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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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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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0.2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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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중목사<꿈의교회>


한 여자 농구 선수를 기억합니다. 182cm의 트레이시는 브랜드대학교 여자 농구부의 촉망받는 선수였습니다.

어느날 브랜드대학인 인근의 다른 대학과의 농구경기를 치렀으며 트레이시는 유감없이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여 브랜드대학의 승리에 큰 몫을 하고 있었습니다.

경기가 끝나갈 무렵 트레이시가 슛을 하고 바닥에 오른발을 내딛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경기장이 울릴 정도의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습니다. 충격으로 무릎 뼈가 으스러진 것이었습니다.

즉시 병원으로 옮겨져 몇 시간의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하는 의사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습니다. 그 수술 후 트레이시는 3개월에 걸쳐 무려 아홉 번이나 더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의사들은 트레이시의 오른쪽 다리를 살리기 위하여 뼈를 이식하고 살을 옮기는 필사의 노력을 했으나 이식된 뼈와 살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다리를 자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 전날 농구팀 감독이 트레이시를 찾아왔습니다. 트레이시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트레이시, 너의 등번호인 10번은 네가 돌아올 때까지 남겨 두겠다." 감독의 말에 트레이시가 대답했습니다.

“감독님, 꼭 팀에 복귀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트레이시의 부모들은 트레이시를 위로하기 위한 말씀으로 생각했습니다.

3개월 후, 브랜드 대학교 농구부의 첫 연습이 시작되던 날, 농구장에 가장 먼저 나타난 사람은 연습가방을 어깨에 멘 트레이시였습니다.

그녀는 오른쪽 무릎 아래쪽에 의족을 끼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선수들이 집합하자 감독이 선수들의 연습 조를 알려 주었습니다. “트레이시! 너는 1번조다!" 감독은 전력질주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연습에 트레이시를 참가하게 하였습니다. 다리를 절단한 뒤 4개월 만에 트레이시는 첫 경기에 참가하였습니다.

이 날 그녀는 그 첫 경기에서 12득점을 하고 6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냈습니다. 다리를 절단하기 전보다 훨씬 좋은 성적이었습니다. 물론 그녀의 등번호는 여전히 10번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만나면 좌절하고 맙니다. 모든 의욕을 잃고 절망하며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고 남을 원망하며 저주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시선을 약간만 다른 곳으로 돌려보면 무한한 가능성을 여전히 갖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장애우의 말이 생각납니다.

“1만 가지 일 중에서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은 1천 가지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9천 가지의 일을 할 수 있다”

너무 사는 것이 힘드십니까? 고단하십니까. 포기하고만 싶으십니까?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못할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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