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실은 두 바퀴로 세상을 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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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실은 두 바퀴로 세상을 굴리다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1.06.2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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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비전트립 세계 일주 문종성 여행가

“청춘이여, 일탈도 미친 도전도 하지 않은 것은 젊음을 유기하는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에서 뙤약볕을 맞으며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말을 붙일 벗도 없이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하다보면 어느새 마을에 다가와 있다. 이곳에선 또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또 어떤 상황을 만나게 될까.

모두가 토익 책을 파고, 자격증에 목을 맬 때 문종성 씨(32)는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20대 후반에 시작한 여행이 30대를 넘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인생의 길을 정면으로 거부한 그는 대학을 졸업한 2007년부터 현재까지 4년 넘게 자전거 세계 일주 중이다.

전 세계 85개국을 자전거로 다니는 것이 목표. 그가 지금까지 페달을 밟은 거리만도 3만246km에 이른다. 자전거 여행가를 자처한 그는 하나님의 꿈을 안고 달리며 세상 어떤 30대 보다 강렬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 자전거 여행의 시작
여행가 문종성 씨는 2007년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군대를 다녀온 후 그는 복학 후 자전거를 타고 국내를 횡단했다. 땅끝에서 출발해 판문점까지 한 달 동안 자전거 페달을 밟은 것이다.

▲ 자전거 여행가 문종성 씨는 전 세계를 다니며 세상이 정해준 삶을 거부하고 자신 만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듬해 그는 중국을 횡단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처음 국내 횡단을 했을 때 친구들은 대단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더러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들어봤을 법한 도전이었기에 청년의 호기쯤으로 여겼다. 다시 중국을 횡단하겠다고 말했을 때, 친구들 고개를 저었다. 무모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멋지게 해냈다. 그때서야 친구들은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졸업 후 자전거로 세계 일주를 하겠다고 말했을 때, 친구들은 한푼 두푼 모아 그를 격려했다. 그가 보여준 도전과 성취가 빛났기 때문이었다.

여행가 문종성 씨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단연 ‘왜 떠나는가’였다고 한다.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도전을 계속해서 성취해가는 그를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었다. 여기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나도 대입, 취업대란 속에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세상이 남들처럼 살도록 강요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회가 제시한 룰에 입각해 계량화된 삶을 살아야 하는 서글픈 현실. 그런 상황에 조용한 반기를 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찾은 것이 자전거로 세계 비전트립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대답을 듣고 “현실도피”라고 비아냥거리거나 “세상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냉정하게 비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현실보다 꿈을 도피하는 것이 더 비겁하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 추위, 가난, 강도와 싸우다
그의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후원사가 돌연 경비지원을 철회했다. 또 로키산맥을 넘던 중 전복사고를 당해 고가의 카메라 렌즈가 파손되기도 했다. 몸을 다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음은 물론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멕시코에서는 강도를 만나 카메라와 캠코더를 빼앗기기도 했다.

그는 “미칠 듯이 작열하던 사막의 태양, 나를 좌절시키던 로키산맥의 오르막길, 공포로 떨게 만든 폐가에서의 숙박, 빵에 잼을 발라먹는 식단 등 수없이 많은 곡절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편안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8개월 동안 숙박은 사막도시에서 단 한번 이용했을 뿐이다. 교회, 경찰서나 소방서 등 공공기관, 페스트 푸드점 등에서 불편한 밤을 보내는 것이 다반사였다.

2008년 에콰도르에서 도둑을 만나 가진 것을 다 잃었다. 2009년 겨울에는 아르헨티나에서 칼 든 강도들을 만나 자전거와 8개의 백을 모두 강탈당했다. 그 속에서 값비싼 물품, 그간 모은 자료들을 모두 빼앗겼다. 그는 “칼로 공격을 당했다는 사실에 정신적으로 패닉상태에 빠져버렸다”며 “비전트립 최대의 시련이었다. 모두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가야 했을 정도로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모진 시간이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좌절과 허탈함으로 공황상태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방서와 경찰서는 하룻밤 친구가 되어 주었다고 고백하고 “오지 선교 현장에서 묵묵히 수고하시는 선교사님들, 노곤한 몸과 마음을 위로해 준 많은 현지인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면서도 이방인을 향해 웃음을 잃지 않던 가난한 노동자들도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예상치 못한 호의와 고백
믿기지 않겠지만 그는 3년여 동안 세계의 심장 미국 뉴욕을 시작으로 북미와 중남미를 자전거를 타고 횡단했다. 그동안 로키 산맥과 그랜드캐니언, 라스베거스와 모하비 사막을 넘었다. 또 멕시코와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쿠바, 자메이카 등 카리브해 섬나라까지 남미 전역을 두루 지나 브라질 상파울루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타고 이 많은 나라를 다녔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 그는 어디를 가든지 현지 사람들의 환대를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개입을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했다고 한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초심을 잃어버리면 어쩌지?’ 수많은 질문들이 마음속에서 솟아올라왔다. 문 씨는 “막상 자전거 비전트립을 시작했을 때 이 모든 고민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차고 넘치는 은혜와 감동을 맛보았다”고 고백했다.

