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74) 청지기는 임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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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74) 청지기는 임시직
  • 승인 2007.10.1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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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와 업적에 따라 차별화된 심판과 상급


 



▲ 김경진교수
누가복음에서 청지기는 주인으로부터 그 재산과 소유를 관리하도록 위탁을 받은 종이다(눅 12:42; 16:1; 19:13). 따라서 청지기는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전혀 갖고 있지 않으며,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은 당연히 주인의 재산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의 가진 바 재물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으로써 하나님의 소유이지, 결코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다. 청지기는 반드시 자신이 한 일에 대한 평가를 받게 된다. 자신들이 한 일의 결과에 따라서, 성실한 청지기는 칭찬을 받으며 보다 많은 책임과 보다 넓은 봉사의 기회를 받을 것이나(눅 12:44; 16:8; 19:17, 19), 반면에 불성실한 청지기는 책망을 받으며 직분, 즉 봉사의 기회마저 박탈당하게 될 것이다(눅 12:46; 16:2; 19:24, 26).




그러므로 청지기인 그리스도인이 위탁 받은 재물을 잘 관리하면, 즉 주인인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가난한 이웃들을 도우며 그 재물을 함께 나눠 쓰면 칭찬이 있을 것이나, 반대로 이를 이기적으로 자기 쾌락과 욕망을 위해 낭비, 집착, 축적하는 등 그릇 사용할 경우에는 이에 대한 책망이 있을 것이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임시적으로 위탁받았으므로, 청지기 직분은 제한된 시간대 위에 놓여있다. 이런 특징은 누가복음의 세 개의 청지기 비유에서 일관성 있게 나타나는 종말론적 특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요컨대, 그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청지기가 유념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그 직분이 영원하지 않고 임시적이며, 언제든지 주인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눅 12:43, 46; 16:2; 19:13, 15). 그러므로 청지기에게 요구되는 것은 청지기 직무기간 동안, 즉 시험의 기간 동안 그 의무를 지혜롭게 이행하는 것이며, 그의 일에 대한 심판 날이 반드시 다가올 것임을 의식하여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청지기 직(職)이 영원한 종신직이 아니라 임시직인 까닭에, 청지기로서 그리스도인이 제 역할을 바르게 감당하지 못하면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가진 바 모든 것을 압수하심으로써 모든 것을 잃게 할 수도 있다. 종말에는 우주적인 종말과 개인적인 종말이 있다. 우주적 종말은 보편적이고 역사적이나, 개인적 종말은 하시(何時)라도 발생할 수 있다. 자신만을 위하여 이기적으로 재물을 축적하다가 그 생명을 잃게 된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12:16-21)가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세 개의 청지기 비유 외에, 누가복음에서 직접적이고 명백한 청지기 자료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세 개의 비유가 누가복음의 청지기도에 관한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다. 비록 청지기도에 대한 명백한 언급은 더 이상 없다 할지라도, 청지기도 주제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누가복음에 계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이들 세 개의 비유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 번 등장하도록 만든 저자의 의도적인 배열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12, 16, 19장). 달리 말하면, 청지기도 비유가 약간의 간격을 두고 세 번에 걸쳐 반복되고 있으며, 그 사이에 재물과 관련된 자료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간헐적인 반복은 누가의 청지기도 개념을 문학적 기교에 의해 보다 공공연히 나타내기 위하여 저자에 의해 주의 깊게 마련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재물과 관련된 많은 자료들이 세 개의 청지기 비유를 중심으로 누가복음 전체에 산재해 있다는 사실은, 누가가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청지기도 주제와 재물 사이의 관련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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