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절차와 합의' 혼선겪는 WCC 한국총회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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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절차와 합의' 혼선겪는 WCC 한국총회 준비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1.06.14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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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준비위원회 명의 공문 발송 후 교단 갈등 증폭... 에큐메니칼 신뢰회복 시급하다

지난 2일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세계교회협의회(WCC) 본부에 한국총회준비위원회(Korea Assembly Planning Committe) 위원장과 부위원장 명의의 공문이 전달되면서 국내 WCC 회원 교단이 혼란에 휩싸였다. 이 공문은 지난 5월 4일 회의 결의 내용을 근간으로 하고 있지만 일부 회원교단에서는 “합의가 온전한 것이 아니었다”며 반발하고 있다.

또 공문을 발송하는 과정에서 예장 통합 임원들이 직접 부위원장 서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WCC준비기획위원회가 통합을 제외한 다른 회원 교단과 준비기획위원들에게 공문 발송을 알리지 않은 사실과, 교회협에서 4일 회의 내용을 확인할 회의록을 정리하지 않았다는 각종 문제들이 터져 나왔다. 공문 발송 후 성공회와 감리교 등은 “묵과할 수 없다”며 불쾌감을 표시했고, 곧 문서로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겠다고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한편, 뒤늦게 공문 접수 소식을 접한 예장 통합은 “5월 4일 회의 합의 내용을 전달한 것에는 문제가 없다”며 “WCC 총회 준비가 자꾸 늦어지는 상황에서 긴박하게 처리해야 할 부분이었다”고 준비기획위원회측을 두둔하고 나섰다. 문제는 한마음으로 WCC 총회를 준비해도 성공적 개최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합의와 절차이행’을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준비위원회 발족을 기다리는 복음주의권의 한 인사는 “왜 에큐메니칼 실무자들 사이에 이견이 큰지 모르겠다”며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 WCC 공문 어떻게 발송됐나

문제의 공문은 WCC준비기획위원회(위원장:김삼환 목사)가 발족을 앞둔 한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 내정자 2명(박종화, 이영훈 목사)의 동의를 얻어 발송된 것으로 최종 확인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예장 통합 임원들이 부위원장들에게 동의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스위스에서 직접 전달한 것은 아니라고 전해진다.

이 공문에 대한 논란은 크게 두가지. 하나는 5월 4일 회의가 최종 결의가 아니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조직도 되지 않은 준비위원회 명의로 공문이 발송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성공회 김광준 신부는 “준비위원회가 발족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정자는 자격이 없다. 2년 가까이 잘 준비해온 신뢰를 깨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5월 4일 회의 합의의 문제다. 총괄책임자(National coordinator)라는 표현은 쓰지 않기로 했고, 대표를 뜻하는 ‘Chief'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한 바 없다”고 주장했다.

WCC에 한국준비위 명의로 발송된 공문에는 중앙위원 2명 중 한 명인 예장 통합 박성원 목사를 ‘Chief’로 표기해 대표성을 부여했다. 즉, 사무국 여러명 중 박성원 목사가 책임자라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공문에는 또 예배위원에 통합 과천교회 주현신 목사, 음악감독에 기장 동광교회의 장빈 목사를 선임했다고 밝혔다. 이 공문을 접수한 WCC는 오는 18일 열릴 예배위원회 회의에 이 두 명의 목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 5월 4일 합의 내용이 관건

여러 문제 중에서도 에큐메니칼의 분열이 우려되는 안타까운 부분은 ‘합의’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는 점이다. 에큐메니칼 회의 전통은 충분한 대화를 바탕으로 모두 공감하는 합의 도출에 중점을 둔다. 지난 4일 회의에서도 한국준비위원회 구성과 사무실 개소, 예배위원 선임, 사무국의 역할과 사무국장 선임, 상임집행위원장의 권한과 위원회의 구성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회의 결과에 대해서는 다들 해석이 다르다.

