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 이르는 영화 만들기 위해 오로지 하나님 생각만 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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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 이르는 영화 만들기 위해 오로지 하나님 생각만 할 거에요”
  • 정재용
  • 승인 2009.07.16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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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생<백석신학교> 된 영화계의 거장 이 장 호 감독
말씀 듣고 부끄러워 지갑 속 부적 태워버려

성경 제대로 배워서 영화 이론에 접목할 것


‘별들의 고향’, ‘바람 불어 좋은날’, ‘낮은 데로 임하소서’, ‘외인구단’, ‘바보선언’ 요즘 젊은세대들이 얼핏 들어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 제목들. 바로 70~80년대 극장가를 주름잡았던 영화감독 이장호집사(새문안교회)의 작품들이다.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 했던 그의 삶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까지 또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고 다짐하기까지 힘들게 지나온 시간은 그리 짧지만은 않았다. 이장호집사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영화감독에서 현재 신학공부(백석신학교)를 하게 된 모든 삶의 과정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교회에 처음 나가게 된 건 1980년이었어요. ‘바람 불어 좋은날’ 개봉을 앞두고 명보극장을 드나들다가 극장 주인이셨던 신영균장로님과 몇몇 분들이 하용조목사님과 성경공부를 하는 자리에 함께 하게 됐어요. 하목사님의 말씀을 듣다가 지갑 속에 들어있던 부적이 부끄러워서 공개적으로 태워버렸던 적이 있는데 그때가 예수님과 첫 인연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 성경말씀을 접하고 몸속에 지니고 있던 부적을 태워버린 이감독은 개봉을 앞둔 자신의 작품 ‘바람 불어 좋은날’을 위해 스크린에 붙였던 부적도 떼어버리는 결단을 하게 됐다.

“소설가 김승옥 형님이 신앙을 가지게 되면서 저에게 교회에 가자고 자주 권했어요. 그런데 그때는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거부감까지 들어서 굉장히 불편하게 생각했었죠. 그런데 성경공부를 하면서 말씀을 듣고 생겨난 부끄러운 마음 때문에 극장 스크린 뒤에 몰래 붙였던 부적을 밤에 몰래 들어가서 떼어내는 일도 있었어요. 하하하.”

이런 일이 있은 후 이장호 감독은 한 목사님을 만나게 됐고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됐다.

“하루는 허병선 목사님이라는 분이 만나자고 찾아오셨어요. 만나서는 대뜸 저에게 ‘좋은 영화를 만들면 목회자가 하는 일들을 할 수 있다’고 하시는 거에요. 그동안 먹고살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인기를 얻기 위해서 살아왔는데 영화를 통해서도 사람들에게 목사님들처럼 그런 유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였어요.”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바뀐 이감독의 삶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하월곡동 돌산마을의 동월교회가 연예인들로 채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허목사님 교회를 다니면서는 ‘내가 교회에 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이 되고 뜨거워지면서 동지들을 만난 듯 배창호, 안성기, 이보희 등 연예인들을 전도하고 배창호는 황신혜를 전도해서 동월교회에 연예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성경을 제대로 묵상하지 못하고 목사님 설교 본문에 대한 지식만 가지고 살아가다보니까 또 다시 방황하게 되더라고요.” 

방탕했던 삶을 모두 버리지 못한 채 교회 문턱을 드나들었던 탓일까. 이감독은 또 다시 교회를 멀리하게 됐다.

“그 당시 사회적인 메시지들을 담은 영화들을 만들었어요.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많은 호응을 얻었지만 제약을 받게 되고 쉽게 영화를 만들 수 없게 됐죠. 방탕하게 살았던 모습들도 남아있고 목표도 흔들리니까 돈이 되는 영화를 만들게 되면서 한동안 교회를 또 나가지 못하게 됐어요.”

‘무릎과 무릎 사이’, ‘어우동’ 등 한때 인기를 끌었던 영화지만 이장호 감독에겐 뒤늦은 후회만 남겼다.

