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해가 지는 섬 '연평도'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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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해가 지는 섬 '연평도'를 가다
  • 승인 2001.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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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듯이 엊그제 같던 새 천년의 첫 해도 그 끝자락에 다달았다.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며 혹은 연초 기도원에서 하나님과 약속했던 것들이 새근새근 떠올라 조금은 괴로울(?) 때다.
이제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돌아보며 잊을 것은 잊고 새길 것은 새기며 또다시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해야 할 시간이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연평도는 1년 동안의 자신의 삶을 조용히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장소라는 생각에 그곳을 찾았다.
연평도는 인천에서 뱃길로 145km 떨어진 경기도 옹진군 연평면 연평리. 서해 최북단에 위치 서해 최대의 어항으로 통한다. 우리나라 제일의 조기어장으로 각광을 받았던 연평도는 옛 모습을 간직하고 조용히 살아가는 서해의 전초방위기지다. 바다 위를 기차가 달리는 것처럼 평평하게 뻗어있어 ‘연평도’라 한다. 또 2년여 전 북한군과의 교전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해병대 연평교회 교우의 영접
인천여객터미널 실버스타호. 1층에는 차량이, 2·3층에는 해병대 군인들을 비롯해 한 해를 정리하기 위해 연평도를 찾는 사람들도 많았다. 배 한쪽에서 오손도손 얘기를 나누던 한 쌍의 부부는 “연말이면 모임과 술로 분주해 하며 한 해를 마무리했다”면서 “이번 연말은 차분하게 정리하고 내실있는 2002년을 계획하기 위해 연평도를 간다”고 말했다.
어느새 배는 연평도를 향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내뿜는 뱃고동 소리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해를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것 같았다. 배 위에서의 모습은 가지각색이었다. 갑판에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설레는 표정으로 멀어지는 육지를 바라보는 사람, 객실 내에서 목을 쭈욱 빼고 창 밖을 쳐다보며 얘기나누는 사람, 벌써 허기져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컵라면을 후후 불면서 열심히 먹고 있는 사람들.

4시간 가량을 달렸을까? 배는 어느 섬에 닿았다. 소연평도다. 몇몇 사람을 토하듯 내려준 배는 다시 출발, 소연평도의 명물인 ‘얼굴바위’를 지나 30분 가량을 더 내달렸다. 드디어 대연평도(이하 연평도). 여기저기서 “어, 다왔다”, “어휴,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여기가 연평도구나” 등 다양한 반응들을 보이며 밝은 얼굴이었지만 표정에 변화가 없는 사람들은 아마도 연평도 주민들이리라.
특별히 오늘은 마을 주민들을 뜻깊은 자리에서 만날 기회가 있다. 해병대 연평교회가 망향전망대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을 가져 민·관·군이 한자리에 모인다.
섬 행사다. 오후 3시. 연평도에 도착하니 해병대 연평교회 김 집사님이 “고생하셨죠? 잘오셨어요”라며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김 집사님의 차량을 이용해 교회로 가는 길. 한 아주머니가 우리를 쳐다보며 눈빛으로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었다. 이심전심. 주저없이 차를 세운 김 집사님은 “들어가시죠? 타세요”라며 선뜻 합승(?)시켰다. 추운 겨울이 따뜻해지는 순간.

연평도는 현재 5백90여 가구 1천5백40여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주민 80% 가량이 어업, 10% 가량이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주민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여서 해병대 연평교회를 비롯한 마을 교회들의 어깨가 무겁다. 교회로 가는 길에 한 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말 그대로 시골학교였다. 연평도에는 초·중·고등학교가 각 1개씩 훌륭하게 터를 잡고 섬 학생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었다. 물론 대학은 물건너(?)에 있다.

제1의 조기 어장 ‘자랑’
처음 찾은 곳은 최전방 부대인 해병대 연평부대 내 망향전망대. 전망대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석도까지는 3.4km. 서해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북한 땅이다. 눈앞에 드러난 북한 땅을 바라보며 한해를 마감하는 느낌이라….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석도를 바라보았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 하고 이동한 곳은 부대 해수욕장.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눈 부신 하얀 백사장이 아니라 바람과 파도에 닳고 닳아 두리뭉실해진 돌맹이들이었다. 굉장히 매끄럽고 예뻤다. 그 돌들을 바라보니 오랜시간 수많은 군인들이 이 곳에서 뒹굴고, 넘어지고, 이를 악물며 피나는 훈련을 견뎌낸 모습들이 마치 영화처럼 눈 앞에 그려졌다.

연평도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조기’로 유명했던 곳으로 부대 내에도 조기박물관이 세워져 있었다. 각종 조기의 전시는 물론 서식지와 습성 등에 관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박물관 뒷편에는 두 개의 섬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데 ‘구지도’는 해상 포사격 연습장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서편으로 1km 가량 떨어진 섬은 소연평도로 우아한 자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통일 노래 부르며 ‘눈시울’
어느 정도 부대를 돌아보고 나니 저녁 6시가 되었다. 점등식이 거행돼 크리스마스 트리에는 색색깔의 전구들이 아름답게 불을 밝혔다. 찬양, 기도, 말씀선포,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 북한 동포에게 보내는 메시지 그리고 통일의 노래. 이 모든 것은 복음통일을 바라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었다.
점등과 동시에 약속이나 한 듯 참석자들은 손에 손을 잡고 통일의 노래를 불렀다. 가슴은 뛰었고 눈시울은 뜨거워졌다. 이네 잡은 손에는 어느새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밤 9시30분에는 경계근무 현장인 초소를 방문했다. 연평도의 밤바람. 장난(?)이 아니었다. 살을 애는 듯한 매서운 바람,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엄습하는 졸음 그리고 이 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북한군과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는 우리 장병들을 찾아 언 몸을 녹일만한 차와 빵을 건넸다.
“고생많죠? 그래도 여러분 덕분에 국민들이 올 한해도 마음 놓고 일하며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라는 말에 그들은 한결같이 “괜찮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라며 일성. 1~2평 남짓의 싸늘하고도 좁은 초소. 그곳에서부터 우리나라의 철통방위는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이글이글 떠오르는 태양은 한해를 잘 마무리함과 동시에 힘차고 역동적인 한 해를 계획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연평도에서의 21시간. 하루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 회복, 한 해 점검 그리고 국가와 북한 동포를 가슴에 쓸어안고 기도하기엔 너무나 좋은 시간, 좋은 장소였다.

인천으로 돌아가는 배. 어제 이용했던 그 배를 타고 돌아가지만 오늘의 나는 어제와는 다른 가슴, 다른 희망을 안고 바다 위를 달리고 있었다.

이승국기자(sklee@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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