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당시 한국 교회는 방관자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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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당시 한국 교회는 방관자였을 뿐…
  • 표성중 기자
  • 승인 2010.04.0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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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역사학회장 한규무 교수 ‘283회 월례발표회’에서 주장
▲ 한국기독교역사학회는 지난 3일 '제283회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4.19와 관련된 한국 교회의 역할과 방향성을 모색했다.
지난 1960년 4월,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탄압 속에서 학생들이 중심세력이 되어 일으킨 민주주의 혁명인 ‘4.19’. 당시 한국 교회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는 방관자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기독교역사학회가 지난 3일 오후2시 새문안교회 언더우드교육관에서 가진 ‘제283회 월례발표회’에 발제자로 나선 학회장 한규무 교수(광주대)는 ‘한국 교회와 4.19 연구의 현황과 과제’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 한규무 교수(한국기독교역사학회장, 광주대)
한 교수는 “올해로 4.19는 50주년을 맞는다. 한국기독교사가 여러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쌓아왔으나 유독 4.19에 대한 연구는 부진한 듯하다”며 그 이유로 한국 교회 성도들이 대체로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에 호의적이어서 4.19 당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교회와 4.19 연구를 정리하는 것은 간단하면서도 난감한 일이 되었다”며 “4.19 당시 한국교회의 역할이라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다. 이것은 개신교뿐만 아니라 가톨릭도 마찬가지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독교인 개인 차원의 활동이나 희생은 있었지만 그다지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 교회는 방관자였다. 그러다보니 자기반성 외에 별다른 글이 보이지 않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된다”고 밝혔다.

이날 4.19와 한국 교회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무척이나 어려웠다고 전한 한 교수는 4.19와 관련된 글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을 발표했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한국 교회와 4.19에 관련된 글은 ‘기독교사상’에 가장 많이 등재됐다. 1960년부터 1998년까지 총 19편의 글이 실렸다. 하지만 그 내용 중에 기독교와 관련 없는 글이 11편이며, 나머지 8편도 그 경과나 의미를 설명하는데 그쳤을 뿐이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기독교 사상’에 실린 글들 중 4.19 관련 논문이라 부를 만한 것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 한국기독교 통사류, 교단사ㆍ노회사ㆍ개교회사류, 백과사전류 등에 실린 내용들도 발표한 한 교수는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면 좋겠지만 기존의 글들을 모아 서로 충돌하지 않게 사실기술과 평가 및 해석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또한 “당시 시대적 상황을 정리한 언론 기사를 분석,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며, 총회록ㆍ노회록ㆍ당회록ㆍ개교회사 등도 검토해야 하고, 미션스쿨 학생들의 동향 파악, ‘국립4.19민주묘지’ 피장자들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최근 몇 년동안 4.19 관련 집회들이 있었고, 또 앞으로 준비되어 있는 행사도 있는 만큼 4.19에 대한 교회사적 차원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기독교 사상’에 실린 4.19에 대한 내용들의 일부다.

△김재준(4.19 이후의 한국 교회): 4.19는 ‘혁명’이 아닌 ‘의거’ … 4.19 이후의 학생정신이 끊임없이 건설해야 함과 동시에 4.19 이후의 교회도 거대한 약진을 위한 재정돈과 대사회적 재발전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박형규(4.19와 한국 교회): 4.19는 이 정치체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 4.19는 국민 대중의 정치적 자각을 촉발시켰을 뿐 아니라 교회의 정치적 사명을 일깨워 주었다. 그런데 교회가 정치적인 행동을 하려고 들면 언제나 ‘교회는 정치단체가 아니다’라는 주장이 이를 가로막는다. 하지만 바로 권력의 한복판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은준관(부활과 4.19-한 기독자의 신앙고백에서 본 아나로기아): 4.19 사건은 이 민족의 운명 속에 비치는 한 영원한 현재의 순간뿐 아니라 도리어 앞으로 전개되는 미래의 지평 속에서 한국인이 공통으로 자기 비판과 자기 겸허를 통한 회심-메타노니아가 일어나는 새로운 진통 속에서 4.19는 계속 살아 있으리라는 의미인 것이다.

△송기식(부활과 4.19의 계절): 4.19 기념예배를 마련한다든가, 식목일에 4.19기념탑 주변에 기념식수를 하는 행사를 통해 공의와 불의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분명히 해 주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복룡(4.19와 청년세대): 기독교 청년은 무엇을 할까? … 첫째로는 교도의 민족주체성에 관한 문제이다. … 둘째로는 기독교 의식과 전통문화의 사이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할까 하는 문제이다. … 셋째로 오늘날의 기독교도들은 사변적이고 나약하다는 외부의 지탄에 대해 냉소만 하지 말고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

△박종열(4.19 이후의 학생기독교운동): 4.19는 보이지 않게 학생기독교운동을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으로 변화시키는 데 자극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노명식(4.19혁명과 기독교): 4.19에서부터 반 세대가 지난 1975년 현재의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는이제 그만큼 성장한 것이다. 교회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자각이 그만큼 깊어진 것이다.

△마경일(4.19혁명과 교회의 회개): 일단 교회가 어떤 권력층과 결탁하거나 타협 혹은 굴종의 자세를 취하게 될 때 그 교회는 빛의 증언자로서의 사명을 포기하거나 악화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성갑식(4.19와 부활절): 금년의 부활절은 4.19의 주일이다. … 우리 한국은 해방 후 한 세대 남짓하지만 민주 헌정의 뿌리를 내리는데 어려운 시련을 많이 겪었다. 그러나 이제는 제5공화국의 토양에 민주 헌정이 뿌리를 다시 내리게 되었다. … 4.19의 부활절은 우리 국가가 민족 공동체의 부활과 아울러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부활을 가져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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