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겠다는 마음가짐이 모든 봉사의 원동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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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겠다는 마음가짐이 모든 봉사의 원동력입니다”
  • 이덕형 기자
  • 승인 2011.12.08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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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이웃 섬기는 '노숙인 거리상담원' 강충원 장로

시국 사건으로 수감된 감옥에서 성경 통해 주님 만나
평균 4시간 자며 사회 봉사로 신앙과 삶의 의미 찾아

23세의 나이. 차가운 벽과 창살. 주님을 다시 만난 곳은 가만히 있어도 한기가 퍼지는 감옥 안이었다.

간수에게 요청한 성경 한 권. 겉면이 뜯겨져 너덜너덜 해진 성경을 붙잡고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주님을 만났다.

강충원 장로(월곡감리교회 김종훈 목사)의 젊은 시절의 한 단면이다. 현재 그는 서울역 노숙인다시서키센터에서 거리상담원으로 봉사하며 어려운 이웃을 섬기고 있다.

# 굴곡진 젊은 인생 여정
강충원 장로는 13세 때 김과 멸치로 유명한 고향 전라남도 완도에서 예수교장로회가 세운 천막교회를 통해 처음으로 복음을 접했다.

“작은 섬에 들어온 교회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숙한 신앙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흘러야했습니다. 방황과 혼돈의 시기, 젊은 저에게는 신앙보다 우선시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학업을 위해 서울로 거처를 옮긴 강 장로. 경희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어느날 고시공부를 준비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우연찮게 시국사건에 관련되어 수감됐다. 그렇게 시련은 찾아왔다. 학교도 4학년에서 중퇴하게 되었다. 시련은 설상가상으로 겹쳤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그 사건과는 별개로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믿음과 신앙에 대해서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곳에 가게 된 것은 정치적 상황도 있었지만 신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다보니 여기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을 읽었다. 읽고 또 읽었다. 처음부터 너덜너덜해져 있던 성경에 손때가 더욱 묻어갈 때쯤 강 장로는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성경을 읽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고 마음속에 임재하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차가운 바닥에서 서원했습니다. ‘앞으로 제 인생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 앞에서 결정적인 부문에서 결단코 배신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올렸습니다. 주님 앞에 흐트러짐 없는 삶을 살겠다는 서원이었습니다.”

# 시대적 아픔과 신앙
비록 아픔 속에 성장한 신앙이었지만 신앙생활은 그렇게 계속 이어졌다. 1980년대는 혼돈의 시기로 정치ㆍ사회적으로 시대적 강요가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강 장로에게는 ‘지금 현재의 신앙이 과연 나에게 시대적으로 맞는가’라는 의문과 싸웠던 고민하는 시간의 연속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교회와 신앙에서 잠시 멀어져 도시빈민운동에 참여하게 됐다.

1970년 청계천부터 시작해서 80년 후반, 90년대 초까지 기독교 도시빈민운동과 지방자치제를 모색하며 주민조직을 만들었다.

“지금 봉사할 수 있는 힘도 일정 부분은 젊은 시절 방황과 함께한 경험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게 10년, 노동자들과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산동네에서 살았습니다. 그 당시 저의 발자취를 지금 와서 돌아보면 신앙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평가는 못하겠지만 가난하고 어려운 분들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이후 방향을 바꿔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정당 활동을 하다 시의원으로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고 그 충격과 후유증으로 방황하는 시기가 다시 이어졌다.

다시 이어진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산에 올라가 밤새 기도하는 시간을 한동안 가졌다. 그러던 중 월곡감리교회에서 알았던 권사님들이 찾아와 교회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당시 고 강신재 목사가 결혼식 주례를 봐준 관계로 강 장로는 한 동안 월곡감리교회에 다녔는데 이것이 다시 다닐 수 있는 인연이 된 것이다.

“신앙생활이 이전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도시빈민들과 함께 했던 당시의 신앙생활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성부문에서 깊은 감동이 저의 발길을 지금의 교회로 이끌어 지금까지 머물게 했습니다.”

그치지 않는 폭풍우 같던 세월, 강 장로는 험했던 인생여정의 길에서 안착해 2006년 12월 월곡감리교회 시무 장로로 선출될 수 있었다.

# 노숙인 봉사의 근원
시무 장로로 선출된 후 경영하던 보습학원도 그만두고 사회봉사에 매진했다. 하루 평균 수면 4시간, “12시 이전에 잠자리에 든 적이 없다”고 말한 강 장로는 매일 새벽기도를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난다. 한 주간 봉사하는 서울역 노숙인다시서기센터에서 이웃 섬김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서다.

“새벽기도를 통해 힘을 부어주시는 은사는 경험하지 않고는 모릅니다. 제가 이웃을 섬기고 봉사하는 원동력도 여기로부터 나옵니다. 제 말보다 경험해 알 게 되시면 삶의 끝없는 원동력을 얻게 되실 겁니다.”

