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가시적 '일치'보다 사회적 '실천'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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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가시적 '일치'보다 사회적 '실천' 주목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2.01.12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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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의 태동(2) 신앙과 직제 운동, 삶과 봉사 위원회

국제선교협의회(IMC)의 등장 배경과 함께 ‘신앙과 직제 운동’, ‘삶과 봉사 위원회’의 등장도 세계교회협의회(이하 WCC) 태동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두 번째 축인 각 교파들의 일치를 추구하는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운동은 1910년 국제선교대회에 참석한 필리핀 선교사 촬스 브렌트 감독(미국 성공회)가 처음 제안했다. 이후 미국 성공회 총회는 “신앙과 직제에 관한 문제들을 숙고하고 논의할 세계 대회를 위한 연합 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결의했다. 이 연합 위원회의 성격과 관련해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받아들이는 전 세계의 모든 기독교 단체들에게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과 직제 문제들을 논의할 세계대회에 대표를 파송하라”고 촉구했다.

이 신앙과 직제 운동에 1910년 미국의 그리스도의 제자교회와 회중교회가 참여했으며, 이후 세계적으로 확산돼 1920년 제네바에서 세계대회를 위한 준비모임을 가졌다. 여기서 51명의 대표로 구성된 계속위원회가 조직됐으며, 7년 후인 1927년 8월 로잔에서 제1차 세계대회가 열렸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교회가 완전한 일치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1차 대회에 참여한 교회들은 각기 다양한 교회들의 교리와 헌법에 관한 문제들을 취급하였다. 하지만 1차 대회에서 스웨덴 루터교 대주교 죄더불름(Sodeerblum)은 여러 교회들의 신앙과 직제의 완전한 일치를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며 실제적인 공통의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에큐메니칼 기관을 창설하려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 제안에 따라 참석자들은 “실제적인 목적들을 위한 연맹 혹은 협의체”에 관한 성명서를 채택했다.

이형기 교수(장신대)는 “로잔에서 모였던 신앙과 직제 1차 대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조’로 고백하는 신앙을 기초로 하면서, 일치에의 부름, 세상을 향한 메시지, 복음 등 7개의 주제를 다루었다”며 “가시적인 일치를 추구하지 않고 다만 교파들의 차이만을 서술하는 비교교회론의 입장에서 다루었다”고 밝혔다.

이후 1937년 에든버러에서 열린 2차 대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그리스도의 교회와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의 교회: 직제와 성례전’, ‘삶과 예배에서의 교회의 일치’ 등 네 가지 주제를 다루었다. 이 대회는 모든 교회들이 소유하고 있는 ‘은혜’라는 공통분모에 주목했으며 가시적인 일치를 추구하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축인 ‘삶과 봉사 위원회’(Life and Work)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몇 달 전 죄더불름 대주교가 ‘평화호소문’을 발표하면서 태동됐다.

죄더불름은 호소문을 통해 전쟁을 방지하고자 노력했고, 전쟁 기간 중에도 적대국가의 교회 및 선교단체들과 에큐메니칼 관계를 유지하며 ‘삶과 봉사’ 운동 형성에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이 운동도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중단되었다가 1920년 8월 제네바에서 15개국 90명의 대표들이 모여 세계대회를 위한 준비모임을 개최했다. 이 모임에서 로마 가톨릭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교회를 초청하기로 했으며, 이와 관련해 신앙고백 문제나 ‘그리스도교회’의 정체성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의하지 않았다.

이후 1922년 헬싱보르크에서 스톡홀름 제1차 대회에서 다룰 주제 여섯 가지를 결정했다. 여기에는 교회의 일반적인 임무, 교회의 경제적 참여 문제, 교회의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문제, 교회와 국가의 관계 등이 포함됐다. 즉, 교회가 다른 교회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와의 관계에서 어떠한 봉사와 실천을 할 것인지 하는 문제를 다루고자 한 것이다.

이후 1925년 8월 스톡홀름에서 37개국 600여 명의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삶과 봉사를 위한 세계기독교협의회’ 제1차 대회가 열렸다. 대회의 목적은 ‘예배와 봉사에서의 에큐메니칼 공동체’였으며 성공회, 개신교 대표들뿐만 아니라 동방정교회도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1차 세계대전의 전쟁 중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것을 참회했으며, 복음을 삶의 전 영역(산업, 사회, 정치, 국제적)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교회의 사명과 원리를 진술하는데 국한시키고 적용하는 일은 개인들과 공동체에 맡길 것을 주장했다.

이후 1937년 옥스퍼드에서 2차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에서는 교회와 국가와 사회의 관계에 관한 논의가 계속됐으며, 특히 파시즘과 나치즘과 교회의 관계가 주요한 토론 주제 중 하나였다. 특히 이 대회는 기독교 신앙의 사회적 실천을 위한 신학적인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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