“그렇게 방황을 하던 시기에 큰 교통사고를 한번 당했어요. 이후 패션디자이너 전태옥씨가 교회에 다시 나가라고 권면하셔서 본격적인 성경공부를 시작했어요. ‘칼빈의 기독교강요’ 등 책도 읽고 말씀도 보면서 ‘복음이 이런 거구나’하고 깨닫게 됐죠.”

오랜 방황이 끝났지만 그동안 누적됐던 방탕함은 전처와 멀어지게 했다. 힘들어하던 이장호 감독은 하나님께 더 매달리게 됐고 신앙이 조금씩 성장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보기 시작했다.

“1996년 늦둥이가 태어나면서 그걸 계기로 ‘죄와는 완전히 단절 해야겠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신앙생활에 매달렸어요. 차츰차츰 연단의 과정을 거쳐서 내가 나아갈 길을 발견했죠. 신앙의 깊이와 속도가 사람마다 다르듯이 저도 조금씩 천천히 하나님과 가까워지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바라시는 것이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어요.”

말씀을 듣고 부끄러워 부적을 태웠지만, 영화를 만드는 목표도 다시 세워봤지만, 하나님께 바로 가지 못하고 또 다시 15년이란 세월을 휘청거리며 살아야만 했던 이장호감독. 그런 가운데서도 감독으로 성공하고 명성을 얻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제야 알 것 같다고 고백했다.

“내 능력을 나도 믿지 못하는데 흥행이 잘되고 관객이 몰려들 때면 너무나 기뻤죠. 하지만 차츰차츰 제가 올라갈수록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고 본 모습의 이장호로 돌아가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것이 제 원래 모습인데도 말이죠. 그때 느꼈어요. 지금까지 이렇게라도 지낸 온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고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계획이었구나….”

자신의 명예를 위해 살아왔던 삶을 돌아보며 ‘부질없는 것에 신경 쓰며 살아 왔구나’라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온 뒤였다.

“마음에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이 지금까지 내가 만든 영화가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죄의식이었어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완전하게 무장된 상태로 이루려고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을 많이 후회했어요. 그 뒤로는 ‘로마서에 나오는 것처럼 생명에 이르게 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이장호집사가 제2의 인생이 시작되면서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게 됐고 기도제목들도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 안에 100%를 모두 하나님 생각으로 가득 채우고 싶은데 그게 어렵더라고요. 새벽기도도 해보고 성경공부도 열심히 해보지만 정작 생활하면서 90%는 하나님을 떠나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제 아이들만이라도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게 된 것은 너무 감사해요. 제가 아이들에게 물려줄 것이 없어서 너희들도 나중에 신앙만 물려주라고 말하곤 하죠. 할머니, 어머니 모두 절에 안가면 벌 받는 줄 아셨던 터라 돌아가신 아버지만 예수님을 영접했을 뿐 형제들이 교회에 대한 거부감이 커서 가장 큰 기도제목이에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올해 방배동 백석신학교에 편입, 신학공부를 시작하며 이장호집사의 삶은 하나님 생각으로 조금씩 더 채워져 가고 있다.

“CBS와 CTS에서 방송을 진행했더니 저를 장로라고 부르시는 분, 목사라고 부르시는 분도 있어요. 하하하. 영화를 잘 만들면 목회자가 하는 일을 한다는 목사님의 조언을 마음에 새기고 훌륭한 감독보다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감독이 되려고 노력중이에요. 제가 목회자가 될 것 같지는 않아요. 제대로 성경을 배우고 영화이론을 접목시켜서 ‘크리스천 영화 미학’이라고 할까. 하나님께서 주신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것이 제 앞으로 남은 삶의 비전이에요.”

대학교수로, 오페라와 뮤지컬 감독으로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위해 신학공부와 함께 순교를 테마로 영화를 기획을 하고 있는 이장호감독. 하나님 생각으로 100% 채워진 이감독의 손을 거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영화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 본인이 만든 영화가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이장호 감독. 하지만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등 찬송가를 자신의 영화에 삽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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