강 장로는 목요일부터 일요일, 오후 7시 30부터 11시까지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서울역 노숙인다시서기센터에서 노숙인 거리상담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한 달에 여기서 봉사하는 시간만 200시간 정도 된다.
늦가을을 지나 싸늘한 초겨울의 문턱에서 노숙인들은 지하도, 고가다리 아래, 건물 입구, 공원, 후미진 계단 등 바람과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그 곳을 안식처로 택하고 있었다. 심지어 강 장로와 동행한 거리상담 과정에서 서울역 앞, 추위도 바람도 그대로 머무는 노상에 7~8명으로 구성된 노숙인들이 이불과 담요를 쌓고 그 속에서 서로의 체온에 몸을 녹이며 노숙하는 경우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강 장로는 노숙인들에게 있어 술이 가장 큰 문제라고 안타까워하며 이는 정부나 민간단체 모두 지적하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즉,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면 노숙인 생활에서 30~50%는 벗어났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술은 노숙생활을 유지시키고 이어가게 하는 부정적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강 장로는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계기가 절실한데 그 해결책으로 ‘신앙’을 꼽았다.

“상담을 하다보면 메스컴을 통해 아는 것보다 노숙인들의 알콜 중독이 정말 심각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술을 먹다 간경화에 걸려 복수가 차올라 배가 빵빵해져도, 얼굴이 새까맣게 변해도 술을 계속 마십니다. 한번은 한 노숙인이 응급차에 실려가 복수를 빼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바로 나와서 다시 술을 먹더군요. 자기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비판과 비난에 앞서 그게 슬픈 현실입니다. 말과 정책이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실효성을 갖지 못하는 것은 여기서 비롯됩니다. 그 벽을 허물어 정책과 상담이 직접 효력을 나타낼 수 있게 하는 것은 신앙밖에 없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그는 따뜻한 신앙생활과 직장생활을 통해 점차 노숙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사례를 봐 왔고 지금도 길 여기저기에서 폐지를 주우며 혼자서 노숙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웃은 얼마든지 많다고 전했다. 그래서 강 장로는 만날때마다 따뜻한 말 한 마디 전해주고 굳게 손 한번 잡아주며 따뜻한 관심을 보여준다.

이런 강 장로에게도 봉사를 하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들이 있다. 바로 어제까지 대화하고 악수하던 노숙인들이 한두 명씩 세상을 떠날 때다. 겨울철에는 동사사고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 술을 먹고 쓰러져 있거나 몸이 불편해 움직이지 못하는 노숙인들이 어디 있는지 밤새 찾아 나선다. 그리고 응급 상황을 맞이했을 경우 현장에서 119에 바로 연락하거나 상담소 실무자와의 연락을 통해 국립의료원이나 동부시립병원으로 이동 조치를 취한다. 한 명의 노숙인이 세상을 떠나면 주위 사람들은 큰 충격 속에 절망한다. 자신의 순서가 안 돌아왔을 뿐이지 언제 자신이 그 입장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40여 년이 넘게 서울역에서 노숙한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고 말한 그는 어제만 해도 손잡고 악수하고 기도해주고 얘기하던 분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는데 그럴 때는 온몸에서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침낭, 겨울용 점퍼, 티셔츠, 양말, 속옷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하룻밤에도 수십 차례 이어지지만 강 장로는 따뜻하게 답하며 수첩에 요청 사항을 시간 약속과 함께 하나하나 적었다. 약속 날짜에 주기 위함이다.

서울역 근처 공원과 지하도 외곽을 돌며 서울역노숙인다시서기센터에서 지원하는 물품뿐만 아니라 월곡감리교회 김종훈 목사와 성도들의 후원 하에 노숙인 지원품을 전달하는 그는 침낭이나 음식,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전해주고 최근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으로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갔다.

때로는 화풀이 대상이 되고 또 간혹 이유 없는 비난과 시비가 있어도 그를 포함한 거리상담원들은 이 모두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거리상담원은 부당한 상황이 와도 되도록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간혹 그 분들이 무작위로 표출하는 분노도 도움을 요청하는 하나의 몸부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들어주고 인정해주다보면 이전과는 변화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강 장로는 상담원이 되어 직접 만나보면 이들이 부족하고 못나서 지금의 상황에 처해진 것이 아니라 사회가 안고 있는 아픔을 이들이 온몸으로 감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한 냄새가 진동하는 노숙인의 손을 붙잡고 때론 포응하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과 상담을 통해 받는 스트레스를 모두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냥 섬길 뿐이라고 답했다.

“그냥 섬기는 겁니다. 섬기는 마음이 없으면 힘듭니다. 이 일을 감당하기 힘들죠. 얻으러 오거나 나타내러 왔다는 마음보다는 섬기러 왔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 마음이 원동력이 되어 모든 봉사가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현재 강 장로는 노숙인 회복을 위해 하나의 비전을 갖고 있다. 예수 복음의 희망을 갖고 하나의 공동체를 생각하며 기도하고 있다. 최근 이분들 중 몇 명에게서 희망을 본 강 장로는 ‘신앙을 통한 치유 공동체’의 비전을 갖고 노숙인 거리 상담에 임하고 있다.

“신앙은 힘든 시기에 말씀 데로 살 수 있게 하는 근원”이라고 말하는 강 장로는 “기독교 신앙이 아니면 어떤 방향으로 갈지 모르는 인생인데 딴 길로 가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순종하며 갈 수 있는 것이 신앙”이라고 전하며 노숙인의 비전도 신앙 속에서 찾아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 거리상담을 마치고 돌아온 강 장로는 다른 상담원들과 브리핑을 통해 노숙인 지원 방향을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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