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을 통해 치유하시는 주님, 일생동안 주님만 찬양하며 살기 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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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을 통해 치유하시는 주님, 일생동안 주님만 찬양하며 살기 원해요”
  • 정재용
  • 승인 2009.07.01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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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치였지만 찬양간증사역자로 부름 받은 성정인집사

말기암 할머니 통해 마을 전체가 변화돼

콘서트 수익금, 뭄바이에 무료급식소 건축


“주님! 내게 기름을 부으소서! 내 입술로 주 찬송하게 하소서! 주님만을 따르기 원하오니 주님의 기쁨 되게 하소서!” 진실한 찬양사역자의 삶을 살아가길 소원하는 애절한 고백. 음악적인 완성도가 높지는 않지만 잔잔한 선율가운데 순수함이 느껴진다.

4년 전 찬양앨범을 낸 찬양간증사역자 성정인집사(성남제일교회)의 ‘나의고백’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부터 인생의 하프타임을 넘어선 지금까지의 모든 고백들을 담아 십자가의 증인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하고 있다.

“제 인생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엔 고통과 눈물, 아픔들로 얼룩졌던 삶이었어요. 만리포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난 어린 성정인은 무당이 아버지를 수양아들로 삶을 정도로 우상에 빠져있는 가정에서 자라는 불쌍한 아이였죠.”

어린 시절 자신의 가정에 흑암의 세력이 강했다고 전한 성집사는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기적이고 축복이라고 강조했다.

“중학교 1학년 되던 해 할머니께서 위암 말기 판정을 받으셔서 모두 슬픔에 잠겨있을 때였어요. 예수님께서 치유하여 주셔서 말기 암이 완전히 깨끗하게 나으신 것에요. 그때 온 가족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죠. 그 뿐이 아니에요. 무당 수양아들 가정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얼마나 큰 이적을 보이셨는지 온 마을이 교회로 발걸음하게 됐어요.”

그때 온 마을이 살아계신 예수님을 체험했던 파도교회(김충남목사)는 지금도 성정인집사의 마음속 고향처럼 느껴지고 항상 예수님을 만난 그 설레임을 간직하게 해주는 곳이라고 했다.

“저는 그 때 그 기쁨을 잊지 못해서 지금도 파도교회를 찾고 김충남목사님을 찾아요. 한 가지 더 파도교회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찬양에 대한 갈급함을 느꼈던 장소이기 때문이기도 해요. 제가 음치라는 걸 깨닫고 마음껏 찬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던 곳이거든요.”

예수님을 만나 뜨거워진 어린 마음에 찬양이 즐거움으로 다가 올 때 파도교회 성가대는 성집사를 반겨주지 않았었다.

“성가대가 너무 하고 싶어서 자원해서 들어갔는데 첫 번째 연습을 하던 날 옆자리에 있던 언니가 모든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성인이 옆에서는 연습을 못하겠어요. 자리 좀 옮겨주세요’라고 건의를 했어요. 제가 음치라서 연습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죠. 제겐 너무 큰 충격이었어요.”

일생동안 주님을 찬양하며 살고 싶었던 어린 성정인에겐 자신이 음치라는 사실이 상처가 되기보다는 사람들이 듣기에도 거부감이 들 정도라는 것이 큰 걱정이고 충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님! 내가 일생동안 주님을 찬양해야 하는데 남들 듣기에도 이렇게 찬양을 못한다니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때 기도하면서 음치지만 그래도 찬양받기 원하신다는 주님의 응답을 받았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하게 되면서 그 소명을 이루는 시간이 조금 늦어졌어요. 빠르기도 빨랐지만 평범하지만은 않았던 결혼은 제 인생 전반전의 또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 됐죠.”

교회 근처 부대에서 군복무를 하던 남편과 인연이 닿아 결혼까지 하게 된 성집사. 결혼으로 인해 잠시 소명이 흐려졌고 육적으로 영적으로 삶의 목적도 잃은 채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예수님께서는 다시 찬양의 제사를 드리는 삶으로 인도하셨다.

