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해시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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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해시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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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2.1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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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돈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우리가 세상을 이해시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방 떠오르는 생각은 전도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세상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이 사회 안에서 한국교회는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우리를 이해시켜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이들과 더불어 살 수 있다.

어쩌면 ‘더불어’라는 말 자체가 어패가 있을 수 있다. 벌써 그 가운데서 그들과 우리라는 구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사실은 이 세상 안에서 세상과 구별되는 것이다. 즉, 같으면서도 다른 그 무엇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다르기만 한 것은 아닐까?

2007년 여름, 우리는 심각한 구별을 경험하였다. 아프가니스탄에 인질로 잡혀 있던 청년들을 죽여야 한다는 성난 군중들을 만난 것이다.

그들은 다른 나라 사람도 아니고 우리 한국교회가 속해 있던 대한민국의 국민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같은 대한민국의 국민을 향해서 ‘너희는 예수 믿는 자들이니 그곳에서 죽어도 마땅하다’고 외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터넷에 기반을 둔 현 대한민국의 문화에 기인한 요인이 많다. 그러나 그들마저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그것은 우리에게 전해주는 하나님의 메시지일 수 있다. 그 의미는 이 세상에 우리를 이해시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대한민국과 다른 한 집단이 아니라 대한민국 안에 존재하는 한국교회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 세상과 소통해야 한다. 사람들은 교회가 전하는 메시지에 거부감을 가지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복음을 전하는데 그들이 가지는 감정은 불쾌함과 두려움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이 왜 나타나는가. 그것은 우리의 신앙고백을 그들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고, 우리가 이해하고, 우리가 표현하는 그대로 그들에게 소리 지르니 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사랑을 요구하는데 심판을 이야기하고, 그들은 평화를 원하는데 칼을 내밀어서는 함께 나눌 수가 없는 것이다. 즉, 그들의 언어를 찾아야하는 것이다.

언어는 사고의 표현이다. 생각과 이해를 표현하는 것이 언어인 것이다. 그러나 언어의 중요한 기능은 소통이다.

이 언어의 소통은 단순히 뜻을 전달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사고와 태도를 나누는 것이다.

즉, 이 세상과 우리가 소통하고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와 같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나누는 것이다. 정말 때로 사람들이 우리를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혜로워야하고 심지어 교활하기까지 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의 소통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뱀처럼 지혜로워야한다는 것이 바로 이를 두고 하신 말씀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너무 우직하다. 때로 일제시대의 독립투사를 보는 듯하다.

모진 고문에도 대한독립을 외치는 유관순 누나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은 2009년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

우직함이 오히려 미련함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전하는 방법과 태도에 따라서 사람들의 이해도는 달라진다.

특히 한국교회가 이 사회에서 비춰질 때는 더욱 지혜로워야 한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던지는 말 한 마디가 미디어를 통해서 나가면 어떠한 사회적 반응이 나올지를 계산해야 한다.

교회가 만들어내는 한 영상이 TV에 나오고 인터넷을 타게 될 때에 그것이 사람들의 이해에서 어떻게 비춰질지 생각해야 한다.

이래서 지혜로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 시대에 맞게끔 포장하여 전달할 수 있어야 세상을 이해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종교의 언어는 낮아짐에 있다는 것이다. 오른 뺨을 맞고 왼 뺨을 돌려댈 수 있는 낮아짐의 언어가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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