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17강) 교회 일꾼의 기본 조건은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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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17강) 교회 일꾼의 기본 조건은 영성
  • 승인 2009.04.0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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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헬라파 지도자들의 임명



사도행전의 처음 다섯 장은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 교회의 설립을 묘사하고 있으며, 그와 함께 예수를 그리스도라 전파하는 교회에 대한 핍박이 점증하였음을 보도하고 있다. 제6장에서부터 9장 31절까지는 그리스도 교회의 확장을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초대교회를 성장하게 하는 다양한 방식의 선교활동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로, 예루살렘 교회가 성장하되 특히 헬라파 유대인들 사이에서 성장하게 되는데, 그 결과로 헬라파 지도자 스데반이 순교하게 된다(행 6:1-8:3). 둘째로, 초대교회가 사마리아로 확장하게 된다(행 8:4-25). 셋째로, 에디오피아 구스 내시의 회심이 발생한다(행 8:26-40). 넷째로, 이방인의 사도로서 장차 이방인 선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사울의 회심이 발생한다(행 9:1-30).

사도행전의 이 부분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초대교회 내의 두 그룹, 즉 히브리파와 헬라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히브리파는 아람어를 사용하는 일종의 텃새 유대인으로서 팔레스타인 본토박이 그리스도인들이며, 성전 및 율법 문제에 있어 유대교와 공감하는 부분을 가졌다. 그에 반해 헬라파는 일종의 철새 유대인, 즉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로서, 회당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영위하며 유대교나 히브리파 그리스도인들보다는 성전과 율법에 대한 이해가 철저하지 않았다.

사도행전 6장은 초대교회에서 시행된 과부 구제의 문제로 시작한다. 사건의 발단은 과부를 포함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배급함에 있어서 헬라파 사람들이 불이익을 당하게 되자 생겨나게 되었다.


이제까지 그 일은 열두 사도를 포함하여 히브리파에서 담당하였는데, 그로 인해 사도들은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여기게 되었다(행 6:2, 4). 그리하여 이 일을 전문적으로 담당하기 위해 일곱 명의 헬라파 지도자들이 선택되었고, 사도들은 그들에게 안수함으로써 인정하였다(6절).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헬라파 지도자들이 본래 일차적으로 음식 배급과 같은 일상적인 일을 담당하기로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선발 조건은 영적이라는 사실이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3절) 이런 특징과 더불어, 사도행전에 기록된 스데반과 빌립의 활약을 참작할 때, 비록 그들이 일차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위한 음식 분배의 일을 담당하기는 하였지만, 이 때 세움 받은 일곱 명의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은 초대교회 내에서 헬라파 그룹을 대표하는 영적 지도자이자 복음 전도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 증거로, 나중에 사도 바울이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가이사랴에 들렸을 때 빌립을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 장면에서 누가가 그를 “전도자”라고 부른다는 사실이다(행 21:8).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해야 할 사실이 있다.

우리 말 성경에는 이 구절에서 작은 글씨로(어떤 성경책에는 보통 크기로) “집사”라고 적고 있는데, 우리 말 성경에서 작은 글씨는 원문에는 없는 부분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집사라고 부르는 이 일곱 헬라파 지도자는 집사가 아니라, 바로 전도자였던 것이다.

이 때 사도들이 헬라파 지도자들을 택한 이유는 바로 헬라파 사람들로부터 애당초 불평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두 사람, 즉 스데반과 빌립은 열두 사도와 똑같은 종류의 복음 전도사역에 열중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큰 성과를 거두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또한 7장에 기록된 설교에서 우리는 스데반이 유대교의 중요한 요소 중 두 가지, 즉 성전과 율법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일부 학자들은 과부 구제문제로 야기된 불평은 보다 심각한 문제에 대한 하나의 증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초대교회는 헬라파 그리스도인들과 히브리파 그리스도인들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전자는 후자에 비해 유대교에 대해 비판적이고 급진적 태도를 보였고, 이로 인해 초대교회는 헬라파 지도자들을 임명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얼핏 그럴 듯 해 보이나, 초대교회가 독특한 신학적 전망을 가진 두 개의 별도의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었다는 주장은 수용하기 힘들다. 비록 그들이 언어상의 차이로 인해 별도로 집회 및 예배를 가졌다 할지라도 (히브리파는 성전에서 [행 2:46], 헬라파는 회당에서 [행 6:9]), 두 그룹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헬라파 지도자 일곱은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의 지도자로 활동한 반면 열두 사도는 전 교회를 관장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별도의 두 개의 그룹으로 분리되어 서도 대립하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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