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섬기듯 병든 자를 돌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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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섬기듯 병든 자를 돌보겠습니다"
  • 승인 2002.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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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의예과 2학년인 한 여학생이 교회 선배를 따라 ‘다일공동체’를 찾았다. 청량리역 주변 행려자들에게 무료로 점심을 나눠주는 시간. 멋모르고 따라나섰던 여학생의 눈에 밥 한끼를 위해 모여드는 행려자들의 모습과 무거운 밥과 국솥, 그리고 식판을 손수레에 싣고 진땀 흘려가며 나눠주는 한 전도사의 모습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이후 매주 청량리를 찾아 함께 봉사하며 행려자들과 한 가족이 되어갔던 여학생은 12년이 흐른 지금 다일공동체가 세운 천사병원 원장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최영아(33세.다일교회). 희고 깨끗한 얼굴에 밝은 미소가 매력적이다. 고생이라곤 모르고 자랐을 것 같은 그가 예과 2년, 본과 4년, 인턴 2년과 레지던트 4년 등 12년을 공들여 따낸 전문의 자격증으로 제일 먼저 찾은 직장이 다일 천사병원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33살이라는 젊은 나이지만 그가 다일공동체와 함께한 시간은 인생의 3분의 1을 차지해 버렸다.
“처음 다일공동체를 찾았던 날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2백명분의 식사를 수레에 싣고 야채시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한끼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죠. 식판을 받아든 행려자들은 내리는 비에 아랑곳 없이 진흙탕과 빗물이 범벅이 된 밥을 맛있게 먹고 있었죠. ‘아~ 세상에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 정말 충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언젠가 다시 와서 이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죠.”최영아원장은 그 이후 최일도목사를 도와 봉사활동에 기꺼이 참여했다.

의대 본과생이 되면서 부터는 한국누가회 회원이 되어 다일공동체 토요진료를 도왔다. 선배들과 함께 진료를 받으러 오는 행려자들을 돌보고 용돈을 모아 의약품을 구입했다. 학생들 모두가 최선을 다해 봉사했지만 주말 진료로는 한계가 있었다. 평일날 피를 흘리며 급하게 찾아오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지속적인 치료를 요하는 환자도 있었다. 큰 병에 걸린 것이 확실한 환자도 간단한 약만 처방해주고 돌려 보낼 수밖에 없었다.
또 행려자들은 무료 진료소에서 받은 약을 팔아 술을 마시기도 하고 다른 환자의 압박붕대를 몰래 뜯어 가기도했다. 죽어가는 환자가 있을 땐 병원으로 데려가기도 했지만 병원은 신원이 확실하지 않은 환자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시립병원이나 국립의료원으로 보내야했지만 그곳에서도 행려자는 부당한 취급을 당하며 쫓겨나기 일쑤였다.
최원장이 수련과정을 밟던 이대부속병원에서 응급실 당직을 맡을 때였다. 응급상황의 행려자가 실려왔다. 의료보험도 없고 신분증도 없는 이런 환자는 무명남으로 분류되고 치료가 아닌 섭외가 시작된다. 환자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서도 의사는 치료를 할 수가 없다. 단지 의사가 하는 일은 그 주간 행려자를 담당하는 시립병원에 전화를 걸어 환자를 이송하는 일이 전부였다. 사람의 생명보다 돈을 중요시하는 모순된 의료구조 때문이었다. 의사도 어쩔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최원장은 더욱더 무료병원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치료받을 돈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이 없는, 생명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10년의 기도. 그 긴 시간과 많은 사람의 정성은 드디어 행려자들을 위한 무료병원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미래가 보장된 의사의 길을 마다하고 그는 단돈 80만원의 월급쟁이 원장자리를 흔쾌히 수락하고 말았다.
“갈등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다일공동체와 알게된 12년동안 하루에도 여러번 생각이 바뀌었으니까요. 마음속에 ‘이만큼 열심히 했으면 이제 그만둬도 되겠지. 12년을 한결같이 지내왔는데 감히 누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할까’라는 유혹이 밀려들었습니다. 친구들도 제정신이 아니라는 듯이 쳐다봤어요. 보장된 미래를 마다하고 이게 무슨짓이냐는 거에요. 하지만 하나님은 저를 끝내 놓아주지 않더군요. 그리고 부모님과 남편, 시부모님의 격려도 저에게 힘이 됐습니다.”최일도목사도 최영아원장을 알게된 12년전부터 오직 한 사람, 주의 딸이 무료병원을 위해 헌신해 주길 기도해왔다. 결국 그는 12년동안 의사가 되는 훈련과 함께 보잘 것 없고 병든 자를 사랑하는 얘수님의 마음도 배워왔던 것이다.
행려자들을 위해 내과를 선택했고 병원에서 수련하는 동안 죽음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댓가없이 사랑하는 방법도 마음에 새겼다.