먼저 이번 공문이 적법하다고 지지하고 있는 예장 통합은 “6가지의 주요결의가 있었고, 이 공문은 결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WCC 측에서 5월 30일까지 예배위원을 선임해달라고 요청한 급박한 상황에서 교회협이 맥을 놓고 있어, 준비위원회가 먼저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칫 WCC 총회 장소가 옮겨질 위기까지 감지됐다는 것이다. 단, 박성원 목사에게 대표성을 부여한 ‘Chief'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았다고 동의했다.

일부 준비기획위원들은 이날 회의를 ‘최종 결의’로 보기 어렵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박성원-정해선 두 명의 중앙위원이 사무국장을 맡는다고는 결정했지만 업무를 분담하지 않았고, 대표성도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 예배위원도 위원장이 마지막에 “좀 더 알아보자”고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5월 30일까지 사무실을 얻어 준비위원회를 발족하는 것은 권고됐다. 하지만 이것도 강제사항으로 보긴 어렵다는 주장이다.

# 허술한 회의, 불확실한 회의록

총 14명이 참여한 준비기획위원회 회의에 대해 해석이 각각 다른 것은 이날 회의 내용이 회의록으로 채택되지 않은 데 있다. 통합도 이 부분에 대해 “서기의 실수”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교회협에 사무실 개소 책임을 맡겼는데 아무런 이행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현재로서는 준비기획위원회가 전권을 위임받았고, 그 안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준비위원회 명의로 공문이 발송된 것은 “WCC 총회를 위해 잘한 일”이라는 입장이다.

공문에 동의한 준비기획위원회 부위원장 박종화 목사 역시 “합의는 있었지만 이견이 나와 다시 정확하게 회의결과를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해석해서 공문 처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목사는 “준비위 발족 전에 공문을 먼저 보낸 절차상 문제는 있지만 내용이 좋으니 이런 것으로 문제 삼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교회협 측에서도 회의록을 바로 위원들에게 정리해서 보내지 못한 것이 실수하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협 관계자는 “합의가 된 것이 없어서 정리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 본질은 신뢰회복에 있다

WCC 한국 총회가 유치되고 20개월이 흘렀다. 그러나 한국준비위원회는 복음주의권을 포괄하는 조직으로 꾸린다는 기본 틀 이외에 아직 구성도, 발족도 못하고 있다. 그동안 논란이 된 것은 ‘총괄책임자’를 누가 맡느냐 하는 부분이었다. 결국 이 논란의 본질은 교회협의 이념적 성향을 둘러싼 일부 회원 교단의 갈등과 에큐메니칼에 대한 시각차가 소모적 논쟁을 계속 불러온다는데 있다.

그렇다면 이번 논란에 대한 제3자의 시각은 어떨까. 지난 4일 회의에 참석한 한복협 대표회장 김명혁 목사는 “이날 회의를 최종 합의로 보긴 어렵다”고 언급했다. 김 목사는 “김영주 총무의 역할과 예배위원 선임 등이 마무리 되지 않았으며, 5월 30일까지 WCC에 공문을 보내야 한다는 절박함도 엿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더 큰 문제는 과연 에큐메니칼권에서 복음주의를 끌어안으려는 진지한 노력이 있느냐 하는 점”이라며 “에큐메니칼 실무자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한국 교회 전체를 아우르는 폭넓은 자세가 부족하고, 그들 사이에 의견 일치가 어려워 보였다”며 현재 나타나는 에큐메니칼의 불화에 우려를 표했다.

문제의 발단은 ‘공문’발송에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대화와 합의’를 실종한 에큐메니칼 회의 문화에 있다. 신뢰가 깨어진 상태에서 WCC 총회 준비는 어렵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논란 중에 더 적극적인 책임을 느끼는 교단도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교단의 혼란으로 인해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감리교는 지난 13일 에큐메니칼 관계자 3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이번 사태에 대해 논의하고 “공문 발송에 대해 확인하는 한편, 교회협 중심의 WCC 총회 준비를 지원하겠다”고 결정했다. 또 감리교의 혼란이 WCC 총회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모아 오는 7월 12일 감리교 준비위를 구성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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