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 이루는 ‘화해’와 ‘평화’의 사도가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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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 이루는 ‘화해’와 ‘평화’의 사도가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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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12.0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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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화해’는 신구약 성경의 가르침의 중심이고 핵심이다.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인 동시에 ‘화해’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오래 전에 ‘화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인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냄새가 나는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츰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 완전히 바뀌어졌다. ‘화해’라는 말보다 더 귀하고 더 아름다운 단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성부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이루시기를 원하시고 그리고 이루어가시는 일이 바로 ‘화해’라고 생각하게 됐고, 결국 ‘화해’는 창조와 구속의 목적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서로 원수 사이었던 이스라엘과 애굽과 앗수르가 언젠가는 서로 ‘화해’하고 서로 교류하며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화해’와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화평케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형제가 죄를 범하면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며 그 형제와 화해하라”(마 18:22)고 말씀하셨다.

성령 하나님께서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오셔서 이루신 일이 방언의 은사를 주시므로 하나님과 영적으로 ‘화해’하며 교제하게 하신 일이었고, 그리고 3천여 명의 다문화 다인종과 영적으로 ‘화해’하며 교제하게 하신 일이었다.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은 ‘화해’와 ‘통일’이 우주적으로 그리고 천상적으로 이루어 질 것을 내다봤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도 하니 …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아멘 하더라”(계 7:9~12).

하나님과 ‘화해’하며 교제하고, 사람들과 ‘화해’하며 교제할 때 우리는 행복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
지금 남북이 불화하고 갈라짐으로 한반도에 불행과 비극이 초래하게 됐다. 인간은 모두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죄인들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서로 불화하고 서로 갈라지고 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화해’의 사역을 이루실 뿐 아니라 이 ‘화해’의 사역과 직책을 당신의 종들에게 맡기셨다.

‘화해’의 사역과 직책을 수행할 수 있는 방법과 비결은 진리의 깃발만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었다. 진리의 깃발만 휘둘렀다면 십자가 아래에 있던 로마 군인들도, 백부장도, 유대인들도 모두 지옥의 저주와 심판을 받았을 것이다.

‘화해’의 사역과 직책을 수행할 수 있는 방법과 비결은 온유와 겸손의 모습을 몸과 마음에 지니고 긍휼과 사랑을 조건 없이 베풀며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그 모습을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이 온 몸에 죽음의 흔적을 지니면서 나타내 보였다. 그 모습을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이 긍휼의 삶과 죽음으로 진하게 나타내 보였다. 손양원 목사님은 마귀와 같은 공산당 안재선을 진리의 칼을 휘두르며 굴복시키지 않았다. 온유와 겸손과 눈물을 몸과 마음에 지니고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조건 없이 나타내 보이므로 안재선을 녹였고, 그와 화해를 이루었다.

남북의 화해와 협력과 통일과 평화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적인 일이 아니다. 한국 교회와 한국 민족이 반드시 이룩해야 할 필수적인 일이고 민족적인 과제다. 아니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명령이다.

어떻게 남북의 화해와 협력과 통일과 평화를 이룰 수 있을까? 정치적인 방법이나 군사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진리의 깃발만을 휘두르는 방법으로는 될 수 없다. 온유와 겸손과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가슴과 몸에 지닌 하나님의 사람들과 민족의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화해’와 ‘평화’의 사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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