“어느 날 교회에서 하프타임 세미나라는 것을 한다고 해서 별로 기대 안하고 참석했는데 제가 잊고 있던 소명을 다시 찾게 됐고 찬양을 통해 간증하고 영적 육적 위로와 치유 회복자로 헌신하겠다고 다짐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내적 치유를 위한 앨범을 내게 됐죠. 찬양앨범을 내는 일이 두 명의 자녀를 키우는 전업주부에게는 절대로 불가능할 거란 주변의 걱정들을 뒤로 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고 상처 입은 영혼들을 치유하시는 도구로 사용해 주셨어요.”

작곡과 프로듀서는 최덕신전도사가 맡고 세션도 컴퓨터 음악을 사용하지 않고 함춘호집사 등 실력파 CCM 사역자들이 함께 도왔다.

“옥합을 깨트려서 드리는 심정으로 정말 열심히 했어요. 음치였던 제가 찬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실력 있는 좋은 동역자들을 보내주셔서 더 좋은 음악으로 주님께 영광 돌릴 수 있게 허락하셨어요. 부족함을 깨닫고 오랜 방황의 시간이 흘러 만들게 된 앨범이라 그런지 정말 순수한 열정을 담을 수 있었죠.”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의 열정과 순수함을 통해 준비된 이들에게 치유의 역사도 허락하셨다.

“앨범을 내고 한 기독교방송에 출연하게 됐는데 방송이 끝나니까 제 음악을 듣고 저를 만나서 상담 받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저는 상담가가 아니니 다른 분을 만나보시는 게 더 도움이 될 거라고 했지만 그분은 다음날 첫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어요. 그리고는 자신의 상처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눈물을 흘리셨죠.”

자신의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서 듣는 이들을 치유하시기를 간구했던 성집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것이었다.

“솔직히 저는 아무런 말도 해줄 수가 없었어요. 그냥 점심식사와 저녁식사까지 같이 하면서 8시간동안 지난 세월의 상처받은 이야기들을 들어주면서 같이 눈물을 흘렸을 뿐인데 자유함을 얻었다고 하시는 거에요. 부족한 나를 이렇게 사용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너무너무 감사했어요.”

이런 감사함이 넘치는 가운데 모든 사역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성집사는 사례비도 받지 않고 대형교회에서 주는 사례비는 3명의 선교사들을 후원하는 선교헌금으로 드리고 있다.

“모든 물질은 하나님께서 채워주셨어요. 카드빚을 내서라도 선교사님들과 약속한 후원비는 반드시 보내드려야 한다는 것이 남편과 저의 생각이었고 하나님께서도 그런 저희들의 마음이 기특하셨는지 항상 채워주셨죠. 뿐만 아니라 콘서트를 통해 얻은 수익금으로 인도 뭄바이에 무료급식소도 건축하게 하셨어요.”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고자 하는 마음. 그런 마음들을 성정인집사에게 허락하시고 역사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그리고 그 모든 순간순간이 성집사에게는 모두 자랑이고 간증이다. 그런 일들이 있은 후 성집사는 결혼으로 못했던 대학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게 됐고 백석신학교 상담학과에 입학해 2학년으로 만학도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제 딸이 저랑 같은 대학교 2학년이에요. 아들은 고3이고요. 늦은 나이에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하게 됐지만 소명을 가지고 하게 되니까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무당과의 영적 전쟁을 벌여야만 했던 삶, 찬양을 하고 싶지만 음치였던 실망감, 어린나이에 시작된 결혼생활로 잠시 잊고 있었던 소명, 이런 모든 삶의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었던 것이다.

“말기 암에 걸린 할머니께서 완치되면서 마을 전체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체험했고, 음치였던 저를 통해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시는 것을 보면서 저는 확실히 느꼈어요. 택하신 백성은 어떻게든 구원해주신다는 것을요.”

하나님의 약속하심을 믿고 인생의 후반전을 찬양간증사역자의 삶을 살기로 서원한 성정인집사. 더 진실하고 순수한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하는 2집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역사가 다시 한 번 많은 이들의 고백으로 들려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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