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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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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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4.0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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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호목사<한시미션>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 장래가 매우 촉망되는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당시 가장 위대한 석학(碩學)으로 평가받는 가말리엘의 제자였다. 그가 공부를 마칠 때쯤에는 거의 가말리엘의 수제자로 불릴 만큼 놀라운 수준을 갖추게 되었다. 그의 지식수준은 실로 대단했다.

배운 지식에 대한 실천력 또한 탁월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는 편견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었다. 한 사람을 죽이는 일에 가편 투표를 하고 함께 돌을 던지면서도 양심의 떳떳함을 가질 정도였다. 그는 그토록 우수한 엘리트였지만,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유대인의 하나님으로 제한시키는 이데올로기적인 편견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의 가치를 가둬놓고 있었다.

사도 바울, 그는 나면서부터 로마 제국 내의 최고의 특권인 로마시민권과 유대인으로서의 선민(選民)사상 모두를 획득한 특권 의식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발견한다. 로마 제국을 지키기 위한 형틀로써의 십자가가 아닌, 모든 인류를 용서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발견한 것이다. 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가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쌓아온 모든 가치와 사상들이 한 번에 무너졌다. 그리고 그가 가진 지독한 편견을 넘어선다. 유대인의 하나님이 아닌 온 세계의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었고,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평등하게 존귀한 가치로 보게 된 것이다.

처음 제자들에게 십자가는 오로지 ‘형틀’로만 여겨졌다. 십자가는 절망 그 자체였다. 예수님의 목숨 뿐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도 앗아갈 수 있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수제자 격이었던 베드로도 예수님을 부인하고 현실의 나락으로 추락해버릴 정도였다. 지난 3년간 쌓아온 시간은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예수님의 사역은 그렇게 끝나버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상심과 절망 가운데 빠져 있는 제자들에게 먼저 찾아오셨다.  그리고 다시금 그들에게 힘을 주시며, 당신을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확신하게 하신다. 예수님을 향해 한없는 부끄러움과 아쉬움을 가진 제자들이 다시 사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들의 삶은 끝까지 비겁자요 패배자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은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아쉬움과 부끄러움은 열정으로 바뀌었다. 이런 그들에게 사명이 주어졌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남은 제자들은 이제 ‘증인’이 되었다. 예수님의 유언의 말씀은 제자들이 성령 강림의 약속을 기다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천국 복음을 전하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사도 바울이 발견한 십자가, 제자들이 발견한 십자가는 더 이상 어느 한 세력의 특권의식을 지켜내기 위한 형틀도, 자신의 삶을 패배로 이끌 만큼 두려운 대상도 아니다. 인간들을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공의의 십자가에 세우신 하나님, 그 뜻에 순종하여 고통의 십자가를 지셨지만, 바로 그 십자가에서 이루신 최후 승리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도 바울과 제자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진정 영원한 승리가 되었다.

수세기 동안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통해서 변화되었다. 모든 사람은 바로 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생명에 대한 희망을 넓힐 수 있고, 죽음을 넘어설 수 있다.

편견의 벽에 갇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지 못한 인생도, 두려움에 실패하고 주저앉았던 인생도, 때로는 연약해서 예수님을 부인했던 인생도, 그 누구라 할지라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새 인생을 출발할 수 있다.

영원한 승리자이시며 생명의 구주이신 주님과 함께 다시 시작하는 은혜를 누리는 삶은 진정 승리의 삶을 사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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