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대행의 선 개혁 우려한 일종의 ‘휴전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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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대행의 선 개혁 우려한 일종의 ‘휴전협정’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1.06.1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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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이광선-길자연 목사 합의안 ‘개혁의지’ 있나?

한 치의 양보 없이 대립각을 세웠던 한기총 사건 당사자 길자연-이광선 목사의 합의가 가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2일 최종 합의안을 공개하면서 한기총 개혁의 의지를 밝힌 두 목사는 “한국 교회를 위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10일에는 교계 원로들을 만나 그간의 혼란에 대해 사죄하며, 더욱 잘하겠다는 약속도 표명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합의에 대해 뭔가 찜찜하다는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갑작스러운 합의에 이어 공개된 개혁안은 한기총 사태의 원인을 하나도 배제하지 못한 채, 금권-과열선거를 부추길 수 있는 왜곡된 조항들로 가득했다. 심지어 직무대행이 교단장들과 논의 후 공개한 한기총 정관개정안에 상당 부분 반하고 있어, 개혁을 위한 합의가 아니라 ‘기득권’ 유지를 위한 일종의 ‘휴전’이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

# 최종 개정 합의안 내용

길-이 목사의 2차 공동성명서에 간략하게 담긴 개혁안은 대표회장 선출방식을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내용은 이렇다. △증경대표회장의 권위와 순수한 자문역할 강조 △대표회장 2년 단임제-피선거권 제한 철폐 △총회에서 민주절차에 의한 자유경선 선출 △1차 투표 과반수 없을 시 다득점자 결선투표 △불법금권선거 원천 봉쇄 및 발본색원 영구제명 등이다.

겉으로 보면 금권선거를 막기 위한 강력한 조치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부로 깊숙이 들어가면 개혁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부분을 상당부분 발견할 수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대표회장 2년 단임제와 피선거권의 제한 철폐. 직무대행이 공개한 개정안은 1년 단임제로 대-중-소형 교단의 윤번제를 근간에 두고 있다. 여기에 대표회장 후보 자격을 완전히 풀어 놓았다. 과열선거를 막기 위해 교단 총회장 혹은 단체장 역임자로 제한이 요청됐던 피선거권이 풀린 것은 쉽게 납득이 어렵다.

지난 10일 범대위와 함께 자리한 이광선 목사도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이광선 목사는 “쟁점은 윤번제인데 1년으로 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2년 단임이 더 적절하다. 총회장과 단체장 추천을 받은 자라는 제한 조항은 내가 반대했다. 민주화, 현대화되는 시대에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지도력이 인정된 자라는 표현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광선 목사가 피선거권 제한 철폐에 대해 거듭 설명한 것은 특정인을 위한 합의가 아니냐는 의혹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이 목사는 “한기총 대표회장은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도 장로도 될 수 있다. 제한을 두는 것은 민주적이지 않다. 노회나 총회, 단체의 추천으로 누구나 후보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목사는 1차에서 1인 2투표제를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최종 자유경선으로 결정난 배경도 설명했다. 또 증경대표회장들에게는 언권만 주고 결의권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두 사람이 내놓은 개정 합의안에는 대표회장 후보의 자격을 노회추천까지 허용했다. 그야말로 누구나 나올 수 있도록 만들었다. 얼핏 들으면 매우 합리적이고 민주적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이는 한기총의 과열선거를 조장할 심각한 문제의 소지가 있다. 단, 한 교단에서 한 명만 추천하는 것과 금권선거 관련자 영구제명 등이 제동장치로 마련됐지만 한기총의 과열 양상을 막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겉으로는 ‘여성과 장로’에게도 자격을 주어야 한다며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처럼 설명했지만 한국 교회의 기층 정서가 여성과 장로에게 문호를 닫아 놓고 있는 상태에서 한기총 대표회장은 누구나 될 수 있다는 논리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오히려 자유경선을 통해 ‘능력’ 있는 사람이 나설 수 있는, 즉 금권선거를 조장할 우려가 충분하다는 점이다.

# 합의 뒷배경 있나?

첫 번째 합의발표 후 개혁 합의안이 공개되면서 두 사람의 합의에 뒷배경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직무대행의 특별총회 공지 후 전격적으로 이뤄진 합의는 결국 직대 중심의 개혁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는 공감대에 의한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직대의 개혁안이 그대로 상정될 경우, 차기 주자들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고, 당장 대표회장 순번도 곧장 중소형 교단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법원에 개혁안에 대한 개정원칙이 올라간 만큼 한번 개정하고 나면 쉽게 손질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양측은 개정안뿐만이 아니라 인선에 대한 합의도 상당부분 접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두 사람의 합의로 한기총 사태가 완전히 해결된 것도 아니다. 지난 10일 범대위 앞에서 이광선 목사는 “협상이라는 것이 100% 내 뜻만 반영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최소한의 개혁을 이뤄내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나머지는 다음 기회에 계속 보충해 나가면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싸움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을 예고한 것이다.

길자연 목사측의 모 인사 역시 “일종의 휴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일단은 한기총 정상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고, 대립이 길어지면 손해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담겨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또 올 12월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를 앞두고 이미 주요 교단에서 WCC 찬반론자들의 맞대결이 예상되고 있어 이들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 직무대행과 범대위 수용여부

길-이 목사 두 사람은 최종 합의안과 정관개정안을 한기총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무대행이 개정안에 반영해달라는 요청도 함께 있었다. 양측의 합의내용 중 개혁의 원칙에 적합한 것은 수용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과열선거를 유발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토론에 부칠 가능성이 크다. 당사자들조차도 현장 토론을 염두에 둔 개정안 상정이라고 범대위측 한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현장에서 축조심의에 들어갈 경우 논란 사항에 대해 성안을 하고 과반수 동의가 된 안건을 전체 안에 삽입해 2/3 통과를 얻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동시 상정된 길자연 목사의 인준은 어떻게 될까. 범대위 일부 인사들은 “길자연 목사는 사퇴해야 하고 인준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본안소송 역시 개인 명의로 제기한 것이며, 이광선 목사의 합의가 소송 취하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다른 견해도 나왔다. 모 인사는 “인준과 합의가 법원에 전달되면 소송 결과도 달라질 것”이라며 “이미 재판부는 합의를 주문했고, 이를 이행하면 소송이 더 이상 유지되긴 힘들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범대위에 대한 설득을 진행하고, 최근 산발적으로 일어난 개인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한기총과 관계없이 진행되는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결국 ‘개혁안과 인준’이라는 두 마리 토끼는 한기총을 둘러싼 교계 기득권층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한편, 사회법에 가로막힌 혼란도 풀 수 있는 ‘차선책’이라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이 공감대가 한국 교회와 한기총을 명예롭게 회복하는 ‘대의’보다, 사건 당사자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혁안 내용을 접한 모 교단 총무는 “문제 당사자들이 합의한 것이 마치 한기총을 위한 것으로 호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사건의 책임을 지고 두 사람은 교계에서 자숙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한기총의 개혁은 직무대행과 교단장들이 협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며, 두 사람의 합의안에 또 다른 목적이 담겨있다면 반드시 막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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