다.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침과 흙을 반죽해 바르셨고, 간음한 여인을 위해 흙바닥에 글씨를 써서 사람들을 돌려보내기도 하셨다”며 “예수님은 기막힌 퍼포먼스가”라고 말했다.

한때 그는 교회에서 맡은 성가대 대장 직분을 최선으로 수행하기 위해 작품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신앙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다시 작품 활동을 시작하기까지 꽤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2000년이 되어서야 3년 준비 끝에 다시 작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이 정한 시간이 된 후에야 늦은 비와 이른 비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작품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올 한해 방효성 작가는 한국미술인협회 회장으로 섬긴다. 오는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이아트캘러리에서 ‘기다림-Wait’를 주제로 21회 개인전을 연다. 이번 전시회에서 그는 ‘늦은비와 이른비’ 작품 외 18점의 드로잉 작품을 전시했다.

방효성 작가는 퍼포먼스, 설치미술, 평면회화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매체 작가다. 다방면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방 작가는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라며 “모든 퍼포먼스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을 받아서 한다. 작가로서 사람의 재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철저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그의 퍼포먼스나 작품은 때론 논쟁적이었고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신앙고백적인 내용이 담긴 예술 활동을 통해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고 호흡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때로 사람들은 종교가와 신앙인의 예술을 구분하지 못한다. 십자가나 종교의 상징을 통한 작품과 신앙인으로서 신앙고백을 담은 작품을 구분해야 한다”며 “내 예술 행위는 모두 하나님의 섭리 안에 존재한다. 날마다 내 삶을 예술의 도구로 쓰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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