멕시코, 벨리즈,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마나마, 쿠바, 자메이카, 도미니카, 아이티, 푸에르토리코, 트리니다드토바고, 수리남, 가이아나,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까지. 2008년 한 해 동안 20개국, 약 1만2천km를 자전거로 다녔다.

그는 여행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아미쉬 교회, 인디언 교회는 물론 미국, 케나다, 멕시코 현지 교회와 각국 한인교회를 거쳤다. 이뿐만이 아니다. 알코올 중독자, 암환자, 마약중독자는 물론, 경찰, 소방관, 선생님, 사업가, 뉴스 앵커, 거지, 동부 등등 각기 다른 삶을 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는 “선교사나 목사가 아니어도 그들은 나에게 말씀을 발견하게 하고 귀한 가르침을 안겨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가난에 대한 특별한 경험도 나눴다. “든든하게 하루 세 끼를 챙겨먹은 적은 주 1회나 될까말까 한다. 칠레와 볼리비아를 제외하고 모든 나라에서 숙박비를 지불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해발 4천m에서 매서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인디오들에게 초대를 받다. 또 사막에서 텐트를 치며 고단한 하루를 보냈지만 현지인들이 준 음식으로 허기를 채웠다. 현지 교회에서 따뜻한 환대를 받았고, 친절한 경찰서와 소방서에서 쉬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만남과 이유 없이 배려해주고 기꺼이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도대체 이것이 하나님의 개입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하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대부분 가난한 원주민들이었다. 자신의 것이 풍족해서 나눠주는 게 아니라 나누어 주어서 풍족해진 사람들”이라며 “가난한 사람들의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인격적인 교제를 늘 감동하고 또 감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난한 때를 잊지 않겠다며 “내가 가난했을 때 받았던 행복을 기억하고 다시 그 이상을 되돌려주는 인생이길 소망한다. 값싼 동정심이 아닌 진정으로 나눌 줄 아는 인생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 사마리아 프로젝트
문종성 여행가는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하고 아프리카로 넘어와 보츠와나, 짐바브웨, 말라위, 탄자니아, 우간다 등 14개국을 돌았다. 그는 이곳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

“지난 4년 동안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을 하는 동안 정말 많은 격려와 위로,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자전거 종단을 하는 중에 나도 받은 것을 다시 나누고 싶었습니다. 뭐라도 작은 것 하나 그들에게 필요한 것으로 돕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직접 자전거를 타고 수십 곳의 빈민촌을 둘러봤다. 발전기 설치, 구제 사역, 집짓기, 우물파기 등은 재정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말라리아를 막을 수 있는 모기장 사업이었다.

말라리아로 인해 해마다 100만 명이 목숨을 잃는 아프리카. 그는 여행 경비를 줄이고,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아프리카에 모기장 3천 장을 전달한 것이다.

“자전거로 다니는 내가 그들과 따뜻하게 만나고 교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아이템이 모기장이라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을 모티브로 해 이 모기장 사업을 '사마리아 프로젝트'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는 원주민들에게 모기장을 전해주면서 또 다른 환대를 경험했다. 모기장을 쳐준 잠비아 한 마을은 300여 명이 넘는 인원이 모닥불과 별빛을 무대로 마을 축제가 벌어졌다. 말라위에서는 스무 명의 할머니들이 모기장을 치는 내내 뒤따라오며 노래를 부르며 격려했다. 르완다와 탄자니아에서는 선교사님과 협력해 모기장을 설치했다.

2010년 한 해 동안 잠비아, 말라위, 모잠비크, 탄자니아, 르완다, 우간다, 브룬디, 에티오피아 지역에 3천 개를 설치했다.

남동부 아프리카를 돌아 서부아프리카로 건너갔다. 그러다 이집트에서 민주화 바람이 길을 막아섰다. 반정부 시위로 인한 치안 불안이 계속되자 정부가 전세기를 보내 국민들에게 철수를 요청한 것이다.

지난 2월 국내에 들어온 그는 ‘자전거를 타고 쿠바 여행’(가이드포스트), ‘가슴이 뛰는 방향으로, 청춘로드’(어문학사) 두 권의 책을 집필하며 남미 쿠바와 멕시코 여행 뒷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오는 7월 그는 다시 서부 아프리카로 들어간다. 이번에는 7천 개의 모기장을 설치할 꿈을 가지고 있다. 그는 “단체의 도움도 없고 재정도 어렵지만 저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의 눈망울을 생각하면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외로운 자에게 다가갈 용기를 가지라. 혼자서 꿈꾸면 이룰 수 없는 꿈이 모두가 꿈꾸면 기적이 된다”며 “나만 시작하면 세상이 변화된다. 이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말했다.

여행가 문종성 씨는 이 땅을 사는 어떤 청춘보다 공간적으로 넓고 광활한 삶을 살았다. 이제 그는 서부 아프리카를 돌아 유럽, 아시아 횡단을 준비하고 있다. 이곳에서 어떤 상황을 만나든, 누구를 만나든 그것은 이 길을 선택하고 지나간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그는 한국에 남아있을 청년들에게 이렇게 권했다.

“비전이 없으면 청춘이 아닙니다. 비전에 합당한 대가를 치루길 바랍니다. 어딘가 하늘 아래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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