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11시간만에 닿은 '에덴의 발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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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11시간만에 닿은 '에덴의 발원지'
  • 승인 2002.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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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일 오후 2시 5분, 이스탄불행 터키 비행기는 요란한 제트 괭음소리와 함께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올랐다. 인천공항의 하늘은 그 날 따라 잔뜩 찌뿌려 있었지만 검은 먹구름을 뚫고 높이 올라선 거대한 은빛 동체는 눈부신 햇살을 받아가면서 하얀 구름 숲들 위로 유유히 날아가기 시작하였다.
3년을 손꼽아 기다리며 준비해 온 성지 순례와 종교사역지 탐방, 39명의 참여자들은 부푼 기대와 설레임으로 얼굴들이 불그스레 상기된듯 보였다. 거슬러 23년 전 필자도 이 노선을 따라 유학길이자 첫 성지순례의 길을 떠난 적이 있었다.

그 후에도 자주 이 길을 오갔지만 소리 없이 두근거리는 이 심장의 힘찬 고동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만 되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신앙의 고향을 찾아가는 순례자의 귀소본능과 같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천정에 붙은 소형TV는 우리가 서해 상공을 지나 중국의 고원지대를 거쳐 서편으로 날아가고 있음을 시시각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에덴동산이 지금의 터키 동편 아라랏 산의 남쪽 줄기와 티그리스, 유브라데 강이 만나는 어느 지점에 있었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선악과의 범죄로 쫓겨 났었던 그 에덴의 동편에서 거슬러 인류 최초의 시발점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구속사의 위대한 드라마가 펼쳐졌던 첫 계시의 현장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행기는 중간 급유를 위해 카자흐 공화국의 수도 알마타 공항에 임시 착륙했다. 저 끝없이 펼쳐진 평원의 어느 지점인가에는 죽음보다 더 가슴 아픈 한민족의 역사적인 전설이 묻혀져 있다.

구 소련의 냉혈 독재자였던 스탈린이 적대적 경쟁관계에 있었던 일본과 내통한다는 터무니없는 구실을 붙여 이곳 사막 황무지 땅에 헌 짐짝처럼 내팽겨진 지 어언 60여 년, 그러나 고려인은 무궁화의 끈질긴 근성처럼 그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어 화려한 꽃들을 피워 내었다.
그들이 저 푸른 동녘 하늘을 바라보며 남몰래 숱한 망향의 눈물을 흘렸을 것을 생각하니 코끝이 찡하게 아려온다.
언젠가 알마타에서 왔다는 한 고려인을 모스크바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카자흐에서 제일 똑똑하고 성공적인 민족은 고려인이라고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오, 자랑스런 대한민국. 그들은 분명히 우리와 핏줄을 나눈 혈육이요 가족이다. 그들을 향한 국가적인 배려와 선교정책이 서둘러 마련되어져야만 할 것이다.

11시간 여의 긴 여행 끝에 다다른 이스탄불. 우리 일행을 맞이하는 그곳의 환영 열기(?)는 뜨겁다 못해 숨이 꽉 막혀버릴 정도였다. 그 소문난 지중해성 가마솥 무더위가 우리들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이 아나톨리아 땅에는 몇가지 굵직한 명칭이 붙여져 있다.
에덴 동산의 발원지, 노아 방주의 기착지, 사도 바울의 선교지, 비잔틴 문명의 중심지, 동서 문명의 교차지 등이다. 실제로 세계 역사의 대표 문명들(히타이트, 앗수르, 바벨론, 로마, 비잔틴, 이슬람)이 차례로 이 지역을 거쳐갔고 사도행전의 주요 무대가 이 땅 위에서 펼쳐졌었다.

어느덧 보스포러스 해협 건너편으로 기울어지던 둥근 불덩어리가 모스크의 긴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온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여 놓았다. 거리 곳곳에는 이 땅의 검붉은 피의 역사를 증언이라도 하듯이 별과 초생달이 새겨진 붉은 터키 국기가 우리를 향해 의미있는 메르하바(안녕의 인사)의 손짓으로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고영민 부총장(천안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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