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32강) 유대와 이방 성도를 하나로 묶는 통합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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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32강) 유대와 이방 성도를 하나로 묶는 통합적 의미
  • 승인 2009.07.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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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교회의 구제헌금




바나바와 사울에 의하여 최초의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가 부흥일로에 있을 때, 예루살렘 출신의 선지자 아가보가 안디옥에 내려와 천하에 크게 흉년 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행 11:28).

누가는 그 일이 글라우디오 황제의 치세(治世) 동안에 일어났다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전 기간 동안 범세계적 규모의 기근은 일어난 적이 없었고, 단지 글라우디오 황제의 치세 동안 여러 지역에서 흉작과 빈번한 기근이 발생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와 함께 요세푸스에 의하면, 46-48년 어간에 유대에 기근이 발생했으므로, 아디아베네의 헬레네(Queen of Helena of Adiabene) 여왕이 예루살렘의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을 구호하기 위해 이집트로부터 곡물을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미쳤을 이 같은 고난에 대응하여 이방의 안디옥 교회는 부조금(디아코니아, diakonia)을 유대의 형제들에게 보내기로 결정하고, 이 직무의 수행을 위해 바나바와 사울을 선임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디옥 교회의 이 같은 기근 구제활동을 종류는 달라도 일종의 구제 행위, 곧 부유한 기관이 빈궁한 기관에 베푼 자선 행위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사도행전에 기록된 이 독특한 사건으로부터 우리는 구제의 규모가 고난에 처한 한 교회의 필요에 부응해서 확대되었음을 관찰할 수 있고, 구제 행위는 개개인뿐 아니라 경제적 곤경에 처함으로써 외부의 재정적 지원에 의존하게 된 기독교 공동체들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실과 함께 우리는 이 사건이 갖는 신학적 의미를 함께 유념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그 서신에서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자신이 맡은 모금(募金)에 대해서 여러 차례에 걸쳐 언급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그 자신이 인정한 것처럼, 바울 사도가 이 일에 열심을 기울였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 왜 바울은 이처럼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 모금에 열성적이었을까? 그것을 이 부조를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로 대표되는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이방 그리스도인들을 신학적, 영적으로 하나로 묶고자 하는 통합적 의도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사도행전 10장과 11장, 그리고 15장에서 보듯이, 초대교회 당시 유대인과 이방인의 조화는 가장 큰 문제였다. 유대인들을 무법(無法)한 이방 그리스도인들을 멸시하면서, 그들이 교회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할례를 행하고 음식을 가려먹으며 절기를 준수함으로써, 먼저 유대인이 될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갈 2:14-16).


반면에 이방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가 시작한 새 시대에도 여전히 옛 율법에 구속되어 그 언행에 제약을 받고 살던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고지식하고 편협하다고 비난하였다(롬 14:1-6).

이처럼 신학적 문제로 대립되어 있는 상황 하에서, 이방교회들이 모금한 헌금을 예루살렘의 유대 교회가 받아들인 것은, 결국 그들이 이러한 신학적 차이를 초월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라는 것을 깨닫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만일 유대교회가 할례도 행치 않고 음식도 가려 먹지 않는 이방교회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결코 그들의 헌금을 수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수용했다는 것은 이제 두 교회가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확인한 것이었다.

헌금을 보내면서 이방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에게 영적으로 빚진 것을 인정했을 것이고(롬 15:27; 고후 9:12). 그리고 그 헌금을 받으면서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에게 허락된 ‘지극한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했을 것이다(고후 9:13-14). 그럼으로써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적대감이 극복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여전히 인종적, 문화적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하나라는 일체감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사도행전 12장에 기록된 일련의 사건들이 엄격하게 역사적 순서에 따라 기록된 것이 아니라, 헤롯을 중심으로 해서 한데 묶여진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바나바와 사울의 예루살렘 도착이(행 11:30) 헤롯의 핍박과 베드로의 투옥 이후의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헤롯의 죽음은 44년의 일이므로, 12장의 사건은 아마도 43년에 발생했을 것이다. 이 견해를 따른다면, 11장 28의 기근은 헤롯의 사후 약 46년경에 발생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을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성경에 기록된 대로, 11장 30절의 기근 부조는 44년의 헤롯의 죽음 이전에 있었고, 바나바와 사울의 안디옥 복귀는(25절) 헤롯의 죽음 이후에 발생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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