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항상 나를 버리지 않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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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항상 나를 버리지 않으셨어요"
  • 승인 2002.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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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전쟁통에 총을 맞거나 생명을 위협받는 부상을 당한 것도 아닌데 몸이 좀 이상하다고 나라에 무언가를 요구하는 게 웃기잖아요. 나를 포함해서 당시 군대에 있던 많은 젊은이들이 대부분 월남 파병을 자원했지만 귀국 후 특별대우를 기대하지 않았어요.
살아서 조국 땅을 밟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던 걸요.”고엽제 질병으로 힘든 노년을 맞고 있는 계기중집사(60·여의도순복음교회). 그는 나라에 무언가를 요구했어야 했다. ‘이정도 쯤이야’로 버텨온 30년. 그러나 그의 몸은 치명적인 다이옥신에게 조금씩 조금씩 잠식되고 있던 것은 몰랐다.

이렇게 고엽제 환자들의 대부분은 질병에 대한 정보도 없이 왜 자기가 죽어가는지 모른 채 삶을 마감해야만 한다. 병원에서조차 병명을 몰라 살아보려는 본능 때문에 가산을 모두 탕진한 사람들도 한 둘이 아니었다.
더 이상의 치료가 곤란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사람은 더 이상 가족에게 고통을 줄 수 없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했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그들이 베트남에서 윤리적으로 부끄러운 짓을 하다가 고약한 성병, 국제 매독에 걸려서 죽는다고 그 질병을 좋게 말해서 ‘베트남 풍토병’이라고 말하며 그들의 도덕성을 비난하고 매도했었다.
계집사도 미국의 고엽제 공수가 한창인 1967년 월남에 파병됐다. 그는 전장에서 수많은 전투를 겪으면서 살아남기위해 발버둥쳤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베트공과 싸워야했고 말라리아 등의 풍토병을 견뎌야 했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위풍당당하게 배에 오르던 그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숨막히는 전투 속에서 그는 고국을 그리워했고 하루 빨리 복무기간을 마쳤으면 하는 바램이 굴뚝같았다.
베트공과의 효율적인 전투를 위해서는 시계확보가 최우선이었다. 열대우림의 기후탓에 나무와 풀들이 무성했다. 미군은 하늘에서 무언가를 연실뿌려댔고 수개월이 흐르자 나무들이 바짝바짝 말라들기 시작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에서 여타의 것을 신경쓸 겨를이 없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당시는 아무도 몰랐다. 하늘에서 내린 그 가루에 맹독성의 다이옥신이 숨어있다는 것을.

계집사는 13개월의 복무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귀국 후 생활도 별 문제 없었다. 계집사는 철강회사에 취직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평범한 일상을 살았다. 시간이 흐르고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두번이나 바뀌고 50십 줄에 들어선 그도 점차 노쇄해지고 있었다.
몸 이곳 저곳에서 이상신호를 보내왔다. 편두통도 심해지고 기침도 심해졌다. 그리고 이상한 것은 신체 곳곳에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병원은 찾아다녔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년이 흘렀다. 매스컴에서는 연실 고엽제 질병에 대한 보도가 나왔다. 오래 전부터 불거졌던 고엽제에 대해 별 신경을 안쓰던 그였지만 환자들이 말하는 증상 중 여러가지가 자신의 것과 일치했다.

그도 ‘혹시나~’의 심정이었고 주변에서 수 없이 권유를 했지만 이내 무덤덤하게 지나쳐버렸다. 결국 그는 쓰러졌고 1년 동안의 신체검사를 통해 고엽제 경도장애의 판정을 받았다. 정부에서 21만원 상당의 보상금을 받고 있지만 직장을 잃은 그로서는 생활이 막막했다. 자녀들이 다 성장한 것이 위안이됐지만 그래도 불편한 몸과 변변치 못한 가정형편은 늘 무거운 짐이었다.
그의 최후의 버팀목이 됐던 것은 신앙이었다. 20여년 전 이웃의 권유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지만 그렇게 열정적인 신앙생활의 모습은 아니었고 그저 주일을 지키는 평범한 성도 수준이었다. 그렇게 20년을 보낸 계집사가 쓰러진 이후 봉사를 시작한 것이다.

직장을 잃고 아픈 마음, 질병으로 얼룩진 몸을 감싸준 것은 바로 하나님이었기 때문이다. 계집사는 매일은 아니지만 힘든 걸음을 이끌고 새벽기도를 나간다. 주일이면 군선교회에 나가 몸성할 때도 안하던 봉사를 한다. 하나님이 주는 위로는 세상이 주는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힘든 줄도 모른다.
젊은시절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그가 이제 남은 여생은 하나님께 드리기로 했다. 물론 하나님께 헌신해봐야 세상같은 보상금은 없지만 말씀과 기도생활을 시작한 후에는 무엇이 더 의미있는 일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다.

김광오기자(kimko@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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