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60강) 신학이 아니라 경제적 이익이 문제의 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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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60강) 신학이 아니라 경제적 이익이 문제의 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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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3.1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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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

스게와 아들들의 패배는 사도 바울의 축귀사역을 보다 인상적인 것으로 만들었으며, 이는 에베소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행 19:13~20). 이 사건은 예수님의 이름이 함부로 도용될 수 없으며 오히려 찬양의 대상임을 증거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이들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은 이미 주의 말씀을 들었고, 또한 바울의 치유 사역에서 사단의 패배가 확증된 것을 보았다. 그리하여 이제 그들은 마술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마술 책들은 패배한 정권의 상징처럼 이제 폐품(廢品)이 되어버렸고, 따라서 불태워져야만 했던 것이다. 당시 폐기된 책값을 누가는 은 오만이라고 전하고 있는데, 당시 은전 하나가 노동자 하루 품삯에 해당한다고 할 때, 일당을 최저 5만원으로 계산해도 무려 25억원에 해당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이렇게 큰 금액이 기록된 것은 책의 품질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기록된 비밀스런 단어와 이름들이 지니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능력 때문이었다.

이 마술책들을 불태운 사건은 이제까지 은밀하게 마술을 행하고 있던 신자들의 행동이라기보다는, 이 사건 이후 마술을 포기하고 믿음을 갖게 된 사람들의 회개의 행동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누가가 여기서 사용한 용어들, ‘두려워하며,’ ‘높이고’(행 19:17) 등은 직접적으로 회심과 관련된 것들이다(참고, 행 9:31; 10:46). 더 나아가 여기서 누가가 결론으로 소개한 “주의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행 19:20)는 교회 신자의 증가를 가리키는 한 방식인 것이다(비교, 행 6:7; 12:24). 사실 스게와의 아들들에 대한 악귀의 승리는 귀신의 패배를 의미하는데, 이는 둘 다 사탄을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탄의 왕국이 나누어져 망하게 된 까닭에 주의 말씀은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도행전 19장 21~22절에서 누가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나머지 사역을 미리 암시하고 있다. 바울은 성령 안에서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서(행 20:1~12) 예루살렘을 다시 방문하고(행 21:15~38), 마지막으로 로마에 갈 것을(행 28:14~16) 다짐했다. 여기서 누가가 사용한 단어는 매우 강한 표현이다. 바울은 자기가 로마에 가야만 한다고 말하였는데, 여기에 사용된 헬라어 단어 ‘데이’(dei)는 신적 목적 혹은 작정을 가리킬 때 사도행전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이다. 그러면 왜 바울은 구태여 로마로 가고자 했을까? 이 질문에 우리는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로마의 영향력을 보면서 영향력과 권세의 세계적 중심지인 로마에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원문에 있으나 우리말 성경에는 빠져 있는 한 구절이 있다. 그것은 ‘엔 토 프뉴마티’, 즉 ‘성령 안에서’(in the Spirit)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마게도냐, 아가야, 예루살렘, 그리고 로마를 가고자 한 것은 바울의 자발적인 결심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이루어진 결심이었던 것이다.

이런 바울의 결심은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을 결심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눅 9:51). 비록 여기서 고난이 분명하게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예루살렘으로의 예수님의 여행과 로마로의 바울의 여행 사이의 평행성은 고난의 요소를 포함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울에게 있어서 이 고난의 요소는 그가 여행을 계속할수록 더욱 분명해지게 되었다(행 20:22~24).

사도행전 19장 23~41절에서는 바울의 전도 사역으로 말미암아 에베소에서 발생한 소동을 전하고 있다. 비록 바울이 이 장면의 전면(全面)에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그는 분명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

본문의 기사는 다산(多産)의 모신(母神)이었던 아데미(Artemis)의 신전을 만들었던 데메드리오의 연설로 시작된다. 그는 우상에 대한 바울의 비난이 자신들의 사업에 불리하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경제적 문제를 호도하기 위해 데메드리오는 여기에 종교적 이유를 덧붙혔다(27절). 그렇지만 경제적 이유가 전혀 감춰진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데미 신전은 아시아 경제의 중심 기둥이었을 뿐만 아니라, 헬라 세계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면서 동시에 역사상 최초로 완전히 대리석으로 지어진 건물로서, 에베소의 관광 사업을 부양시키는 세계의 칠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원근각처에서 이를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것이고, 이들 관광객들이 은감실(은으로 만든 아데미 신전의 모형)과 아데미 신상을 구입함으로써 그것을 만드는 에베소의 장인(匠人)들은 상당한 수입을 올렸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경제적 수입이 위태롭게 되자 이들은 소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바울의 신학이 아니라, 그로 인해 야기된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돈)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던 것이다. 
                                                                                         김경진 교수<백석대 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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