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대중문화와 미디어 비평운동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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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대중문화와 미디어 비평운동의 실종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0.05.2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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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전문가들 한목소리 “전문적 비평 기능 회복해야”

“교회는 동성애, 그냥 반대 아닌가요?” 한 네티즌이 볼멘소리로 인터넷 상에 글을 올렸다. 그러나 누구도 댓글을 달거나 응답하지 않았고, 교회는 그렇게 ‘그냥 반대하는 곳’이 됐다.

어느샌가 한국 교회에서 대중문화 비평이 자취를 감췄다. 최근 사회적으로 동성애 코드 드라마 논란이 벌어졌지만 교계에 수많은 기관과 단체 중 시의적이고 전문적으로 대응한 기관은 한 곳도 없었다. 그 사이 기독교는 이렇다 할 대응도 하지 못하고 비판의 중심에 섰다.

당시 동성애 논란과 관련해 논평을 낸 곳은 한국교회언론회뿐. 그러나 이 또한 동성애에 대한 교계의 일반적인 정서를 대변했을 뿐, 전문적인 문화 비평이나 깊이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사실상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는 대중문화의 윤리적 문제, 비성경적 내용 등에 대해 아무런 대응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2000년대 초 주목받았던 문화비평

그러나 교회가 대중문화 비평에 대해 처음부터 이렇게 무기력했던 것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정치 민주주의에 이어 ‘문화 민주주의’라고 불리며 문화 개방의 물결이 가속화되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한국 교회는 대중문화의 세속화에 대항하며 치열하고 선명한 가치관을 보여줬다.

지난 1987년도에 창립한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초창기부터 19개 단체와 연합해 ‘스포츠신문 음란폭력조장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 선정적 대중문화의 대명사였던 스포츠신문에 공세적으로 대응했다. 이외에도 스포츠 신문, 잡지, 방송의 음란성에 대한 모니터 활동과 항의 운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 스포츠신문에서 공개사과문을 게재하거나 미디어의 선정성에 대한 문제가 부각되는 등 문화개방에 맞서 일정부분 제동을 거는 역할을 했다. 또 영화 ‘거짓말’을 검찰에 고소하고, 박지윤의 ‘성인식’ 뮤직비디오에 대한 방송사의 심의강화를 촉구하는 등 사회적 이슈에 따른 선제적 대응과 문화소비자운동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0년대 초반에도 음반, 스포츠신문, 학교 감시단을 구성해 청소년유해환경 감시활동을 벌이고 ‘Turn Off TV & PC, Turn On Life’ 주간 캠페인을 통해 문화운동에 진력했다. 이처럼 초창기부터 기윤실 활동의 상당부분은 대중문화 변혁 운동이었다. 또 이를 통해 사회 속에서 기독시민단체로서의 위상을 세울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 교계 연합기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교회협) 내에서도 언론분과위원회 언론 모니터팀이 활동하며 대중문화에 대한 감시 활동을 펼쳤다. 이들은 특히 공중파 TV를 통해 방송되는 뉴스, 드라마, 시사.교양 프로그램 등을 모니터링하면서 미디어 비평 활동을 전개했다.

그 당시 교회협 모니터팀이 작성한 ‘KNCC 방송모니터 보고서’는 시의성과 전문성을 가진 활동 덕분에 일반 언론으로부터도 주목받았다. 모니터팀은 문화비평을 넘어 사회적 파장이 큰 뉴스의 공정성 여부는 물론, 프로그램의 TV 편성시간 문제까지 다루는 등 그 주제도 다양했다. 이 때문에 당시 사회적 화두였던 언론개혁 논의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 비평의 실종, 대안 마련 시급

그러나 KNCC 미디어팀과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지난 2005년 전국 70여개 단체와 함께 △미디어의 공공성과 수용자 주권을 바탕으로 한 바람직한 정책 대안 제시 △미디어 모니터링 활동과 교육을 통한 시청자 주권 향상을 목표로 하는 ‘미디어수용자주권연대’ 발족에 참여한 후 그 활동이 사그라졌다. 이후 5년여가 지난 지금 기독교계에서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대한 비평 운동은 실종됐다.

교계 문화 비평의 실종 배경에는 활동가들이 교계를 빠져나가 사회운동으로 전환한 것도 한몫했다. KNCC 모니터팀 임순혜 팀장은 현재 공공미디어연대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미디어기독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기윤실 문화소비자운동의 실무를 담당했던 권장희 총무는 놀이미디어교육센터를 설립하고 기윤실로부터 독립했다.

기독교적 문화 비평 실종에 대해 기윤실 양세진 사무총장은 “최근에는 사회가 종교적 문화적으로 다원화되면서 기독교의 이름으로 사회적 이슈를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새로운 전략적과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하반기부터 토론회를 갖고 새로운 문화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화선교연구원 원장 임성빈 교수(장신대)는 “대중문화 비평이 갖는 전문성과 다양성 때문에 신중해진 면도 있고, 단순한 반대운동적 측면에서의 효과가 약해진 것도 있다”며 “반대를 위한 운동만이 아닌 대안까지 생각할 수 있는 복합적인 운동으로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특히 임 교수는 기독교 문화운동의 세분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비평운동, 대안운동, 교육운동 등으로 전문화할 필요가 있다"며 “운동성이 줄어든 것은 아쉽지만 경고하는 운동에서 벗어나 성숙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기독교 문화이론 전문가인 신국원 교수(총신대)는 기독교가 대중문화에 대해 더이상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 교수는 "대중문화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만큼 윤리적 반성이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워낙 전반적으로 건실한 비평이 약하다. 내용의 옳고 그름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기독교 문화 비평의 회복이 필요하닥 지적했다. 신 교수는 “문화이해를 가진 이들이 능동적 논의를 통해 건전한 문화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대중문화는 공기와 물과 같아 사회 환경이며, 따라서 모두의 문제다. 만약 거기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개혁는 일에 시민 누구나 관심과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성빈 교수는 “급변하는 문화를 복음적, 신학적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비평기관이 필요하다”며 “총회와 연합기관에서 관련 전문가들을 모아 교계의 문화 비평 기능을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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