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전통주의자 야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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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전통주의자 야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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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0.0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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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목사<서초교회>


초대 교회 당시를 기록한 어느 역사책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에 대하여 이렇게 전하고 있다. “야고보는 모태로부터 거룩한 사람이었다. 그는 포도주나 술을 마시지 않았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대민족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던 사람이다.” 야고보는 전통에 충실한 신앙인이요,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대민족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던 사람이다. 사도 바울이 변화와 새로움을 추구했다면, 야고보는 전통에 충실한 그리스도의 제자인 것이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말씀을 보면, 베드로에 대해서 다소 비판적인 내용을 전할 때가 있다. 그런데 야고보에 대해서는 상당한 존경심을 나타낸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열두 사도보다 먼저 야고보에게 나타나셨다는 점을 강조한다(고전 15:7). 야고보에 대하여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갈 2:9)라고 기록하고 있다. 초대 교회의 기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신앙적인 입장에서 생각하면 서로 반대편인 것으로 보이는데, 사도 바울은 야고보에 대하여 존경심을 표하고 있다. 사도 바울과 야고보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어떤 중요한 회의가 열리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독교 세계에서는 이 회의를 제1차 예루살렘 공의회라고 부른다. 그 회의는 유대의 전통과 율법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열렸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안디옥을 찾아온 유대적인 기독교인들이 강력하게 할례와 율법을 주장했다. “예수를 믿더라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과 안디옥의 제자들은 할례와 율법의 문제에 대하여 절대 반대 입장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아울러 할례와 율법을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한다면, 그것은 유대교와 기독교를 동시에 요구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툼이 생긴 것이요, 문제 해결을 위하여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린 것이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유대 전통을 주장하는 보수적인 주장이 제시되고 이어서 찬성과 반대의 변론들이 나타났다. 그러다가 중요한 대목에서 베드로가 일어나 발언을 했다. 베드로는 이미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경험이 있었다.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는 동안에 성령이 임하는 체험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안디옥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입장에서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인물들의 발언을 다 들었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에 야고보가 등장하게 된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총 책임자요. 회의의 진행 책임을 맡고 있었다.

평소 야고보의 입장은 유대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을 떠나본 적이 없을 정도로 예루살렘과 율법과 전통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런 야고보가 베드로의 주장과 그리고 구약성경의 예언을 거론하면서, 회의의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게 된다. 사도행전 15장 19절을 통하여 야고보는 이런 결론을 제시한다.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괴롭게 하지 말자. ‘할례를 받아라. 모세의 율법을 지켜라.’ 그렇게 요구하면, 이방인들이 어떻게 복음을 받아들이겠는가? 그러니까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로 오려는 이방인들을 괴롭게 하지 말자.”

그것이 야고보의 결론이요, 회의의 최종 결론이 된 것이다. 보수적 전통의 중심에 선 야고보가 변화와 선교를 추구하는 안디옥의 손을 들어주면서 회의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기독교의 전통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교회를 세우시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뜻을 완성해 가시는 것’이다. 그 전통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았다.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존재하지 않으셨고 자신을 위하여 일하지 않으셨다. 자신의 사명을 위하여 장차 다가올 종말과 하나님의 뜻의 완성을 바라보면서 십자가를 지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과거와 전통의 그늘 아래 특별한 입장을 유지하려는 자세는 기독교의 전통과는 관계가 없다.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입지를 지키는 것과 ‘기독교 전통’이 동일시되어서는 안된다.

진정한 기독교의 전통은 자신을 내어주는 흐름 속에서 유지되어 왔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초대 교회의 기둥같은 야고보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전통주의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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