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95강) 성전 내의 상업주의적 행태에 대한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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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95강) 성전 내의 상업주의적 행태에 대한 분노
  • 승인 2008.03.2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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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정화사건


주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처음 한 일은 성전을 청결하게 만들기 위한 <성전 정화사건>이었다(눅 19:45-46; 막 11:15-19; 마 21:21-13). 이것은 당시 성전이 제사로써 백성들의 죄를 사하여 주는 본래의 임무를 망각한 채 부패하고 타락하였기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사실 유대 관헌이 성전에 시장을 허락한 것은 예배자들이 매년 반 세겔을 내야하는 성전세를 납부하기 위해 환전소가 필요하였고(마 17:24-27), 흠 없는 희생제물을 살 수 있도록(레 1:3) 배려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외부에서의 동물 반입을 차단하고 성전 내의 동물의 값을 터무니없이 높임으로써 제사장 귀족들이 자신들의 물욕(物慾)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었기에 주님의 분노를 격발시켰던 것이다.



당시에 유대 관헌에 의해 합법적으로 세워진 기존의 질서에 주님이 이처럼 도전한 것은 첫째는 성전 제사의 본래의 목적을 훼손하는 상업주의에 대한 비판이었고, 둘째는 시장이 이방인의 뜰에 세워짐으로 말미암아 “이방의 빛”으로 부름 받은 이스라엘이 그 본연의 사명을 망각하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기준에서 볼 때 매우 급진적이고 파격적인 이러한 주님의 행동은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게 한다.



은연 중 우리는 오늘 우리의 교회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상업주의적 행태에 익숙한 나머지 세상과 차별화되어야 할 모습이 점차 사라져버리고 있음을 잊고 사는 듯하다. 아울러 이방을 비추는 빛으로서의 선교적 사명 보다 현실 안주 및 타협의 안이한 선택을 통하여 세상을 밝히는 빛의 역할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마 5:15-16).

<성전 정화사건>이 주님이 예루살렘 입성 후 착수한 첫 번째 일이란 사실과 이 사건이 사복음서 모두에 기록된 것은 이 사건이 주님의 정체성, 즉 주님이 메시야이자 하나님의 아들임을 드러내주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이었다(요 2:13-17).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는 이사야 56:7의 말씀의 인용을 통하여 주님은 메시야 의식을 밝히 드러내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만민의”란 구절의 생략과 성전 안에서의 자세한 상행위의 생략은 주후 70년의 성전 파괴 이후 모든 민족이 장차 시온(성전)으로 모일 것이란 종말론적 의미가 약화된 정황을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누가복음에서 성전 정화 사건은 단 두 절로 매우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물론 마태복음 역시 두 절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 내용이 조금 더 길다. 아울러 마가, 마태복음에서 성전 정화사건은 저주 받은 무화과나무 사건과 연결되어 나타나는데 반해, 누가복음에서 무화과나무 사건은 생략된다.

그리하여 마가, 마태복음에서는 잎은 무성하나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가 저주받은 것이 외양은 화려하나 상행위로 말미암아 그 본연의 임무를 상실해 버린 성전이 장차 멸망당할 것에 대한 예언적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누가복음에는 그런 의미는 발견되지 않으면서 단지 주님 죽음의 하나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으로 묘사된다(눅 19:47). 아울러 주님의 메시야 됨을 드러내주는 이 사건은 오히려 유대 관헌들의 시기심을 자극하였고(눅 19:47-48), 이들과의 반목은 주님의 최후의 날까지 계속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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