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닮은 길을 걷는 하나님의 귀한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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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듯 닮은 길을 걷는 하나님의 귀한 사역자
  • 현승미 기자
  • 승인 2010.04.23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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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윤항기 목사와 길거리 목회하는 김길 목사

 


목사 윤항기. 당대 최고의 악극 스타였던 아버지 윤부길이 ‘마약 복용’이라는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서 온 가정이 어려움을 겪었다. 청계천 한 자락에 움막을 짓고 살았으며, 깡통을 차고 주변 사람들에게 구걸까지 해야 했다. 심지어 어머니 성경자 씨는 아버지를 대신해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악극단을 따라 나섰다가 심장마비로 객사했다. 결국 어린 동생을 데리고 미군부대에서 구두닦이를 하면 생을 연명해야 했다.

그리고 여기 또 한 사람, 김길 목사. 어려운 형편에 술만 마시면 어머니를 구타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마저도 아홉 살 무렵 큰 형과의 다툼 후 목을 매 생을 마감했다. 거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이미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던 어머니. 이 사실을 알게 된 형들이 어머니를 죽일 듯 폭행했고 그 다음날 어머니는 가출했다. 누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어떤 남자를 따라 집을 떠났다. 후에 셋째 형 역시 큰 형과의 큰 다툼으로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둘째 형도 역시 가출했다. 어쩔 수 없이 큰 형과 함께 살아야했지만, 툭하면 맞아야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자신들이 어찌할 수 없는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이 두 사람이, 이 모든 연단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에 감사하면서 남을 섬기는 사역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는 저희 남매에게 멀게만 느껴졌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 윤복희는 저와 달리 하나님만을 섬겼습니다. 그런 그에게 큰 연단이 내려졌지요. 도저히 하나님을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두 차례의 이혼. 오직 하나님만을 모시는 그 아이에게 왜 복을 주지 않고, 오히려 저렇게 큰 고통만 주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요.”

부모의 죽음으로 세상 가운데 남겨졌던 윤항기 윤복희 남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줘도 아깝지 않은 동생의 고통은 그에게도 큰 상처가 됐다. 그러나 하나님은 1979년 6월에 열린 서울국제가요제를 통해 그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셨다.

동생의 고통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그는 노래 ‘여러분’을 작곡 했다. “네가 만약 외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줄게 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
국내에서 최초로 열린 국제가요제. 첫 대회이기에 대상을 국내가수에게 주지 않겠다는 방침이 있었지만, 각국에서 온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그들에게 대상을 선사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신 하나님, 절망의 순간에 희망을 보여주신 하나님, 동생 윤복희를 다시 사람답게 살게 해 주신 그분께 감사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가수로 세상의 ‘영화’를 누리던 그는 세상 것에 취해 하나님을 멀리 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를 끝까지 붙드셨고, 다시 한 번 그에게 기도의 용사 ‘아내‘를 붙여줬다. 가수로 인기를 누리던 때 갑작스런 폐결핵 선고를 받았지만, 기도하는 아내의 모습에서 어머니를 발견한 그는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국내 최초로 음악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올해로 가수 인생 50주년, 성역 20주년을 맞이한 윤항기 목사. 드라마 같은 그의 인생역전 이야기는 ‘노래하는 목사 윤항기의 여러분’(성안당)을 통해 만날 수 있다.
한국 교회와 도시 변화를 꿈꾸는 ‘김길 목사’는 명동 한복판에 ‘명신교회’를 세워 섬기고 있다.
힘들게 살았지만, 올곧게 자랐다. 간신히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예수전도단을 알게 됐다. 예수전도단 사역을 하는 중에 한 자매를 만났지만, 교제 사실을 안 자매의 가족들이 그를 불러내 구타했다.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섬기며 자매와 함께 예수전도단 간사로 섬기며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큰 아이가 생기자 예수전도단 생활을 접고 독립했다. 이불과 텔레비전이 재산의 전부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끊임없이 연단하셨다. 큰아이 성식이가 장애를 가진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길 목사는 하나님께 의지했다. 아니 하나님 말고는 의지할 데가 아무 곳도 없었다. 자신이 고통 받는 순간에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묵상했다. 오히려 고난이 있었기에 자신이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김길 목사.

교회 와서 세상의 어려움을 위로 받으려 하기보다, 우리 기독교인이 세상으로 나가서 가정과 직장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믿는 그는 예배당도, 성도도 없이 ‘길거리 교회’를 개척했다.
삶 가운데서서 세세한 부분까지 만지시고, 계획하시는 하나님. 그가 자신의 삶을 적어내려간 ‘증언’(규장)을 통해 그의 삶 가운데서 만지시고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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