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그루터기인 하나님의 백성들은 저물어 가는 한 해의 끝자락에서 다가오는 새해 어떤 소원을 담고 있는지 가슴으로 느끼고 싶어 기도원에 올랐다.
새롭게 떠오르는 아름답고 선량한 태양빛에 온몸을 맡긴 채 새해 소원을 빌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산이며 바다로 향하고 있을 때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진 신앙의 선배들이 언제나 향했던 곳, 그 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 간절함과 애통하는 심정으로 나아갔던 곳, 참된 회개를 통해 변화를 다짐했던 하늘과 가장 맞닿아 있는 기도의 동산으로 영혼의 발걸음을 내딛었다.
출발할 땐 비록 혼자였지만 도착한 그곳은 결코 혼자만의 장소가 아니었다. 끊임없는 자동차의 행렬과 더불어 살을 에일 듯한 매서운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하나님을 사모하는 수많은 영혼들의 발길이 하나둘씩 모여지고 있었다.
자동차 불빛사이로 아빠의 손을 잡고 걸어오는 코묻은 어린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를 등에 업고 한 손에 기저귀가방을 들고 오는 아기엄마의 모습도, 손을 맞잡은 젊은 부부의 모습도, 딸처럼 보이는 여인의 부축을 받으며 지팡이를 짚고 올라오고 있는 노인의 모습도 보였다.
칼바람에 몸을 웅크리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는 여학생들의 모습, 엄마 아빠의 뒤에서 모자로 서로 장난치며 달려오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 교회 봉고차에서 내려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목회자와 성도들의 모습 등 늦은 겨울 밤 기도의 동산은 이미 수많은 영혼들의 안식처가 되어가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이들은 차디찬 겨울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도의 동산을 찾은 것일까? 어떤 간절함과 사모함이 이곳으로 이끈 것일까? 그 마음을 함께 공유하고 싶어 넌지시 말을 건넸다.
“대통령이 부자 위주가 아니라 서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정치를 했으면 좋겠어요. 나라와 민족이 잘돼야 내가 잘 될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정말 하나님이 내년에 우리나라 경기를 회복시켜 줬으면 좋겠어요.”
신월중앙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박순임권사. 그녀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충분한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개인적인 소원은 없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언제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남편이 10년 전 심장질환으로 쓰러져 뇌의 반 이상이 감각을 잃었어요. 하지만 철야기도 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남편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환상을 보여주셨죠. 그 이후 정말 기적과도 같이 남편이 살아났어요. 물론 지금도 심장질환이 완쾌되진 않았지만 내 곁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 감사하죠. 하나님은 저에게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셨어요. 기도가 절대로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요. 이제 충분해요. 그래서 나라를 위해 기도하기로 작정했어요.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될 때까지 멈추지 않고 기도할 거에요.”
노인복지 사역을 하고 있는 목회자도 만났다. 늘빛사회복지선교회의 임용빈목사. 기도원에 오른 그의 바람도 동일했다. “세계가 정말 어렵다보니 우리나라도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잖아요. 이 땅의 모든 공동체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를 위해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싶어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몇 사람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건넸다. 역시 그들도 한국교회와 나라의 아픔을 하나님께 토로하기 위해 기도원을 찾았다고 대답했다.
잠깐동안의 만남에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온 몸으로 느끼며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기도소리에 이끌려 예배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많은 영혼들이 두 손을 하늘높이 들고 울부짖고 있었다. 바닥에 엎드려 흐느끼고 있었다. 어떤 이는 성경을 가슴에 꼭 안은 채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드리는 찬양소리도 들렸다.
그들은 진정 통회하는 심정으로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지난해 세상으로부터 온갖 손가락질을 받은 한국교회의 부끄러움과 수치들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지 못한 잘못,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함과 교만함으로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간악한 마음들에 대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간구하는 기도였다.
온갖 부정부패로 얽룩진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오직 비난과 불평과 원망으로 일관했던 부끄러웠던 지난날의 참회였다.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말로 한국교회와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고집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우리의 이웃과 함께하지 못하고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 잘못에 대한 진정어린 참회의 기도였다.
이들의 통회하는 심정은 거룩한 처소 하늘에 상달되고 있었다. 순간 블레셋에게 법궤를 빼앗긴 이스라엘 백성들의 민족적 회개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던 미스바 성회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무엘의 설교 한편으로 바알과 아스다롯의 우상들과 제단을 완전히 훼파했던 곳, 이스라엘 백성들이 극도의 슬픔을 토로하며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만을 간구하는 참회의 행동으로 하나님께 나아갔던 미스바.
“맘몬을 제거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떠나 있었던 것을 슬퍼하는 것을 볼 때 여러분이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려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이제 하나님께 바르고 신실한 모습으로 나아오십시오.”
사무엘은 계속 외치고 있었다. “회개하십시오. 단단한 결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와 오직 그분만을 섬기십시오. 이것만이 축복과 구원을 위한 유일하고도 확실한 길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것입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동안 왜 미처 깨닫지 못했을까? 이 나라에 평화와 안정이 오느냐 안 오느냐는 바로 이 땅의 그루터기인 우리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비록 메마른 땅에 씨를 뿌린다 할지라도 씨앗 자체만 좋다면 훌륭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참다운 회개와 회심은 하나님을 찾아 탄식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왜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일까?
“하나님, 당신의 은혜를 자랑거리로만 삼을 때보다 차라리 고통과 절망 가운데서 당신의 은혜와 긍휼을 바라며 탄식할 때가 더 좋은 때임을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새해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가시지 않아도 좋다. 그로 인해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갈망하며 탄식할 수만 있다면…. 이 나라 이 민족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다.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바랄 수만 있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지만 않는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리라.
얼어붙은 계곡 사이 밑에서도 실낱같은 생명수가 흐르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히 이 땅에 흘러넘치고 있다. 우리가 기도를 멈추지 않는 한 한국교회와 이 나라 이 민족의 희망은 끝나지 않는다. 이 땅의 그루터기로, 거룩한 씨로 새로운 희망의 단서를 지닌 우리를 통해 절망의 마지막 상태가 희망을 향한 출발점이 되기를 소원해본다.