“청량리 배식 첫날, 밥을 나눠주는 한 권사님이 행려자에게 ‘이 밥먹고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말하자 그 사람은 식판을 팽개치며 ‘예수믿는 조건이라면 밥을 먹지 않겠다’고 화를 냈어요.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밥이었지 예수님이 아니었어요. 그 때 저는 밥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선 안되겠다고 생각했죠. 치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의료혜택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최대한의 치료를 해주고 그들의 생명을 존중해 주는 것으로 의무를 다하게 되죠. 돈없는 사람이, 보험증 없는 사람들이 마음껏 드나들 수 있는 병원이라면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을까요.”“내 스스로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겸손히 말하는 최영아 원장. 그저 하나님이 이끄시는대로 따라갈 뿐이다. 병원을 세운 6천여명의 천사회원과 병원 운영비를 감당할 만사회원, 그리고 자원봉사자로 참여할 의사와 간호사, 조리사와 간병인 등 많은 사람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소외된 행려자를 섬기는 작디 작은 여의사의 사랑. 그 사랑으로 하나님 나라는 어느덧 우리곁에 가까이 와 있다.

이현주기자(Lhj@ucn.co.kr)

'봉사와 나눔으로 치료'
오는 10월 4일부터 진료에 들어가는 다일 천사병원은 의료보험도 없고 신원도 불분명한 행려자와 외국인 불법체류자만 철저히 골라 받는다. 의료제도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병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와 의료보험공단의 지원을 일절 받지 않고 순수한 후원으로만 운영된다.
지역의료보험에 가입해 있으나 보험료를 내지 못한 사람과 자식들에게 버림받은 독거노인, IMF이후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나선 행려자와 알콜중독자들, 또 조선족이나 노동현장에 있는 불법체류자들은 진료비 전액을 본인이 부담해야 하므로 일반병원의 진료를 받을 수 없다. 다일 천사병원이 이들의 생존권을 찾아주는 것이다.

최원장은 간혹 사람들이 “재활의지도 없고 사회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는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위해 투자하느니 가능성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느냐”고 질문하는데 대해 이렇게 대답한다.
“주님은 이 사회에서 버려진 작은 자를 위해 사랑을 베푸셨고 그것이 주님께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중에 누구도 행려자나 장애인, 독거노인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그들의 생명은 천하다고 감히 말할 수도 없는 것이죠. 천사병원은 그들을 섬기는 주님의 길을 따르기로 했습니다.”이달부터 자원봉사교육을 시작한 다일 천사병원. 의사나 간호사는 물론이고 청소와 세탁, 간병, 식당업무 등 수많은 영역에서 봉사자를 필요로 한다. 또 일과 후에 봉사하는 의사들을 위해 진료시간을 오후 2시에서 밤 9시까지로 정했다. 비록 35개병상에 50여명의 입원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지만 천사병원의 치료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장기입원 환자와 중환자들의 요양시설을 마련할 계획이다.
6천여명 천사회원의 작은 도움으로 세워진 다일 천사병원은 1만 4명의 회원이 한달에 1만원씩 후원하는 만사운동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10월 개원까지는 수술실에 필요한 도구와 각종 의료기기, 의약품과 침상 등 약 6억원 상당의 물품이 필요한 상황이다.
최영아원장은 “다일공동체의 밥퍼주는 사역이 그러했듯이 천사병원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대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후원문의:2212-8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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