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2:13을 Syriac Peshitta 역에서는 삼상 16:9과 같이 samo’로 읽고 있습니다. 삼하 21:21에서는 sime’ay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 사람의 본래 이름을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ayn(‘)이 삼상 16:9에는 없습니다. mem(m)이 중복되어 있습니다(sammah). 이것은 어떤 사람의 이름이기 보다는 ‘거기서’라는 부사와 동일시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ayin과 같은 다음의 자음과 동화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히브리어를 말하는 유대와 같은 지역에서는 ‘ayin의 음을 제거하거나 강조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모압인의 이름을 reu-t(우정)보다는 rut(Ruth)에서 찾습니다. 사실 ‘ayin이 없는 rut은 의미가 없는 단어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무엘(samuel)은 semu’el로 하고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이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삼상 1:20, 1:27에서 한나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semu‘el (하나님이 들으심)입니다. 따라서 대상 2:13의 시므아(sime‘a)가 바른 이름이고 삼상 16:9에 나타난 삼마는 지방 방언으로 서기관의 오류로 된 것입니다.
삼상 16:10~11에서는 이새가 8명의 아들을, 그러나 대상 2:13~15에서는 7명의 아들을 가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은 삼상 16장에는 다윗의 윗형들 이름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엘리압(6절), 아비나답(8절), 그리고 삼마(9절) 또는 시므아(대상 2:13)가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새는 7명의 아들을 사무엘 앞으로 다 지나가게 했습니다(10절).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윗을 데려오게 했습니다(12절). 그러나 대상 2:14~15에서는 다른 세 형의 이름과 일곱째로 다윗을 낳았다(15절)고 했습니다.
삼상 16장에 밝혀지지 않은 또 한 사람은 역대상 기자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면 결혼 전에 일찍이 죽었거나 또는 결혼했으나 후손이 없이 죽었기 때문에 후일 역대기 기자에게 별 의미가 없는 사람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새는 본래 8명의 아들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종윤목사(서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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