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든 것 내어 드려도 든든한 하나님 계시기에 걱정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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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든 것 내어 드려도 든든한 하나님 계시기에 걱정 없어요”
  • 현승미
  • 승인 2009.11.1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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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사’와 ‘후원’의 아름다운 중독에 빠진 이 정 림 집사

성령의 감동으로 헌금하고 그 이상의 것 받아

사람이 할수 없는 일 하나님이 이루신다


 ‘중독’하면 주로 알코올이나 도박 중독 같은 좋지 않은 일을 떠올리는 편견을 갖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받은 것이 너무 많아 남을 돕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중독’에 빠진 이가 있다.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평범한 가정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는 이정림집사(소망교회). 그러나 그에게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선행이 숨겨져 있다.

이정림집사는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월드비전을 통해 국내와 해외 8명의 어린이를 후원해왔다. 아니 월드비전 후원으로 시작해 굿네이버스, 기아대책, 밥퍼 등의 단체들은 물론 어려운 교회들을 찾아 그야말로 기도하듯 남을 돕는 일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았다.

“처음 후원을 하게 된 건 큰 딸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였어요. 두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내고 숨을 돌리고 나니 무언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지요. 당시에 ‘매일성경QT’를 구독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표지에 있던 월드비전 후원광고를 보게 됐습니다. 5천원이면 아프리카 아이들이 한 달을 살 수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때 처음 후원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첫 달 2만원으로 시작된 후원이 4만원으로, 8만원으로, 다시 12만원으로 횟수를 늘려갈수록 후원금액도 늘어갔다.

“어느 순간 후원금액이 너무 과하다 싶어 액수를 줄이려고 은행에 갔는데, 이상하게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오히려 14만원으로 금액을 늘리게 하시기도 했지요. 그러다 남편 회사일로 이듬해에 미국에 가게 됐습니다. 중간에 처리할 일이 있어서 국내에 잠깐 들어 온 적이 있는데, 1년치 후원금을 한꺼번에 미리 내게 됐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온 김에 자주 다니던 기도원에서 아이들의 교육문제로 며칠간 금식기도를 하게 됐습니다. 그때 제 마음을 어여삐 봐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처음으로 깨닫게 됐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게 됐다는 이정림집사는 당시 교회학교에서 자신의 교육을 담당했던 김수현장로(부산양정제일교회)의 영향 덕분에 유독 영어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여름성경학교에서 주기도문과 십계명을 다 외우면 상을 준다는 친구의 말에 당장 교회에 출석하고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밥도 안 먹고 열심을 내서 외우는 제 모습에 아버지가 걱정을 하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덕분에 이정림집사는 1등상을 받았고, 더더욱 기쁨으로 교회에 다니게 됐다. 당시 미8군에 다니던 김장로는 아이들에게 영어성경을 가르쳐주기도 하며 많은 도전을 심어줬다.

“그때 집안에 어려움이 많았었는데, 김수현장로님이 저 뿐만 아니라 저희 8남매에게 많은 관심과 정성을 쏟아주셨어요. 심지어 제가 시집간 후에도 힘든 일이 생기면 두 팔 걷고 달려와 주셨거든요. 그래서 더욱 그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거 같아요. 제가 자라는 성장 과정에서도, 또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영어에 대해 유독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유도 아마 김장로님 덕분인 것 같아요. 그런데 1년 후원금을 한꺼번에 낸 후 하나님께서 남편의 직장을 통해 아이들을 영어권 나라에 갈 수 있도록 해주셨거든요.”

이집사의 남편이 오직 성실함과 실력으로 인정받아 몇 년간 미국연수를 가게 됐고, 덕분에 이집사의 바람대로 아이들이 영어권 나라에서 성장하게 됐다.

