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개신교 운동’ 백 년 전에도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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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개신교 운동’ 백 년 전에도 있었네
  • 공종은 기자
  • 승인 2010.03.10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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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에비슨 선교사 제안 … 무위로 돌아가

임희국 교수 ‘공통 교회사’ 집필 제안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교회 일치’. 갈갈이 찢겨 분열된 한국 교회를 교파별 혹은 하나의 교회로 만들기 위한 교회적 노력들이 과연 최근에 일어난 움직임일까.

하나의 교회를 향한 움직임은 벌써 1백 년 전인 19세기 말부터 있었고, ‘단일 개신교’를 향한 주목할 만한 운동이 1905년 일어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지난 2002년 한국교회연합을위한교단장협의회가 추진하다 실패했던 한기총과 교회협에 대한 기구적 통합과 서로 닮아 있다. 

임희국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사)는 한국장로교총연합회가 지난 6일 서울교회에서 개최한 학술발표회에서 ‘교회 일치를 위한 한국 장로교회사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발제, “1905년에 주목할 만한 에큐메니칼운동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주목할 사안은 한반도 안에 있는 모든 교회를 하나로 묶는 ‘단일 개신교’.

‘단일 개신교’는 캐나다 감리교회 선교사였던 에비슨(O. R. Avison)의 제안. “각각 본국의 교단에 배경을 두고 있는 선교사들이 교파와 교단의 담장을 허물고 한국에서 단일 개신교를 만들자”는 에비슨 선교사의 제안에 대해, “선교사들이 만장일치로 동의했고, 장로교회 공의회도 이 제안에 동의했다”고 임 교수는 밝혔다.

그해 9월 15일, 150여 명의 선교사들이 모인 가운데 ‘재한개신교선교부공의회(The General Council of Evangelical Missions in Korea)’가 조직됐다. ‘선교사업에 서로 협력하고 궁극적으로 단일 개신교를 조직한다’는 문구도 헌장에 명시했다. 단일 개신교의 명칭은 ‘대한예수교회’로 확정됐다.

선교사들이 세운 평양과 서울의 학교와 병원들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주일학교 공과와 찬송가, 선교잡지를 공동으로 창간하기로 하는 등의 후속 사업도 정했다.

하지만 이런 구상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현실화되지 못했다. 5년 후인 1910년에 이르러 ‘한국에서 하나로 조직된 교회가 취할 완벽한 정치체제를 제시하기 보다는 실제적인 면에서 가능한 것부터 조화를 추구해 나간다’는 결의가 내려지면서 단일 개신교를 설립하려는 시도는 중단됐다.

이런 현상과 흐름은 1백여 년이 지난 후 그대로 반복돼 재현되는 듯 하다. 지난 2002년 5년 동안의 경과기간을 두고 2007년 통합을 목표로 진행됐던 한기총과 교회협의 통합 추진 과정과 여러 모로 닮아있다. 실패 후 대안으로 이루어졌던 ‘사안별 연합’의 모양새도 동일하다. 1백여 년의 역사 전에도 지금과 똑같은 모습의 교회연합운동이 있었고, 실패 또한 지금과 같은 이유였다.

“각 선교부의 독자 활동이 이전보다 크게 강화됐고, 당초 가졌던 단일 개신교 설립에서 몇 걸음 물러서서 여러 교단의 선교사들이 서로 협력하고 연합하는 데 힘을 기울이게 됐다”고 임 교수는 그 이유를 분석했다. 단일 개신교단을 만들자는 꿈을 접은 대신에 교파와 교단들의 연합사업으로 돌아서게 된 것이다. 

임 교수는 이와 관련 “더욱 활발해질 한국 장로교회 교단들의 연합과 일치는 제1세대의 에큐메니칼 연합정신을 회복해 계승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각 교단의 교회사가들이 공동으로 작업해 ‘공통 교회사’를 집필할 것”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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