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임진희 씨, 꿈을 품은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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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 임진희 씨, 꿈을 품은 1년
  • 이덕형 기자
  • 승인 2011.07.1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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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판, 그 희망에 승부를 걸다

▲ 임진희 씨가 지나가는 시민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며 사탕을 나눠주고 있다.
당장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져도 이상할 것 없는 날씨였다. 2호선 선릉역 1번 출구.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가운데 붉은 조끼와 모자를 쓴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검정색 비닐봉지 안에 가득 들어 있는 눈깔사탕을 나누어주며 계속 외쳤다. “창간 1주년 빅이슈입니다. 감사합니다.” 그 날 빅이슈를 판매하고 있던 임진희 씨였다.

# 공장 근로자에서 홈리스로
임진희 씨는 빅이슈 판매원(이하 빅판)이다. 그의 삶은 빅판이 되기까지 많은 사연들로 굴곡져 있었다. 과거에 그는 고된 일이지만 공장에 다니며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다니던 공장이 어려워져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살아갈 길이 막막하던 중 어렵사리 돈을 마련하여 과일 노점상을 시작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과일 도매상에 가서 과일을 받아 이 거리 저 거리를 전전하며 열심히 장사한 결과 소박한 가정이나마 꾸릴 수 있었다.

그런데 1997년 말에 IMF사태가 터졌다. IMF사태는 경제 쓰나미가 되어 수많은 은행들과 기업들을 넘어뜨렸고 그로 인하여 실업자들이 홍수처럼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되는 장사가 없어 문을 닫는 가게들이 많았다. 임 씨의 과일 노점상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없는 형편에 근근히 마련해 시작한 과일 노점상도 과일이 팔리지 않아 시간이 갈수록 빚으로 남았다. 결국 노점상도 일상의 꿈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IMF 한파는 정신의 바닥에 남아있던 한 조각의 삶에 대한 의지마저도 쓸어가 버렸다. 이제 임 씨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절망의 나락 한가운데서 헤어 날 수 없었고 자포자기한 상태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임 씨의 홈리스 생활은 이렇게 시작됐다. 홈리스가 된 이후의 삶은 하루하루가 절망의 연속이었다. 차가운 사회의 시선은 한겨울 추위로 뒤척이던 그의 잠자리보다 더 싸늘했다. 한겨울 새벽 두 세 시경 추위로 얼어붙은 몸을 자원봉사자가 주는 뜨거운 컵라면 한 사발로 녹이기도 했다. 홈리스 생활은 그렇게 몇 년 동안 이어졌다.

# 신앙으로 일어서다
하지만 홈리스 생활도 임 씨에게 남아있던 신앙의 불씨까지는 끄지 못했다. 절망적인 홈리스 생활 가운데서도 조금이나마 마음의 휴식과 위안이 됐던 것은 신앙생활이다. 안산소망교회에 다니던 그는 홈리스 생활 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안산소망교회 담임으로 있는 이재응 목사가 그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소개시켜줬고 그는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서 다시 자포자기의 길로 들어섰다.

두 번의 쓰러짐으로 남아있던 희망의 불씨는 꺼져버렸고 임 씨의 홈리스 생활은 다시 시작됐다. 가정을 지키지 못한 자신에 대한 질책, 냉혹한 사회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은 그를 같은 처지의 홈리스들이 있는 지하도와 역사로 내몰았다. 하루하루 끼니를 위해 그는 무료 급식소를 전전했다. 특히 임 씨는 최일도 목사가 운영하는 다일공동체 무료 급식소를 자주 찾았다. 그러던 중 임 씨는 그 곳에서 빅판 사무원들을 만나 빅판이 될 수 있었다.

세상은 임 씨를 버렸고 임 씨도 세상을 버렸지만 하나님은 임씨를 버리지 않았음을 그는 믿을 수 있었다. 빅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고 이로 인해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임 씨는 빅판이 되기 위해 지난 2월 20일부터 붉은 색 조끼와 모자를 착용하고 2주간 임시 빅판 과정을 거쳤다. 빅판이 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정식 복장을 하고 정해진 근무시간을 준수하며 고개를 당당히 들고 웃는 얼굴로 목소리 높여 빅이슈를 판매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홈리스가 사회에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는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두려움과 좌절은 여기서 나오며 스스로 일어설 수 없다는 그들만의 합리성과 정당성도 여기서 비롯된다. 홈리스가 빅판이 된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버리고 그 곳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홈리스였던 임 씨의 삶이 그렇게 변화되는 것은 이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 3월 초에 정식 빅판이 될 수 있었고 현재 5개월째 빅이슈를 판매하고 있다. 임 씨는 “빅판이 된 후 노력한 만큼 소득이 생겨 마음이 뿌듯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리고 빅판이란 직업을 통해 다시는 홈리스 생활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과 용기가 하루하루 생겨난다고 전했다.

임 씨의 삶은 빅판이 된 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매일 기본 근무 5시간 외에도 자발적으로 4시간을 더 근무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말 근무는 원하는 경우에만 하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일하고 있다. 그만큼 현재 직업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임 씨는 이제 스스럼없이 지나가는 외국인을 향해서도 “헬로, 헤브 어 나이스 데이”라 즐겁게 인사하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가는 어린 아이들에게도 웃는 얼굴로 사탕을 나눠주고 있다. 어지간히 비가 오는 날에도 판매에 큰 영향이 없으면 그는 가로수 밑에 자리를 잡고 빅이슈를 판매할 만큼 자신의 직업을 사랑한다.

# 이뤄야 할 꿈
임 씨는 꿈이 있다. 빠른 시간 내 임대주택에 입주하는 것이 목표다. 보통 정식 빅판이 된 후 임대주택에 입주하기까지는 6개월에서 8개월이 걸린다. 임 씨의 경우 현재 5개월이 지나서 3개월 이내에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임대주택 입주조건은 일정한 주거지역에서 6개월 이상 자비로 거주해야 하고, 매일 수입의 절반을 저축해야 하며, 임대주택 백만 원을 마련해야 한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매일 열심히 일하며 저축하고 있다.

앞으로 임 씨는 자신의 커피숍을 가지기를 희망했다. “커피숍 내에 빅판들이 쉴 수 있는 공간과 짐을 안심하고 맡겨 놓을 수 있는 장소도 함께 마련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리고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소망도 빼놓지 않았다.

▲ 임씨는 뒤에 있는 독수리 그림을 통해 많은 힘을 얻고 있다.
임 씨에게는 소중히 여기는 그림이 하나있다. 진열대 오른쪽 위에 있는 독수리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볼 때마다 그는 힘이 난다고 했다. 고객 한 분이 힘을 잃지 말라며 주고 간 그림이다. 그는 주저앉고 싶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 이 그림을 보면 힘이 난다”며 고마워했다.

임 씨는 우리사회의 시선과 관련해 빅이슈 판매도 엄연한 직업이니까 홈리스보다는 빅이슈 판매원으로 봐주길 바랬다. 그리고 “희망을 갖고 판매하는 빅판을 적극적으로 응원해 달라”고 부탁했다.

교회를 향해서도 “홈리스를 돕는 운동을 더욱 활발하게 전개해 홈리스의 앞길을 열어주는 안내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또한 “빅이슈가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해 거리의 많은 홈리스들이 빅판으로 채용되어 사회로 나가는 길이 활짝 열리길 바란다”고 전했다.

“빅이슈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는 사회적 기업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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