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 땅을 밟고 기도하며, 사진을 통해 복음의 씨앗 뿌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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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 땅을 밟고 기도하며, 사진을 통해 복음의 씨앗 뿌려요”
  • 정재용
  • 승인 2009.08.12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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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탈성구사 대표 이 봉 준 장로

최근 사막화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몽골. 하지만 그런 몽골의 자연이 하나님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극찬하며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는 사진작가이자 크리스탈성구사 대표인 이봉준 장로(드림의교회)는 최근 1만Km의 몽골 땅 밟기 사역을 4년여 만에 끝마치고 몽골을 향한 하나님 사랑을 주위 사람들에게 전하기에 여념이 없다.

어머니를 여의고 입대한 군대에서 하나님을 만나기까지 또 가난과 싸우며 사업의 성공과 실패를 거듭한 이야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한국 땅의 교회를 누비며 십자가를 달아주고 세계를 누비며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는 이봉준 장로의 삶은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고 계심을 증거하고 있었다.

“제가 하나님을 처음 만난 것은 군에 입대했을 때에요. 시골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1973년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원주 하사관학교에 입소하게 됐어요. 호적 나이가 남들보다 한 살 빨라서 군대도 일찍 들어갔었죠.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 힘들어 할 때 교회가 제게 유일한 안식처였고 그래서 하나님께 매달렸죠. 그때 하나님을 처음 만났어요.”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신앙생활의 조력자도 보내주셨다.

“처음 군에 입대해서 틈만 나면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다행히 당시 중대장님께서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더 하나님을 의지하며 힘든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죠. 유창걸 중대장님이셨는데 저희 중대가 ‘여호수아 중대’라고 불릴 정도로 믿음이 좋은 분이셨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 중대장님 이름을 기억해요.”

하나님의 도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은혜롭게 마치게 된 군생활. 이후 사회로 돌아온 그는 또 다시 가난과 싸우며 자리를 잡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제대하고 돌아왔는데 아버지께서 사업을 하시다가 부도가 났더라고요. 그래서 그 어려움을 벗어나기까지 봉천동에 있는 여인숙에서 생활을 했어요. 당시 여인숙에 대한 사람들의 이미지가 좋지 않아서 낮에는 나오지도 못하고 밤에만 나와서 활동하기도 했었죠. 새어머니와 함께 교회를 나가 예배를 드리기는 했는데 군대에서만큼 하나님과 가깝게 지내지는 못했었어요.”

새롭게 시작한 사업도 신통치 않았던 이봉준 장로는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하루하루 힘들게 지내다보니 신앙생활도 조금씩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백화점 디스플레이 사업을 시작했었어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테마를 정해서 상품을 디스플레이하는 사업이었는데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많이 벌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IMF가 닥치고 디스플레이 사업들도 어려워지면서 결국 힘들고 지쳐서 돌아갈 곳은 하나님뿐이더라고요. 제 믿음이 조금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군대에서 만난 하나님을 의지할 때 가장 큰 힘을 얻었다고 고백했던 그의 삶은 결국 다시 하나님을 의지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하나님의 기업으로 급성장하게 됐다.

“디스플레이 사업은 시즌별로 계약이 되고 밤에만 일을 하니까 공백기가 조금 있었어요. 그때 틈틈이 아크릴 제품 개발을 해왔었는데 제가 최초로 개발한 아스텔이라는 소제가 방송국과 백화점 등에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 회사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죠. 뿐만 아니라 아스텔은 우리나라의 아크릴 산업에도 큰 공헌을 하기도 했어요.”

사업이 주춤하면서 다시 찾게 된 하나님. 이후 이봉준 장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일꾼이 되겠다고 다짐하며 나누는 일에 열심을 내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하루, 그것도 고작 한 시간을 많은 신자들 속에서 조용히 묻혀 예배드리고 헌금 드리는 것으로 그리스도인 의무를 다한 듯 착각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그래서 십일조도 못할 정도로 힘들게 살아온 저에게 큰 은혜를 부어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제가 만든 십자가를 시골의 작은 교회 100곳에 무료로 달아주기로 했어요.”

아내와 함께 4~5개의 십자가를 싣고 먼 곳의 교회를 다녀올 때면 꼬박 이틀이 걸리기도 했지만 십자가의 불이 켜지고 예배당을 환하게 할 때마다 피로도 사라지고 큰 보람도 느꼈다. 결국 이봉준 장로는 당초 목표였던 100교회보다 많은 120교회에 십자가를 달아주게 됐다.

“십자가를 달 때마다 ‘새벽기도 때마다 저희 회사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라고 부탁을 드렸었어요. 그렇게해서 120개 교회의 기도동역자가 생겨서 그런지 회사가 더욱 번창하게 됐죠. 뿐만 아니라 120개 교회에 십자가를 달아주면서 하나님께서는 목사님들의 눈물을 보게 하셨고 십자가로, 또 물질로 후원하며 동역하라는 마음도 허락하셨어요.”

하나님께서는 이장로 부부에게 돈이 없어서 아기에게 보리차를 먹이고 있는 목사들도 보게 하시고, 임대료를 못 내서 쫓겨난 목사와 한 겨울 추위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목사, 십자가를 달아 드리면 눈물을 흘리시는 목사를 만나게 하셔서 그분들의 동역자로 섬기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가서 돕기를 원하신 것 같아요. 제게 주신 달란트가 사진이니 사진을 통해서도 소외된 노인들의 영정사진을 찍어드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도 해요. 지금까지 6천여 명의 영정사진을 찍어서 액자로 만들어 보내드렸는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라서 그런지 좋은 사진을 위해 머리카락을 만져드리고 옷고름을 바로 잡아드리는 일까지 모두 기쁨으로 하고 있어요.”

30년의 사진경력과 함께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이기도 한 이봉준장로는 지난 4년간 사진작가로서 몽골 땅을 밟으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열정을 불태웠다.

“사막화로 인해 몽골은 황폐하다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몽골에도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 많죠. 그리고 몽골사람들은 한국을 너무 좋아해요. 사진 인화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사진을 빼주기도 하는데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이런 나눔을 통해 몽골 땅 곳곳에 있는 무당 사원이 모두 사라지고 복음만이 전파되는 날이 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장로의 몽골에 대한 사랑은 몽골 국영방송 MNB를 타고 몽골전역에 전해지기도 했으며 몽골사진을 구하기 위해 주한몽골대사관에서까지 이봉준 장로를 찾기도 한다.

“사실 몽골에서의 사진촬영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우연치 않게 몽골 최고의 PD를 만나게 하시고 일반인들이 들어가기도 어려운 장소에 제가 발걸음하게 하셨으니까요.”

그의 고백처럼 몽골 땅의 사진들은 이봉준장로의 작품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작품이기에 그의 사진들은 멋진 사진엽서로 제작돼 몽골 현지에서 선교의 도구로도 사용되고 있다.

“다가오는 2010년은 몽골수교 20주년이 되는 해에요. 그래서 몽골 사진 전시회를 열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몽골에 대해 전하고 몽골에 대한 선교의 비전을 심어줄 수 있는 좋은 씨앗이 되기를 바라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몽골 전역의 땅을 밟으며 복음으로 채워지기를 기도했던 이봉준 장로. 새로운 땅 밟기 사역의 사역지인 이스라엘을 향하며 성경의 역사적 증거들을 전하는 사진작가로 다시 한 번 쓰임 받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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