그뿐 아니다. 3년 후 다시 국내에 돌아왔고, 형편상 봉천동 언덕 위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전세 값이 모자라 70%만 지불하고, 나머지 30%는 월세로 내기로 하고 간신히 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시작된 그의 후원 중독은 어려운 가운데 오히려 더 빛을 발했다.

“당시 국내에 큰 수해가 났는데, 은행에 가서 지로용지에 40만원을 적어 넣었지요. 월드비전에서 에티오피아에 우물을 지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덜컥 작정헌금을 하기도 했습니다. 특별한 대책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단지 성령의 감동으로 헌금을 하게 됐는데,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제가 그 약속을 모두 지킬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의 것을 주셨지요.”

이후에도 하나님은 그의 중심을 보시고, 그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셨다.

자신의 이익과 하나님의 일을 저울질 하지 않고, 전적으로 자신의 주머니를 모두 털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쁘게 어려운 이들을 섬기는 이정림집사. 그에게 물질의 축복도, 자녀가 올바르게 성장하는 축복도 기꺼이 내어 주셨다.

그는 훗날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하나님의 큰 일꾼이 될 수 있도록 때로는 전교 1등을, 때로는 서울 법대 합격의 기도제목을 당당히 내놓았다.

여러 고비 가운데, 사람의 눈으로는 될 수 없었던 일들에 하나님은 역사 하셨다. 그가 교만하지 않도록 쉽지 않은 여정을 주셨지만, 마지막에는 반드시 승리의 결과를 보여주셨다.

“사람이 할 수 없다 말할 때 우리의 하나님 반드시 그 일을 이뤄내십니다. 사람이 스스로 해냈다고 자만하지 않도록 반드시 때를 기다린 후 우리가 그 분을 감동시킨만큼 분명한 상급을 주시지요.”

그의 후원은 물질 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이정림집사는 아프리카의 교육환경 개선, 에이즈 예방사업후원에도 참여했다. 국내의 결식아동과 독거 어르신을 위한 사랑의 도시락 사업, 북한 용천역 열차 폭발사고 긴급구호, 파키스탄 대지진 긴급구호, 아프리카 식량위기 긴급구호, 식수사업 후원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면 어디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재능까지도 아낌없이 들어 썼다. 미래의 꿈을 잃기 쉬운 청소년들에게 정서적인 도움을 주는 지도교사로, 정기적으로 천안교도소를 방문해 수감자들의 상담과 마음의 친구가 돼 주는 일,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의료봉사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다.

“뒤늦게 공부한 간호학까지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힘을 보탤 수 있어 행복합니다. 살면서 항상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며 스스로 받은 축복들에 감사하다 보면 나누지 않을 수 없게 되지요. 한 번에 많은 것을 나누거나 생업을 접고 직접 봉사의 현장에 뛰어들 수는 없지만 제가 살고 있는 생업의 현장에서도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재능으로도 누군가에게 분명 소중한 힘이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아무것도 나눌 것이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받을 것이 없을 만큼 부자인 사람도 없는 거니까요.”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그 누구보다 엄격한 가르침을 고집하지만, 아무 욕심없이 어렵고 힘든 이웃들에게 최선을 다해 봉사하고 베푸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분명 하나님께서 아이들에게도 축복을 내려주실 것이라고 믿는 이정림집사.

“저는 아이들에게도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가르쳤습니다. 특히 미래의 주역인 아이들을 위한 후원과 봉사에 대해 강조하지요. 그래서 그런지 아직 중학생인 둘째도 엄마의 이런 소망을 잘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거 같아요.”

하나님께서 주신 돈은 자신의 욕심을 채워주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쓰라고 주신 것이라고 믿는 이정림집사. 크리스천으로 살면서도 그 가치와 중심을 어디에 두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그는 자신의 ‘아름다운 중독’에 많은 크리스천이 동참해, 자신이 누리는 행복과 봉사의 기쁨을 함께 느끼기를 소원했다.


▲ 지난 9월 10일 열린 ‘서울특별시 복지상 후원자 부문 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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